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군에게 얼굴 그려줬더니, 좋아하더라고..."
중학 2학년 중퇴, 77세 시골화가 한 분 소개합니다
[관련 기사] 초등학교 1학년, 68세 할머니를 소개합니다
"가난 때문이었죠.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닌 게 전부예요."
강원도 화천 사내면 광덕3리에 사시는 김무영(77) 할아버지는 '미술을 전공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사진만 놓고 이렇게 정교한 묘사가 가능할까. 명암 배치나 원근감은 전문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거란 내 생각을 뒤집었다.
"인민군 얼굴을 그려줬더니,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한국전쟁 당시 김 할아버지는 11살이었다. 인민군들은 두려운 존재였다. 수가 틀리면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했다. 자신도 살고 부모도 살릴 방법을 생각했다. 몰래 무섭게 생긴 한 인민군 얼굴을 그렸다. 그러자 그들은 앞다투어 줄을 섰다. "당시 변변한 카메라 하나 없던 시절이라 자신과 똑같이 그려주니까, 좋아했던 게야." 김 할아버지는 당시 상황을 그렇게 회상했다.
"그땐 묵묵히 계시던 아버님이 6.25가 끝나자, 화를 벌컥 내시는 겁니다."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 잘 그린다는 말을 들을 땐 으쓱해지곤 했다. 인민군을 그려주고 목숨을 부지했다는 수치 때문일까, 휴전 후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는 아들을 못마땅히 여겼다. 아이가 가지고 있던 연필과 종이를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중학교 2학년에 진학한 소년은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가난 때문이었다. 남의 집을 전전하며 농사일을 도왔다. 숟가락 하나 줄이는 게 그나마 집안을 돕는 일이라 생각했다.
미련이 남아서일까,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리기도 했다.
"밤을 새워도 힘들지 않더라고요."
70세 나이에 일에서 손을 뗐다. 얼마 되지 않은 퇴직금을 쪼개 화구(畫具)를 샀다. 사람 얼굴 그리는 게 좋았다. 마치 그 대상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빌 게이츠도 만나고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도 만났다. 시공을 초월해 세계적 명배우 알랭 들롱도 그의 친구가 됐다. 초상화에 몰두한 이유다.
"군에 나갈 일 있으면 이거 군수님 가져다 드리세요."
어느 날 느닷없이 나를 찾은 김무영 할아버지는 정성스레 싼 보자기를 풀었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그림. 최문순 화천군수 얼굴이다. 인터넷에서 찾아 15일간 그렸단다. 일을 할 땐 손이 저리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그림을 그릴 땐 그런 증세가 없다고 했다. 즐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차이 아닐까.
"초상화 전시 한 번 하실래요?"
"액자도 맞추어야 하고, 마땅히 걸 장소도 없잖아요."
지역 문화센터를 떠올렸다. 2층 규모 건물에선 에어로빅, 설장구, 컴퓨터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장소다. 공간을 활용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다양성도 확보된다. 액자는 목공예품 제작 업체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맞췄다.
"연세도 많으신 분이 잘 그리셨네..."
초상화 20점을 전시했다. 관람자들 반응이 의외로 시큰둥하다. 나만 감동했었나!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작가가 미술 전공인 줄 아는 듯했다. 설명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 그림을 그리신 김무영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신 분이 아닌 가난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때 중퇴하신 분입니다. 누구나 노력을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와~ 대단하신 분이네... 정말 똑같이 그리셨네."
짧은 안내 문구를 붙였더니 반응이 달랐다. 그림 관람 시간도 길어졌다. 일부러 아이 손을 잡고 찾는 주민도 늘었다.
"독학으로 그리셨대. 너도 뭐든 열심히 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거야."
"지역주민들에게 무료로 그림 지도를 하고 싶습니다. 학생이나 다문화 가정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타고난 소질보다 열정과 관심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질은 노력보다 못하단 말도 덧붙였다. 할아버지는 다문화 가정주부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부족을 아쉬워했다. 문화센터에 미술 분야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게 됐다.
(미술 전공이 아니기에) 교과서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김 할아버지만의 노하우, 초상화 정교하게 그리기를 쉽게 배우는 지름길이 열렸다.
▲ 스티브잡스, 김무영 할아버지가 그렸다. ⓒ 신광태
"가난 때문이었죠.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닌 게 전부예요."
강원도 화천 사내면 광덕3리에 사시는 김무영(77) 할아버지는 '미술을 전공했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사진만 놓고 이렇게 정교한 묘사가 가능할까. 명암 배치나 원근감은 전문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거란 내 생각을 뒤집었다.
