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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법은 사이다? 진실을 알려드립니다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⑪] 파견노동의 현실 계속 감시하겠습니다

등록|2016.06.29 10:46 수정|2016.06.29 10:57
파견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파견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기자 명함을 버리고 파견노동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난 2, 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 취업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기획기사로 공개합니다. - 기자 말

▲ 6월 20일부터 고용노동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파견법 관련 이벤트. ⓒ 고용노동부


여기 작은 이벤트가 있습니다. 문제를 풀면 추첨해서 경품을 줍니다. 문제는 쉽고, 경품은 약소합니다. 고용노동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누리꾼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겠지요?

그런데, 열기가 아주 뜨겁습니다. 120명에게 경품이 돌아가는데, 이미 2000명에 달하는 누리꾼이 참여했습니다. 6월 20일부터 한 달 동안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겠네요. 여러분도 문제를 풀어보시겠습니까?

'파견법은 ○○○법이다! ○○○에 들어갈 말은?'

답은 통쾌한 상황을 이르는 유행어입니다. '중장년의 일자리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가 떴다'처럼 고용노동부의 노골적인 힌트도 있으니, 답을 찾긴 쉬울 겁니다.

그래도 헷갈린다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지요. 파견법을 더 알고 싶은 분도 있을 겁니다. 제가 힌트를 준비했습니다. 이 내용을 알면 파견법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힌트의 신뢰성은 우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용노동부가 이벤트 5일 전에 발표한 내용이니까요.

고용노동부가 말하는 파견법이란 지금의 파견법보다 파견을 더욱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파견법 아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안다면, 파견법 개정안이 어떤 법인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 6월 20일부터 고용노동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진행하고 있는 파견법 관련 이벤트. ⓒ 고용노동부


파견노동자 현실은...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은 지난 15일 17쪽짜리 '안산·시흥지역 파견근로자 보호 종합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안산지청이 관할하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는 전국에서 파견노동자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파견근로 실태를 보면, 고용노동부가 바라보는 파견노동자의 현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업은 상시 업무까지도 파견근로자를 불법으로 사용하고 있어, 근로자의 일자리 질이 저하되고 고용이 불안해지는 등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음.'

이상합니다. 고용노동부 이벤트에서 파견법이 좋은 법인 양 소개되고 있는 것과는 다른 현실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죠.

'파견근로자의 파견기간은 대부분 6개월 미만, 임금은 150만 원 수준으로, 단순 노무 및 조립 업무에 많이 종사.'

'파견근로자는 근로계약서 미작성 및 미교부, 4대 보험 미가입, 퇴직금 미해당, 부당한 처우 및 차별, 고용불안 등 근로조건이 열악.'

마치 노동자가 겪을 수 있는 나쁜 근로조건을 모아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반월·시화단지에서 파견법은 휴지 조각입니다. 불법이 판칩니다.

'무허가 파견업체 난립 및 제조업체 상시 업무에 불법 파견 성행은 정상적인 노동시장 운영을 저해하는 한편, 법과 원칙, 정부의 권위를 손상.'

과연 파견법이 좋은 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시 이벤트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00개에 달하는 댓글 중에서 공감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역시 고용노동부의 속보이는 이벤트에 당할 누리꾼이 아닙니다.

'파견법의 노동자가 고통 받고 '갑질'에 횡포당하는 게 사실인데, 포장 쩌는 걸 보니 충치에 당 걸려 죽으라는 것과 같은 사이다네요.'

▲ 지난 2월 안산역 앞에 있는 한 파견업체의 인력모집 광고판. 2016년 최저임금인 시급 6030원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 조건이 눈에 띈다. 지난해 최저임금인 시급 5580원에 맞춘 급여 조건인 것으로 보인다. ⓒ 선대식


앞으로도 계속 감시하겠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저도 누리꾼도 고용노동부의 이번 이벤트를 흘려 넘겼겠지요. 하지만 누군가의 노력으로 몇 해 전부터 파견노동자의 열악한 현실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 누군가가 없었다면, 지난해부터 박근혜 정부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한 파견법 개정은 현실화됐을 겁니다.

그들은 바로 파견노동자와 활동가들입니다. 안산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2013년 파견노동 실태조사에 나섰습니다. 파견노동자들은 파견노동의 현실을 고발했고, 국회 국정감사에도 나갔습니다. 민주노총 안산지부도 힘을 보탰습니다.

제가 지난 2, 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단지의 여러 공장에 위장 취업할 수 있었던 데에도 이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앞서 말한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의 종합 대책도 이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이벤트에서 볼 수 있듯,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파견법 개정입니다. 이와 상충되는 안산지청의 대책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안산지청장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불법 파견을 단속할 여력이 없다", "불법 파견은 노동자가 원하는 일"이라고 말해,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안산지청이 '공공고용서비스 강화', '근로조건 개선 추진·불법 파견 단속'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안산지청이 180도 입장을 바꾼 셈입니다. 진정성에 의구심이 생기지만, 의미 있는 첫 걸음인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얼마 전 위장취업을 도와줬던 분들과 연락했는데, 누군가 말했습니다.

"기자님 기사 때문에 고용노동부가 대책을 발표한 것 같네요."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제가 쓴 기획 기사들이 안산지청의 대책을 이끌어내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를 했다면, 계속 이를 감시하는 것도 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파견 노동의 현실을 고발하고 파견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는 데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기획에 관심을 보여준 독자와 후원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클릭]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기획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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