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찾은 피자트럭, 팔순 할머니께 오해받다
라피자 소셜 셰프의 두 번째 이야기, 산골아이와 유기농피자
▲ 할머니, 한결이예요. 피자 드세요.2016년 6월 16일 오후 한 때.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서 길 건너 이웃에 사는 팔순 할머니에게 9살 한결이가 갓 구운 피자를 드리고 있다. ⓒ 유문철
"할머니, 계세요? 한결이예요. 피자 드세요."
청주에서 피자 트럭을 몰고 농부와 산골아이를 만나러 온 라피자 셰프님들. 그들이 갓 구워낸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향을 내는 피자가 오븐에서 나왔다. 유기농 피자를 만들기 위해 학교에서 급히 돌아온 9살 산골 어린이 한결이가 유기농 라피자 한 판을 들고 조심조심 길을 건너간다. 한결이네 뒷집에 팔순 할머니에게 피자를 드리러 가는 중이다.
단양군 적성면 하리 산골마을에서 첫 번째로 구워진 라피자가 이웃집 팔순 할머니에게 배달된 사연은 이렇다. 마을에 알록달록한 라피자 트럭이 들어섰다. 마침 거동이 불편하셔서 전동카트를 타고 바깥에 나오셨던 할머니는 트럭을 보고 반가워했다. 예전에 하루에 한 번씩 마을을 돌던 부식차와 생김새가 비슷했기 때문. 전에 보던 평범한 1톤 트럭과 달리 알록달록한 모양이 좀 달라 보이기는 했지만.
하루에 한 번씩 마을을 도는 부식차는 마을 할머니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차였다. 농협 구판장에는 없는 갖가지 생필품들이 1톤 트럭에 골고루 있었기 때문이다. 두부, 콩나물, 청국장 같은 신선식품부터 땟수건, 칫솔, 비누, 세제 같은 주방·목욕제품과 간단한 응급의약품까지 있었다. 자가용이나 트럭이 없는 할머니들께는 굳이 버스 타고 읍내까지 나가는 수고를 덜어주는 이동식 생필품 가게가 고마운 존재였다.
적성면 하리는 한때 면사무소와 관공서 그리고 각종 상점이 즐비한 큰 마을이었다. 1985년 충주댐 완공으로 마을 아래를 흐르는 남한강에 물이 차고 지금은 단성면이자 구단양으로 불리는 단양읍 소재지가 신단양으로 이주하면서 고립됐다. 강남인 구단양이 수몰로 인한 마을 해체를 경험한 것처럼, 강북인 적성면도 남한강 주변 많은 마을 주민들처럼 디아스포라 행렬에 올랐다.
한때 800명의 학생을 자랑하던 적성초등학교는 폐교됐다. 경찰서·소방서도 모두 문을 닫았다. 그나마 공공기관이라고는 면사무소와 농협지소가 남았을 뿐이다. 이마저도 면사무소는 주민들 사이에서 이웃면과 분리통합 얘기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농협지소는 적자 사업장이라고 농협 내에서 폐쇄 이야기가 총회 때마다 나온다. 오죽하면 마을 주민들은 전국 면소재지 중에서 그 흔한 짜장면 가게 하나, 치킨집 하나 없는 유일한 마을이라는 자조섞인 우스갯소리를 할까.
"할머니, 부식차가 아니라 피자트럭이라 죄송해유"
이런 마을이다 보니 마트는 고사하고 변변한 동네수퍼 하나 없다. 없는 게 태반인 농협 구판장과 작은 구멍가게가 전부다. 날마다 이른 아침이면 생필품을 트럭에 싣고 마이크 소리 요란하게 나타나던 부식차는 할머니들 사이에서 인기 1호인 존재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식차의 흥겨운 마이크 소리는 멎었다. 아마도 벌이가 시원찮아서 산골 마을 장사를 그만두었으리라 짐작하지만, 이제나 저제나 하고 할머니들은 부식차를 기다려왔다. 라피자 트럭을 보고 이웃집 팔순 할머니가 부식차가 온 줄 알고 반색하며 농협 앞에 서 있는 라피자 트럭에 다가오신 데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 "할머니, 부식차가 아니예유. 피자 트럭이라 죄송해유."마을에 오랫만에 부식차가 온 줄 알고 다가오신 팔순의 마을 할머니. 라피자 김우현 쉐프는 할머니의 바램과 달리 피자 트럭인 것이 못내 마음 아프다. ⓒ 유문철
"아휴, 이게 얼마만이예유 그래. 요새 부식차가 통 오질 않아서 찬거리가 있어야지?"
