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신공항 유치 논란으로 돌아보는 '지역이기주의'

[주장] 지역이기주의 극복 위해 '무지의 베일' 필요하다

등록|2016.06.24 18:15 수정|2016.06.24 18:17
"우리가 맛있는 식탁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각자가 추구하는 이기심의 발현 때문이다" 이 말은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 박사의 명언 중 하나로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본 말일 것입니다.

애덤 스미스 박사의 말처럼 우리는 각자가 가진 이기심에 의해 많은 혜택을 받습니다. 분업이 가중된 사회에서 각자의 이기심에 근거한 경제 행위가 없다면 우리는 좋은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겠죠. 적절한 이기심은 우리네 삶을 풍족하게 합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 박사도 말한 것처럼 인간의 이기적 행위가 무한 긍정의 대상인 것은 아닙니다. 그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인간의 이기심은 허용되어야 하며 그래야만 개인과 사회의 부가 축적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이기심이 타인에게 공감의 대상이 되지 않을 때, 심지어 사회적 부를 해칠 때 이기심은 많은 폐해를 불러오게 마련입니다. 지역 이기주의라 할 님비현상(자신의 지역에 기피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것) 이나 핌피현상(수익 시설을 자신의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김해 공항 확장안 옳지만, 헛된 공약에 대한 사과는 필요

▲ 새누리당 부산지역 의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부의 영남권 신공항 건설 용역 결과 발표를 지켜본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유성호


지난 21일 영남권 신공항 건설이 백지화됐습니다. 신공항에 대한 사전타당성 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이 현재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간 영남권 신공항 건설을 두고 정치권을 비롯해 TK지역과 PK 지자체 및 주민 간의 갈등이 격화됐는데, 이번 결정은 이 갈등의 이유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고 김해공항을 확장하기로 한 선택은 옳습니다. 물론 정치권이 지역주민들의 욕망을 자극하며 포퓰리즘적 공약을 남발한 것은 문제이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국민의 혈세가 투입될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고 정부예산을 절약했다는 측면에서 이번 결정은 현명했습니다.

그렇다고 김해공항이 사실상의 신공항이라는 희한한 주장을 하는 청와대나 일부 정치권 인사의 섣부른 발언들에 박수를 쳐줄 수는 없습니다. 헛된 공약으로 국민적 갈등을 불러오고, 지역주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긴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며,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사과함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공약을 선거 때마다 남발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를 외치며 대통령이 됐지만 공기업 채무를 대폭 눌리고 자연환경을 파괴한 뒤 퇴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 재개발 공약을 남발하며 18대 총선에 당선됐지만 그 모든 약속을 허투루 돌렸던 일부 서울지역의 국회의원들, 그들의 헛된 공약과 그로 인해 지역주민들이 허탈함을 느껴야만 했던 이유엔 무엇보다 우리 국민의 '한탕주의', '황금 만능주의'가 있지는 않았는지를 말입니다.

우리 지역이 잘 사는 문제만 시급할까?

일례로 2010년 한나라당을 방문했을 당시, 제가 사는 곳의 지역구 의원이 LH공사 본사를 경남 진주에 유치했다는 것을 자랑하며, '균형발전'에 공헌했다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줬는데요. 전주와의 경쟁에서 이겨 LH공사 본사를 유치했음을 자랑했습니다. 경남보다 전북이 더욱 발전이 필요한 곳인데 말입니다.

저는 그때 '우리 지역에 혜택을 가져오는 정책이면 무엇이든 옳다' '이 나라의 균형발전보다 우리 지역이 좀 더 잘 사는 문제가 시급하다'라는 우리 이웃들의 핌피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영남권 신공항 갈등에서도 이런 핌피현상이 목격됩니다.

파리공항공단 엔지니어링에 따르면 김해공항에 새로운 활주로를 깔고, 연 28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터미널을 신설하는데 총 4조 3664억 원이 든다고 합니다. 밀양의 경우 6조1천16억 원, 가덕도의 경우 10조 6천929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됐는데요. 이 모두가 세금인 점을 감안하면 무엇이 더 현명한 선택일까요?

물론 저 역시 경남 지역 거주자 중 한 명으로 가까운 지역에 신공항이 건설되길 바라는 지역주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공사 과정 중에 일어날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이 지역경제의 활성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공사과정에서만 12조 원에 달하는 경제효과가 있을 것이라죠? 그러나 무리하게 혈세를 투입해 우리 지역의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우리 지역만을 위한 이기심 아닐까요?

'무지의 베일'을 활용하자

▲ 정부의 신공항 입지선정 발표를 앞두고 대구시내 곳곳에 걸려있던 현수막. ⓒ 조정훈


이 지점에서 우리는 모두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이기심이 아니라면 지양해야 한다던 애덤 스미스 박사의 주장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야 신공항 유치는 지역주민들의 바람이며 공감받는 이기심이겠지만, 무리하게 혈세가 투입되면 결국 다른 지역의 국민들도 피해를 보니 말입니다.

사람이란 본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매사를 판단할 때 이기심에 의해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사안에서 잠시 떨어져 존 롤스가 주창한 '무지의 베일'을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이해관계를 떠나 '사안의 합리적 결정'만을 추구하려는 자세 말입니다. '무지의 베일'을 활용하면 이번 신공항 건설 논란에서 나 자신, 내가 사는 지역구가 아닌 국가 전체의 장래를 위해 무엇이 현명한 결정인지 분명해집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렇다고 헛된 공약을 남발하고 여전히 김해공항 확장안이 신공항임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용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조속히 지역주민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왜 김해공항 확장안을 선택해야만 했는지에 대해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지난 10년간 지역주민들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며 지역갈등을 부추진 주범이 그들인 까닭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