"인민군 얼굴을 그려줬더니,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한국전쟁 당시 김 할아버지는 11살이었다. 인민군들은 두려운 존재였다. 수가 틀리면 무고한 양민들을 학살했다. 자신도 살고 부모도 살릴 방법을 생각했다. 몰래 무섭게 생긴 한 인민군 얼굴을 그렸다. 그러자 그들은 앞다투어 줄을 섰다. "당시 변변한 카메라 하나 없던 시절이라 자신과 똑같이 그려주니까, 좋아했던 게야." 김 할아버지는 당시 상황을 그렇게 회상했다.
"그땐 묵묵히 계시던 아버님이 6.25가 끝나자, 화를 벌컥 내시는 겁니다."
아이는 그림 그리는 게 좋았다. 잘 그린다는 말을 들을 땐 으쓱해지곤 했다. 인민군을 그려주고 목숨을 부지했다는 수치 때문일까, 휴전 후 아버지는 그림을 그리는 아들을 못마땅히 여겼다. 아이가 가지고 있던 연필과 종이를 모조리 불살라 버렸다.
▲ 김무영 어르신 부부(왼쪽 위말례 할머니) ⓒ 신광태
중학교 2학년에 진학한 소년은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가난 때문이었다. 남의 집을 전전하며 농사일을 도왔다. 숟가락 하나 줄이는 게 그나마 집안을 돕는 일이라 생각했다.
미련이 남아서일까,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다.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리기도 했다.
▲ 화천 감성마을 촌장 이외수 작가도 그렸다. ⓒ 신광태
"밤을 새워도 힘들지 않더라고요."
70세 나이에 일에서 손을 뗐다. 얼마 되지 않은 퇴직금을 쪼개 화구(畫具)를 샀다. 사람 얼굴 그리는 게 좋았다. 마치 그 대상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빌 게이츠도 만나고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도 만났다. 시공을 초월해 세계적 명배우 알랭 들롱도 그의 친구가 됐다. 초상화에 몰두한 이유다.
▲ 최문순 화천군수, 사진보다 더 사진같다. ⓒ 신광태
"군에 나갈 일 있으면 이거 군수님 가져다 드리세요."
어느 날 느닷없이 나를 찾은 김무영 할아버지는 정성스레 싼 보자기를 풀었다.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그림. 최문순 화천군수 얼굴이다. 인터넷에서 찾아 15일간 그렸단다. 일을 할 땐 손이 저리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그림을 그릴 땐 그런 증세가 없다고 했다. 즐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차이 아닐까.
"초상화 전시 한 번 하실래요?"
"액자도 맞추어야 하고, 마땅히 걸 장소도 없잖아요."
지역 문화센터를 떠올렸다. 2층 규모 건물에선 에어로빅, 설장구, 컴퓨터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장소다. 공간을 활용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다양성도 확보된다. 액자는 목공예품 제작 업체를 통해 저렴한 가격으로 맞췄다.
▲ 김무영 할아버지 그림 전시실. ⓒ 신광태
"연세도 많으신 분이 잘 그리셨네..."
초상화 20점을 전시했다. 관람자들 반응이 의외로 시큰둥하다. 나만 감동했었나!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작가가 미술 전공인 줄 아는 듯했다. 설명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이 그림을 그리신 김무영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신 분이 아닌 가난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때 중퇴하신 분입니다. 누구나 노력을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것을 알려 드리기 위해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와~ 대단하신 분이네... 정말 똑같이 그리셨네."
짧은 안내 문구를 붙였더니 반응이 달랐다. 그림 관람 시간도 길어졌다. 일부러 아이 손을 잡고 찾는 주민도 늘었다.
"독학으로 그리셨대. 너도 뭐든 열심히 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거야."
▲ 김무영 할아버지는 필자의 요청에 화구를 보여줬다. ⓒ 신광태
"지역주민들에게 무료로 그림 지도를 하고 싶습니다. 학생이나 다문화 가정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타고난 소질보다 열정과 관심이 중요하다고 했다. 소질은 노력보다 못하단 말도 덧붙였다. 할아버지는 다문화 가정주부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부족을 아쉬워했다. 문화센터에 미술 분야를 하나 더 추가할 수 있게 됐다.
▲ 세계적 명배우 알랭 들롱이다. ⓒ 신광태
(미술 전공이 아니기에) 교과서적인 가르침이 아니다. 김 할아버지만의 노하우, 초상화 정교하게 그리기를 쉽게 배우는 지름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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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를 쓴 신광태 시민기자는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