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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학생 친구 맺어라?' 정부가 화 불렀다

[발굴] 성추문 경찰관들에게 학생상담 권한 준 '정부 문서' 논란

등록|2016.06.29 21:04 수정|2016.06.29 22:49

▲ 정부가 만든 ‘학교폭력대책, 2014년 추진계획’ 문서. ⓒ 윤근혁


학교전담경찰관들이 저지른 여학생 대상 성추문이 전국 학부모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 밝혀진 것만 해도 두 건이다.

교육 문외한인 경찰에게 '학생상담권 내준 문서' 살펴보니

학생상담 교육에는 문외한인 경찰이 어떻게 학생을 밀폐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

국무조정실과 교육부, 경찰청 등이 함께 만든 학교폭력대책에서 경찰관-학생 만남을 권장했을 뿐더러 경찰관에게 상담권한까지 부여해온 사실이 문서로 확인됐다.

29일 정부가 만든 '학교폭력대책, 2014년 추진계획' 문서를 살펴본 결과 정부는 학교전담경찰관과 학생 사이에 '카카오톡 친구맺기 활성화' 사업을 공식 업무로 채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문서의 '학교전담경찰관 증원 등 운영 활성화' 항목에는 "'학교전담경찰관-학생'간 카카오톡 등 SNS 친구맺기 활성화로 수시(로) 학생 상담·지원 및 적극적인 피해신고 유도"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문서는 정부가 교육부의 협조 속에서 학교폭력 가해·피해 학생을 무작위로 경찰과 연결시켜 친구 맺기를 하도록 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게다가 가해 학생 검거뿐만 아니라 피해학생까지 상담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열어 준 사실도 확인된다.

또한 정부는 같은 문서에서 "학교전담경찰관이 교내 상주·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도록 학교에 권장했으며 "학교 게시판·홈페이지·가정통신문 등을 활용, 모든 학생들이 학교전담경찰관의 연락처를 알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교폭력에 대처하기 위해 만든 학교전담경찰관은 2015년 현재 1138명이다. 한 명의 경찰관으로 하여금 10여 개의 학교를 도맡아 학생 상담과 수사 등을 전담토록 한 것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학생들의 상벌을 결정하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5년 현재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찰은 모두 1만1541명이다.

이 경찰관들은 학생에 대한 수사권은 물론 학생 신분에 대한 생사여탈권까지 쥐고 있는 셈이다. 학생들에겐 '갑중의 갑'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학교폭력 가해·피해 학생들에 대한 상담권한을 경찰관에게 무작위로 부여한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갑중의 갑' 경찰과 '을중의 을' 학생 친구 맺기 사업?

학생에 대한 상담은 교육 또는 상담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학교폭력 엄단 분위기 속에서 비전문가인 경찰에게도 이 같은 권한을 줬다.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교육부는 이런 과정에 적극 협조했다. 학교는 교육부의 '위험한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부산 경찰관들의 여학생 대상 성추문 사건을 세상에 알린 장신중 전 강릉경찰서장의 입에서도 나왔다. 다음은 그가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학교 일은 학교에, 가정 일은 가정에 맡기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경찰은 보충적 역할에 그치고 빠지라. …정치권과 언론의 일회성 관심을 위해 '학교전담경찰관' 등 아무짝에도 쓸데가 없는 수십 개 전담반을 편성할 때부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번 사건은 교육에 문외한인 경찰이 교육 전문가 조직인 교사를 제쳐 놓고 학교 문제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젊은 경찰관에게 사춘기 여학생 상담을 맡기는 이벤트 시책 시작과 함께 모든 경찰관이 우려했었던 사건이다."

29일 오후 부산시교육청은 "교육청과 경찰청 간에 세부 개선방안이 마련될 때까지 학교전담경찰관의 교내활동을 일시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도 학교전담경찰관 제도에 대한 개선 작업에 나섰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되어버렸다"며 따가운 눈총을 보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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