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에 옥상이여."
"… 옥상에서 영규를 쐈어."
이번에는 옥상에서 총을 쏘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정대를 향해 그들처럼 달려가지 않았다.(<소년이 온다>, 31쪽)
11공수여단이라는 부대의 이름과 역할을 신문을 통해 접했다.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소설 속, 누나를 찾는 고등학생 정대에게 총격을 가하고, 부상자를 부축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해 '죽음'을 경고했던 그 소설 속 캐릭터가 누구인지. 현실 속 대칭 인물을 찾았다.
11공수여단은 1980년 5월 19일에 광주에 증원군으로 투입됐던 부대다. 옛 전남도청 앞에 배치된 11공수여단은 7공수여단과 함께 5월 21일 오후 1시 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11공수여단의 집단 발포로 최소 34명의 시민들이 숨졌다고 한다. 11공수여단이 광주에 투입돼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던 그날은 소설 속 정대가 누나를 찾으러 광장으로 갔다는 그날과 묘하게 겹쳐진다. 아마 정대는 숨진 34명의 시민들 중 1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25일 한국전쟁 66주년을 앞두고 광주 '호국 보훈 한마음 퍼레이드'가 논란이 됐었다. 기념식이 끝난 뒤 광주 동구 금남로를 거쳐 옛 전남도청인 아시아문화전당 앞까지 1.4km를 행진할 계획이 잡혔는데, 이 행진에 군악대와 참전용사, 31사단 소속 군인 150여 명, 그리고 11공수여단 소속 군인 50여 명도 참여할 예정이었다.
현실 속 수많은 정대와, 친구의 죽음을 지켜봤을 현실 속 수많은 동호들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주에 11공수여단의 이름이 그날 옥상에서 발포된 총 소리와 같이 또 한 번 울려 퍼지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이후 11공수여단 행진은 취소되는 것으로 논란은 일단락 지어졌다.
"114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소년이 온다>, 69쪽)
<소년이 온다>에서 은숙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려졌던 그 자리에 분수가 나오자 매번 이렇게 전화를 걸어 항의한다. 민원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소년이 온다>, 97쪽)
은숙이와 민원실의 이런 대화를 나눈 시기는 정부의 탄압과 감시에 의해 5월 18일에 있었던 그날의 일이 폭도로 규정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때였다. 때문에 현실에 와서 이런 대화는 사회의 탄압과 구성원 간 연대, 공감 부족 등을 보여주기 위한 소설 속 장치로나 쓰인다. 그런데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대화가 현실에서 다시 재생됐다.
논란이 있었던 지난 6월 20일 국가보훈처는 "6.25 현충일을 맞아 이미 2013년에도 광주의 향토사단인 31사단이 주축이 돼서 동일한 코스에 11공수여단이 같이 참여했던 적이 있다"며 "그때 당시에는 논란은 안 됐고, 오히려 그때 반응들이 좋아서 광주지방보훈청과 함께 좀 더 확대를 하자는 요청이 왔는데, 2014년에는 세월호 사건, 2015년에는 메르스라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시행을 못했다"라고 밝혔었다.
조금만 예민할 수는 없었을까.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사회에서 내 안전을 위협하는 것에 대해서 날카롭고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그 예민함은 그저 내 안위와 관련해서만 반응하는 개인적 성격에 불과할 건일까. 상대방이 겪었던 치명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험, 불안, 감정들에 대해서는 예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또 한 번 이 책을 펼쳤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는 여러 화자가 등장하는데, 누나를 찾다 죽은 정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동호, 의도치 않게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은숙, 진수, 그리고 동호의 어머니 등등 많은 화자가 등장해 그날의 일을 이야기 한다.
우리 주위의 동생, 친구, 또는 그날 함께 죽음을 결심했던 동지,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그날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담담하지만 울림있게 전달하고, 그럼으로써 공감도를 높이는 작가의 필력은 광주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잡음을 내는 것이 얼마나 각박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이 책은 기념일을 한참 지나 7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읽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함께 공감하고 지금과 같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함께 연대해야 소설 속 민원실과는 다른,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 옥상에서 영규를 쐈어."
