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좋은' 산티아고? 실제로 가보니
[남자찾아 산티아고 ④] 신념을 가지고 기다려봐
▲ [남자찾아 산티아고 04] 그녀는 과연 원하는 남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 정효정
남자를 찾아 산티아고에 가겠다고 호기롭게 외쳤지만, 사실 산티아고를 향해 출발한 지 삼일만에 마음을 비웠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좀 죄송하다. 이 연재물의 제목은 거창하게 "남자찾아 산티아고"이고, 첫 회에서도 "괜찮은 남자가 많다" 혹은 "물이 좋다"라는 식으로 여러분께 기대감을 주었지만,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냉엄한 현실에 대해서다.
일단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높다. 아무래도 산티아고 순례는 은퇴자들의 버킷리스트 1위인가 보다. 50~60대가 압도적이다. 생장에 도착한 날부터 계속 내 주변에는 50대 이상 어르신들이었다. 대체 내 나이 또래는 어디 있는 건가 생각해봤는데 아마 각자의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내 나이 또래 남성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마음속에 흑심을 가득 품고 온 나와 달리 이 타입들은 정말 올곧게, 100% 순수하게, 순례만 목적으로 온 남자들이다. 첫날 피레네 산맥에서 만난 일본인 준같은 친구가 그랬다.
이 길에서 만날 수 있는 남자들
▲ 피네레 산맥의 성모마리아 산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길은 가톨릭교의 성지순례코스였다 ⓒ 정효정
피레네 산맥을 굽어보는 성모 마리아상 근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아, 정말 이 길은 가톨릭의 성지순례구나'라는 실감을 할 무렵, 어이없게도 내 눈앞에 승복에 삿갓모자를 쓴 일본인이 나타났다. 일본 불교의 순례자 복장이다.
"혹시, 오헨로상(お偏路さん)인가요?"
일단 말을 걸어봤다. 그러자 오헨로(お偏路)를 어떻게 아냐며 반가움을 표한다. 오헨로(お偏路)는 일본 시코쿠에 있는 성지순례코스다. 1400km 코스를 따라 88개의 불교사찰을 순례하며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오헨로상(お偏路さん)이라 불린다. 사실 내가 이 순례길에 대해 알게 된 건 한 공포영화 덕분이다. 그 88개의 절을 역방향으로 순례하면 죽은 자를 소생시킬 수 있다는 영화였다. 하지만 그에게 그 이야기는 하지 않고 그냥 친구에게 들어봤다고 얼버무렸다.
나와 비슷한 나이인 그는 프랑스 중부에서 출발하는 순례길인 르 퓌(Le Puy-en-Velay)에서 한 달을 걸어 이곳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 코스는 아직 순례자가 많지 않은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순례자가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하는 현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하긴 그 복장이면 어딜 가나 환영받았을 거다. 프랑스 시골사람들로서는 동양인과의 만남 자체도 드문데, 일본 수도승의 복장까지 했으니 얼마나 신기했으랴.
▲ 피레네에서 만난 오헨로상일본 시고쿠섬의 순례자 복장을 하고 걷는 순례자 ⓒ 정효정
둘이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는 이미 한 달여를 걸은 숙련자였고 나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초보였다. 걷는 속도가 비교가 안 된다. 그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도 닌자처럼 가볍게 움직였고, 난 이제 막 잡기 시작한 등산 스틱조차 적응이 안 되던 상황이었다. 결국 그는 숙소에서 보자며 먼저 떠났고 난 멀어지는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늘 그런 식이었다. 배낭을 메고 하루 20~30km를 걷는 것은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아침부터 걷기 시작해 오후 1~2시면 숙소에 도착했지만, 같은 시간에 출발한 내가 숙소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4~5시였다. 멋진 남자를 만나기는 커녕, 파김치가 되어 걷다보면 오후쯤에는 얼굴을 익힌 할머니들이 다가와 '기운내라'며 인사를 하곤 했다. 물론 다들 착하고 멋진 할머니들이긴 했지만, 내심 제대로 '망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쥬비리(zubiri)로 향하는 날, 가늘게 비가 왔다. 카페콘레체라고 불리는 우유를 넣은 커피를 하나 사서 등산용 컵에 넣고 빗속에서 마시면서 걸었다. 아직 새벽, 숲길을 통과해야 하는데 어두워서 혼자 가긴 좀 무섭다. 누가 오길 기다리는데 오리손 산장에서 만난 리타가 왔다. 60대인 그녀는 유방암 4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서둘러 이곳에 왔노라고 한다. 실제로 큰 병을 앓은 후 이 길을 선택한 사람들도 많았다. 미국에서 온 마크 역시 뇌졸중을 극복하고 이곳에 왔다고 한다.