라피자 김우현 셰프는 팔순 할머니께서 이동식 피자 트럭을 부식차로 착각하며 건넨 말에 마음이 짠해진다.
"할머니, 이 차는 부식차가 아니고요. 피자 만드는 차예요. 부식차 기다리시는데 죄송해서 어쩌죠?"
할머니는 오랫만에 들어온 부식차에서 찬거리를 좀 사려다가 아쉬운 표정으로 전동카트를 타고 댁으로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김우현 라피자 셰프의 마음은 더욱 더 짠해졌다.
이런 이유로 라피자 단양 출장 1호 피자는 팔순 이웃집 할머니에게로 향했다. 한결이가 마을에서 났을 때부터 유난히 한결이를 귀여워하는 이웃집 할머니에게 피자를 누가 가져다 드릴까? 단 한 사람 한결이뿐이다. 9살이 된 이후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 한결이는 마을의 막둥이이자 경로당 할아버지·할머니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귀염둥이다.
▲ 한결이네 집 앞 마당에서 라피자 단양군 출장 1,2,3호가 준비되고 있다.라피자 소셜 쉐프틀이 산골 어린이 한결이에게 피자 만드는 법을 설명하며 함께 피자 토핑을 올리고 있다. 이 중 첫번째는 팔순 할머니에게 한결이가 배달한다. ⓒ 유문철
"한결이가 왔구나. 이게 뭐여?"
"피자예요, 할머니. 드셔 보세요. 맛있어요."
"그래, 한결이 덕분에 피자라는 걸 다 먹어보는구나."
라피자 소셜 셰프님들의 따뜻한 마음에 이웃집 할머니와 한결이는 몇 번이나 더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또 하나의 추억을 서로의 마음에 그렸다.
"우와~ 이거 처음 먹어보는 맛인걸?"
▲ 우체부, 아저씨도 피자 드세요.한결이 동갑내기 친구인 수정이 아빠 신재용 단양우체국 집배원이 마침 우편물 배달을 왔다가 한결이의 피자 선물을 받는다. ⓒ 유문철
이날 오후 라피자 셰프님들과 한결이는 마당에서 모두 일곱 판의 다양한 유기농 피자를 만들었다. 이 중 세 판은 한결이가 다니는 대가초등학교 선생님과 어린이들의 몫이었다. 나머지 세 판은 한결이와 농부 아빠 그리고 가족과 이웃에게 돌아갔다.
한창 피자가 구워지고 있는 도중 한결이 아빠의 동갑내기 친구 수정이 아빠가 오셨다. 수정이 아빠는 단양우체국 집배원이다. 더운 날씨에 오토바이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도는 우체국 아저씨는 지금은 오지 않는 부식차처럼 마을 사람들이 기다리는 사람이다. 한결이는 날마다 보는 수정이 아빠에게 시원한 오미자물과 피자를 드린다.
"수정이 아빠, 더우시죠? 피자 드세요.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피자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우물우물하며 금방 피자 한 조각을 꿀꺽한 수정이 아빠 신재용 우체부의 말이다.
"어허, 한결이 덕분에 수정이 아빠가 호강하는 걸. 어디 맛 좀 보자. 야~아~, 이거 처음 먹어보는 맛인 걸. 최고다, 한결아"
이른 더위와 가뭄으로 시들어가던 산골마을의 오후, 라피자 소셜 셰프의 정이 담긴 피자는 시원한 한줄기 소나기처럼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줬다.
덧붙이는 글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리에서 유기농 농사 짓는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도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부모 기자단입니다. 유문철 시민기자의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에도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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