이번에는 옥상에서 총을 쏘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정대를 향해 그들처럼 달려가지 않았다.(<소년이 온다>, 31쪽)
11공수여단이라는 부대의 이름과 역할을 신문을 통해 접했다.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다. 소설 속, 누나를 찾는 고등학생 정대에게 총격을 가하고, 부상자를 부축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해 '죽음'을 경고했던 그 소설 속 캐릭터가 누구인지. 현실 속 대칭 인물을 찾았다.
11공수여단은 1980년 5월 19일에 광주에 증원군으로 투입됐던 부대다. 옛 전남도청 앞에 배치된 11공수여단은 7공수여단과 함께 5월 21일 오후 1시 도청 옥상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 11공수여단의 집단 발포로 최소 34명의 시민들이 숨졌다고 한다. 11공수여단이 광주에 투입돼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했다던 그날은 소설 속 정대가 누나를 찾으러 광장으로 갔다는 그날과 묘하게 겹쳐진다. 아마 정대는 숨진 34명의 시민들 중 1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 25일 한국전쟁 66주년을 앞두고 광주 '호국 보훈 한마음 퍼레이드'가 논란이 됐었다. 기념식이 끝난 뒤 광주 동구 금남로를 거쳐 옛 전남도청인 아시아문화전당 앞까지 1.4km를 행진할 계획이 잡혔는데, 이 행진에 군악대와 참전용사, 31사단 소속 군인 150여 명, 그리고 11공수여단 소속 군인 50여 명도 참여할 예정이었다.
현실 속 수많은 정대와, 친구의 죽음을 지켜봤을 현실 속 수많은 동호들이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광주에 11공수여단의 이름이 그날 옥상에서 발포된 총 소리와 같이 또 한 번 울려 퍼지는 것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이후 11공수여단 행진은 취소되는 것으로 논란은 일단락 지어졌다.
"114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도청 민원실 부탁합니다. 안내받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기다렸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소년이 온다>, 69쪽)
<소년이 온다>에서 은숙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려졌던 그 자리에 분수가 나오자 매번 이렇게 전화를 걸어 항의한다. 민원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소년이 온다>, 97쪽)
은숙이와 민원실의 이런 대화를 나눈 시기는 정부의 탄압과 감시에 의해 5월 18일에 있었던 그날의 일이 폭도로 규정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때였다. 때문에 현실에 와서 이런 대화는 사회의 탄압과 구성원 간 연대, 공감 부족 등을 보여주기 위한 소설 속 장치로나 쓰인다. 그런데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대화가 현실에서 다시 재생됐다.
논란이 있었던 지난 6월 20일 국가보훈처는 "6.25 현충일을 맞아 이미 2013년에도 광주의 향토사단인 31사단이 주축이 돼서 동일한 코스에 11공수여단이 같이 참여했던 적이 있다"며 "그때 당시에는 논란은 안 됐고, 오히려 그때 반응들이 좋아서 광주지방보훈청과 함께 좀 더 확대를 하자는 요청이 왔는데, 2014년에는 세월호 사건, 2015년에는 메르스라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시행을 못했다"라고 밝혔었다.
조금만 예민할 수는 없었을까.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사회에서 내 안전을 위협하는 것에 대해서 날카롭고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그 예민함은 그저 내 안위와 관련해서만 반응하는 개인적 성격에 불과할 건일까. 상대방이 겪었던 치명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낀 경험, 불안, 감정들에 대해서는 예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두 번 읽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또 한 번 이 책을 펼쳤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는 여러 화자가 등장하는데, 누나를 찾다 죽은 정대, 친구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동호, 의도치 않게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은숙, 진수, 그리고 동호의 어머니 등등 많은 화자가 등장해 그날의 일을 이야기 한다.
우리 주위의 동생, 친구, 또는 그날 함께 죽음을 결심했던 동지, 그리고 부모의 입장에서 그날은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담담하지만 울림있게 전달하고, 그럼으로써 공감도를 높이는 작가의 필력은 광주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잡음을 내는 것이 얼마나 각박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 준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이 책은 기념일을 한참 지나 7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읽는 것이 가장 적절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함께 공감하고 지금과 같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함께 연대해야 소설 속 민원실과는 다른,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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