▲ 소와 워낭길을 걷다가 양떼나 소떼에서 방울소리가 나는 것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지곤 했다 ⓒ 정효정
나무가 빼곡한 숲속의 오솔길을 빠져나와 야트막한 평원을 지나는데, 어디서 맑으면서도 묵직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개를 돌려보니 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소 목에는 묵직한 워낭이 걸려있었다. 소들이 천천히 움직임이다 보니 소리도 천천히 띄엄띄엄 나다가 말다가 했다.
수년 전 스리랑카의 한 명상원에서 했던 소리명상이 떠올랐다. 그냥 앉아서 크리스탈 싱잉볼이 내는 소리와 진동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서서 아침공기와 워낭소리를 들여 마셨다. 옆에 있는 리타를 보니 지금을 너무나 즐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녀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먼저 길을 떠났다. 이런 시간을 매일 가지는 것만으로도 지친 몸과 마음은 치유받을 수 있을 것이다.
중간에 지나는 휴게 음식점에서 바닥에 놓여있는 한 상자를 봤다. "남편을 찾고 있나요? 이곳에 속옷을 두고 가세요. 아내를 찾고 있나요? 놀라운 일이 벌어질 거예요"라고 적혀 있고, 실제로 여자 속옷들이 놓여 있었다. 돌하루방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거나, 남근석에 다산을 기원하거나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떠올라 한참 웃었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에서 이 무슨 원시신앙적 모습이란 말인가. 그것보다 대체 이 속옷이 미래의 남편에게 갈지, 여자 속옷에 목 마른 변태에게 갈지 어떻게 알고 속옷을 투척하는 건지 모르겠다.
▲ 남편을 원하면 이곳에 속옷을 놓고 가라는 메시지가 적혀있다. "아니요 둘 다 사양하겠습니다." ⓒ 정효정
"이번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결혼할 거야"
쥬비리로 가는 길은 계속 내리막이다. 무릎의 통증을 느끼며 천천히 걷다가 아일랜드에서 온 쥬디와 캐나다에서 온 빌을 만났다. 아일랜드 특유의 밝은 피부색과 머리색을 가진 쥬디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걸 좋아하고, 마르고 키가 큰 빌은 과묵하지만 자상한 느낌이었다.
둘은 8년간 친구로 알아왔지만 이번 여행에서 돌아가면 결혼을 할 거라고 했다. 이사도 해야 하고 준비할 것도 많지만 결혼을 결심하기 이전에 이 여행을 먼저 계획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쥬디는 변화를 앞두고 조금 들떠있었다.
"나는 독신주의였어. 그래서 이 결혼은 그동안의 내 모든 걸 바꾸는 거야."
독신주의였던 아일랜드 여성이 40대 중반이 되어 캐나다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그녀의 말대로 결혼과 동시에 모든 생활환경이 바뀌게 될 터였다.
"계산기를 두드려봤거든."
조금 의외의 대답에 나는 조금 떨어져 걷고 있는 빌을 흘깃 보았다. '계산을 한다'기에 자동적으로 재산이나 집 같은 경제적 '조건'을 생각했는데, 척 봐도 빌은 그렇게 부유한 타입은 아닌 듯했다. 대체 무슨 계산을 한 건지 물어봤다.
"빌을 사랑하고 있지만, 결혼을 하면 미혼일 때 누리고 있는 생활들을 포기해야 하겠지. 생활터전이 바뀌는 문제도 있고. 그래서 망설여왔어. 그럼에도 하나하나 계산을 해보니 확신이 들었어. 우리가 함께 하면 서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을 거야."
▲ 쥬비리로 가는 길순례길처럼 모두가 고민없이 한 길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생은 훨씬 마음 편할 것이다. ⓒ 정효정
다들 하는 소리긴 했다. 결혼을 할 때 사랑, 인성, 경제적 능력 등 다방면으로 고민을 해보라는 말. 그렇다면 한때 독신주의자였던 그녀에게는 어떤 요인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는지 궁금해졌다.
