진주의 역사를 제대로 복원합시다
[논란] 진주대첩기념광장 조성과 형평운동기념탑 이전
경남 진주시는 진주성 앞에 '진주대첩기념광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진주시는 지난 2007년부터 부지매입을 시작했다. 진주시는 총 사업비 980억원(국비190억원, 도비57억원, 시비 733억원)을 들여, 2018년까지 진주성 촉석문 앞 2만 5020㎡(약 7600평) 부지에 기념공원과 기념관, 주차장 등을 조성한다. 진주시는 진주대첩을 기념해 새로운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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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그런데 진주시는 진주성 정문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을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뜨겁다. 형평운동은 백정들의 신분 해방운동으로, 진주에서 1923년에 시작되었고, 기념탑은 시민성금으로 1996년에 세워졌다. 이와 관련해 조규태 경상대 명예교수가 글을 보내와 싣는다. [편집자말]
▲ 진주성 정문 앞에 있는 형평운동기념탑.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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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는 신라 신문왕 4년(684)에 거열주에서 분리되어 청주(菁州)가 되고, 이듬해 685년에 9주의 하나로 편입되면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후 1925년에 경남의 도청소재지가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되기까지 서부 경남과 경남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선현들이 이룩한 수많은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진주성도 제대로 복원되어 있지 않습니다. 진주성은 진주목과 진주우병영이 있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는 왜적을 물리친 진주대첩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에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1969년부터 복원되기 시작하여 이제 제법 성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 진주대첩기념광장 조감도. ⓒ 진주시청
그러나 지금 진주성은 성벽이 낮아 쉽게 뛰어 넘어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있고, 성안에는 촉석루, 북장대, 서장대 외에 과거의 수많은 공공건물들은 자취를 찾아 볼 수 없이 잔디밭만 조성되어 있습니다. 성안에 진주대첩을 기리기 위한 시설물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시설물들이 복원되어 있어야 과거의 역사들, 특히 진주대첩을 이룩한 역사를 그려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진주농민항쟁과 형평운동
1862년부터 관리들의 불의와 착취에 맞서 일어나기 시작한 농민항쟁의 발원지는 진주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진주농민항쟁의 자취는 덕천강 가에 진주농민항쟁기념탑이 서 있을 뿐입니다.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자랑스러운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기념관을 진주시내에 건립해야 후세 사람들이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 했던 선현들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1923년부터 1935년까지 13년 동안이나 일어난 형평운동은 신분의 차별을 해소하여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 수는 사회를 만드려고, 진주에서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되어 간 인권 운동입니다. 이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96년에 진주시민들이 뜻을 모아 진주성 동편에 형평운동기념탑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진주시에서는 진주성 앞에 있는 이 탑을 진주대첩광장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백정이라는 신분 때문에 성안에 살 수 없었던 한 맺힌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진주성 앞에 세운 상징적인 의미를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주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진주역사광장'
진주일신여고는 1924년 10월 허만정을 비롯한 경남의 유지들이 일신재단을 조직하여 이듬해 4월, 4년제의 사립 진주일신여자고등학교로 설립한 학교입니다. 일제에 맞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건립한 유서 깊은 학교로 박경리와 같은 소설가를 양성해 낸 학교입니다.
▲ 조규태 경상대 명예교수. ⓒ
이 밖에도 진주에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많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진주시에서 진주성 앞에 조성하려는 진주대첩광장 대신에 위에 열거한 것을 비롯한 진주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진주역사광장'을 조성하는 것이 진주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바람직한 광장이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조규태 경상대학교 명예교수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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