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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 떨어질 수 있는 상황, 보호복 대신 코팅장갑만"

'울산 고려아연 황산 유출' 목격자들 증언... "고려아연 측도 안전관리 소홀히 해"

등록|2016.06.29 13:51 수정|2016.06.29 15:02

▲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플랜트노조)와 울산노동자건강권대책위,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작업자들이 29일 오전 10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체적 안전부실을 지적하고 있다 ⓒ 박석철


28일 오전 9시 15분께 울산시 울주군 온산읍 고려아연 2공장에서 황산이 누출돼 작업 중이던 노동자 6명이 화상 등 중경상을 입어 2명이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1명은 중태다. 현장에 있던 동료 작업자들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총체적 안전관리 부실'인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 울산 고려아연 황산 누출, "잔류 황산 미확인" 의혹).

이번 사고에서는 작업자들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고, 관리자가 작업 전 "황산 몇 방울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지급된 건 코팅 장갑과 보안경, 일회용 마스크뿐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후 원청인 고려아연측은 "협력업체 근로자가 작업 순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이며 배관 보수를 맡은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사업장 내 황산탱크 안의 잔여물질을 빼내고 배관 보수작업을 할 것을 지시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작업자들은 증언을 통해 고려아연측이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사고 전후의 과정을 증언했다.

"고려아연, 잔류가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안전작업 허가서를 내줘"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플랜트노조)와 울산노동자건강권대책위는 29일 오전 10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목격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사건 발생의 원인을 명확히 수사해 책임자의 죄를 무겁게 물어라"라며 "고려아연은 책임을 인정하고, 산재 노동자들 앞에 사죄하고 보상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건설업체들이 플랜트노조의 현장 안전보건 활동을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플랜트노조 등은 "원청 고려아연이 사고 후 거짓변명을 늘어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고현장의 노동자들이 증언하듯, 사고가 난 맨홀에는 개방을 허가하는 표시가 있었고, 아침 조회시간에 들은 작업지시 또한 마찬가지였다"면서 "고려아연 측의 주장대로 개방해야 하는 맨홀이 아니었다면, 왜 현장에 있던 원청 직원들은 하청 작업자들을 만류하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었다.

특히 이들은 "고려아연은 잔류가스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안전작업 허가서를 내준 것"이라며 "1000리터의 황산액은 그간 고려아연이 '배관 잔류액 중화-물청소-잔류가스 확인'이라는 안전작업 절차(드레인)를 얼마나 소홀히 했는지 보여준다. 관리감독은커녕 원청이 앞장서 안전작업 매뉴얼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하청업체인 한림이엔지는 근로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았고. 안전복(방호피복)도 지급하지 않았다"면서 "노동자들이 들은 주의사항이라고는 '작업 시 황산 몇 방울이 튈 수 있으니 장갑을 끼라'는 말뿐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은 "현재 건설현장에서는 권한도 능력도 없는 파견인력업체와 다를 바 없는 하도급 업체가 판을 친다"면서 "위험작업인 배관 보수설비 등 플랜트건설 일은 도급으로 하청에 떠넘기면 그만이고, 하청업체는 단기계약을 맺은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을 부려 부담을 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은 목숨을 담보삼아 하루 일당을 받아간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솜방망이 처벌도 사고를 반복시키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때문에 원청의 책임을 법으로 분명히 하고, 산재책임자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그간의 요구를 지켜줄 것을 촉구했다.

아울러 "고용노동부는 노동자 스스로 안전을 감독하겠다는 노동조합의 명예산업감독관 요청을 번번이 거절했고, 시공사와 건설업체들은 노동조합의 현장출입조차 막고 있다"면서 "불법과 편법이 난무하는 건설현장의 문을 걸어 잠근 채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 그 결과 황산 유출 사건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황산 누출 사고 현장에서 함께 일한 작업자들의 증언은...

기자회견 말미, 당시 사고 현장에서 부상자들과 함께 일을 했던 작업자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목격자들은 원청 고려아연이 언론을 통해 "사고가 난 해당라인 작업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한 데 대해 반박했다.

이들은 "사고 전날(27일) 안전교육을 받은 8명 중 4명이 28일 작업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 (하도급업체) 한림이엔지 소장이 '바깥 쪽 맨홀 2개를 먼저 풀고 안으로 들어가 나머지 맨홀과 라인(배관)을 풀라'고 했다"면서 "다음날(28일) 아침 조회 시간에 한림 소장 바로 밑 담당자가 '오늘 맨홀과 라인을 다 풀자'고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두 팀으로 나눠 바깥쪽 맨홀 볼트를 푸는데 사고가 난 팀이 맨홀이 수월해 먼저 풀고 안쪽 배관을 풀러 갔다. 소장에게 '(사고가 난) 해당라인을 풀러 간다'고 보고했더니 소장도 별말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목격자들은 또한 고려아연 측이 "작업자들이 안전작업허가서를 잘못 이해했다"고 한 데 대해 "원래 다른 현장에서는 원청에서 안전작업지시서가 내려오면 작업자들도 하청업체관리자와 함께 사인을 하는데 고려아연에서는 하청업체에게만 안전작업허가서를 내려보낸다"면서 "하청업체 작업자들이 사인을 하는 절차는 생략된다"고 증언했다.

목격자는 따라서 "안전작업허가서는 시설마다 배치돼 있고, 작업을 하면 원청관리자와 감독관이 안전허가서와 작업내용을 대조하는 작업을 한다"면서 "그렇기에 안전작업허가서를 노동자가 마음대로 오독하여 다른 작업을 하는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고려아연이 "작업자들이 작업순서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한 데 대해 목격자는 "사고 현장 인근에서 상부 맨홀을 열던 다른 작업자들도 뚜껑을 열려고 하자 가스가 확 올라와 작업을 중단하고 대피를 한 일이 있다"면서 "배관 잔류액과 잔류가스를 배출하는 드레인 작업이 전반적으로 안 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목격자들은 또한 하도급 업체인 한림측에 대해서는 "27일 안전교육을 받았으나 한림측이 근로계약서를 28일 오전 10시쯤 쓰자고 했다"면서 "결국 9시쯤 사고가 나 부상자들은 근로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은 상태"라고 증언했다.

특히 이들은 "아침조회시 한림 측에서 '라인에서 황산 몇 방울이 떨어질 수 있으니 코팅장갑을 끼고 하라'는 말뿐이었다"면서 "황산 등 강산성 유해물질 작업을 할 때 제공해야 하는 보호복은 지급되지 않았다. 우리가 받은 것이라곤 코팅장갑, 보안경, 1회용마스크뿐"이라고 밝혔다.

또, 목격자들은 "언론보도를 보니 고려아연 측이 '물을 빨리 뿌리고 중화시키는 등 대비했다'고 하는데, 한 것이 하나 없다. 사고자들을 챙긴 사람들은 옆에서 일한 동료 작업자들이다"라면서 "심지어 구조하는 사람이 부족해 부상당한 사람들끼리 (황산을 희석시키기 위해) 서로 물을 뿌려 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원청 고려아연 직원들도 그 자리에 있었으나 사람이 우선이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한림이엔지'만 소리쳐 부르면서 질타했다, 다들 사고 라인에만 몰려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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