"일단 빌은 부인이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나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남자야. 나 역시 그에게 아버지나 가장이라는 책임을 지울 생각이 없고. 그래서 결혼을 해도 지금까지의 관계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무엇보다 우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서로의 성격이나 인생관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봤고, 그 결과 둘이 지닌 삶의 철학이나 방향이 일치하고 있다는 걸 알았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의 인생 선배들(엄마, 이모, 결혼한 친구들 등)은 결혼의 필수조건으로 '사랑'과 '돈'을 이야기했다. 방점은 주로 '돈'에 찍혀져 있었다. '결혼 하기 전엔 사랑이 먼저고, 결혼 한 후엔 조건이 먼저가 되더라', '사랑이 천년만년 갈 거 같으냐, 돈 없으면 못 산다' 등등의 이야기였다. 실제로 남의 결혼식장에 가보면 사람들은 사랑으로 맺어진 커플을 보며 '철없다'고 비웃고, 조건을 따진 커플을 보며 '속물'이라고 소근거리곤 했다. 어느 누구도 둘의 인생관을 언급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쥬디는 심리상담까지 하며 서로의 성격과 인생관을 분석했고, 그것을 '철저한 계산'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하긴 감정이나 경제적 조건은 변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이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지점이 같다면 어떤 문제가 닥쳐도 두 사람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해 낼 것이다. 이런 계산은 결혼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동화속 처럼 아름다운 마을쥬비리돌 다리를 건너면 작은 마을이 나온다 ⓒ 정효정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돌다리 너머로 오늘의 목적지 쥬비리가 보였다. 헤어질 때 그녀를 껴안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녀가 준 인사이트는 간결했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하기 위해선, 상대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성격은 물론 인생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내게 고마워했다. 꼬치꼬치 물어보는 나 덕분에 스스로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매일, 이 길에선 누군가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하더니, 오늘은 그게 너인 거 같아."
"나야말로 널 만나서 행운이야. 앞으로 캐나다 생활 즐겁게 하고, 행복한 결혼이 되길 바라."
그러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응? 결혼한 후 빌이 아일랜드로 오는 건데?"
아아, 난 어째서 당연히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자를 따라 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성역할에 대한 전통적 인습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쥬디는 내게 두 종류의 통찰을 주고 빌의 손을 잡고 떠났다.
"신념을 가지고 기다려봐"
▲ 순례자 숙소 내부1인실이나 2인실도 있지만 보통 이렇게 한 공간에 여러명이 자는 다인실에서 숙박하게 된다. ⓒ 정효정
쥬비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4시가 넘었다. 가장 저렴한 8유로짜리 공립 알베르게는 이미 다 찼고, 15유로, 18유로짜리 알베르게도 사람이 다 찼단다. 난감하다. '비싼 호텔로 가야 하나' 생각하며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한 알베르게 앞에서 팔짱을 낀 여성이 나를 불렀다.
"너 아직도 숙소 못 구했어? 이리 좀 와봐."
아까 침대 있냐고 물어봤던 10유로짜리 알베르게 주인 마리아였다. 그동안 혹시 빈 침대가 생겼나 싶어서 기대를 품고 가봤다. 하지만 여전히 자리가 없다고 한다. 아니, 그럼 대체 날 왜 부른 건가.
"20분만 여기서 기다려봐."
그녀는 내 가방을 벗기고 날 숙소 앞 벤치에 앉혔다. 아까 숙소에 전화예약을 걸어둔 사람이 있는데 5시까지 안 오면 자동으로 예약이 취소가 된단다. 시간은 4시 40분. 20분 남았다. 하지만 그전에 예약한 사람이 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럼 난 공연히 여기서 20분을 허비한 게 된다. '확실하지도 않는데 여기 앉아있어야 할까. 이 시간에 차라리 다른 숙소를 알아보는게 낫지 않을까' 난 엉덩이를 붙였다 뗐다 하며 갈피를 못 잡았다. 그런 나를 보며 마리아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신념을 가지고 기다려봐."
당당한 그 태도에 더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결국 애써 없는 신념을 끌어 모아 차분히 기다렸다. 드디어 5시, 마리아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 내 앞에 나타났다.
"봐, 신념을 가지니까 침대가 생겼지?"
오늘 걸은 거리는 22km, 앞으로 산티아고까지는 727km... 이왕 걷기 시작했으니 신념을 가지고 걸어가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걷는 것을 싫어하는 한 여자가 2015년 9월에서 10월 사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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