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협력자 중국인 왕계현 이야기, 얼굴이 화끈
[서평] 정운현 지음 <묻혀있는 한국 현대사>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책들이 있다. 지난 3월에 읽은 <조선의 딸, 총을 들다>(정운현 지음
)도 그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여성으로서의 삶은 물론 목숨까지 내던진 채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평가나 마땅한 예우는커녕 묻히고 잊힌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재조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독립운동 관련 여러 책에서 누군가의 협력자로 언급되곤 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접하며 여성들의 독립운동, 그 구체적인 것들이 궁금했다. 그러나 여성 독립운동가들만을 재조명한 책을 찾지 못했다.
이러니 이름조차 전혀 몰랐던 여러 여성 독립운동가들까지 알게 해준 <조선의 딸, 총을 들다>가 인상 깊게 기억되는 것은 당연. <묻혀있는 한국 현대사>(인문서원 펴냄)는 <조선의 딸, 총을 들다>(관련기사 : 임신한 몸으로 독립운동했던 안경신, 그 후엔) 저자의 이후 책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지난 100년 동안의 사건과 사실 19가지의 존재와 진실, 왜곡을 다뤘다. 목차를 훑다가 가장 먼저 찾아 읽은 것은 '해인사 소나무, 몹쓸 짓을 당하다-일제의 송진 채취로 훼손된 산림 잔혹사'다.
일제강점기에 호랑이를 비롯한 한반도의 수많은 동물들이 일제에 의해 남획되어 멸종했다는 것. 수많은 소나무들이 일본의 무모한 전쟁, 그 망상에 희생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문경새재나 아산 봉곡사 일대의 소나무, 안면도 일대의 소나무 등 그 훼손 흔적을 가지고 있는 소나무들이 우리나라 전역에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의 소나무 훼손, 그 구체적인 것들까진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훼손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이 그들 소나무 곁에 서 있기 때문에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긴 하다. 그런데 어떤 안내문이든, 그리고 어떤 책이든 안내문의 간략한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채취과정이나 연료로 만드는 과정 등, 구체적으로, 가급 많이 알고 싶었다. 이 책은 8쪽에 걸쳐 송탄유 채취에 대해 꽤 깊이 다룬다. 어떤 연장들이 필요한지, 어떤 방법들로 채취를 했는지, 동네마다 송탄유 채취를 위해 조직되었던 단체나,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의 불이익 등, 송탄유 채취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깊게 들려준다.
게다가 이처럼 송탄유 채취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증언까지 싣고 있다. 관련 사진도 7장이나 실었다. 여하간 덕분에 오래전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으나 알길 없던 그 갈망이 어는 정도 풀렸다. 책의 특징은, 이처럼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그 어떤 책보다 깊이, 그리고 폭넓게 다뤘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처럼 중요 사건들만을 뽑아 다룬 책들이 이미 많이 출간됐다. 매우 반가운 일이다. 여하간 목차만으로 그와 같은 책들 중 또 다른 한권이겠거니, 간과해 버리고 마는 그런 사람들도 혹시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쉽다.
송탄유 채취 관련 이야기처럼 그 어떤 책에서도 들려주지 않은 것들을, 그리고 엄연한 사실임에도 이제까지 누구도 말하지 않은 참 많은, 그리고 중요한 사실들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묻혀 있는 것들을 발굴해 들려준다'는 생각이 자주 들 정도로 말이다.
을사오적보다 30년 앞서 친일에 알장선 친일파 1호 김인승 이야기도, 서울시가 우남시가 될 뻔한 사연도, 빨갱이란 용어 탄생 이야기도 특히 인상 깊은 이야기들이다.
죄라면 힘없는 국민이라는 이유뿐인데 일본의 가미카제였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조차 위로받지 못하고 있는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들의 이야기는 매우 짠하게 읽었다.
'묻혀 있는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내는 계기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봄, <조선의 딸, 총을 들다>를 읽으며, 그리고 책소개 글을 쓰며 무심결에 이처럼 바랐다. 지난해 여름에 본 <암살>(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을 도와주는 아네모네 마담(김혜숙 분)도 떠올랐다. 그 마담처럼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나라의 독립에 바쳤지만 마땅한 예우는커녕 그처럼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 없이 묻히고, 잊힌 여성들이 많을 것인가?란 생각과 함께.
이 책 <묻혀있는 한국 현대사>도 그처럼 이름만이라도 알려졌으면, 그런 그들의 삶이나 관련 사건이 재조명 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광복 71년째임에도 마땅한 예우는커녕 이름조차 낯설어 아쉽고 씁쓸해지는 그런 이름들이 나온다.
'최후의 레지스탕스, 이승만 암살을 시도하다'란 제목으로 만날 수 있는 독립운동가 김시현과 김시현을 도운 총독부 경찰 출신 황옥, '광복군의 숨은 은인'을 아십니까'란 제목으로 소개되는 왕계현 대령이 그들. 특히 광복군 연락 및 지원업무 실무자였던, 그런데도 정부 차원의 인사도 받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는 중국인 왕계현 이야기는 너무나 씁쓸하게 읽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이들의 이야길 읽으며 '그 어떤 일보다 객관적인 평가와 그에 맞는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독립운동 관련 보상(예우)에도 기득권자들의 입김이 기준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걸까. 그런데 아마도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은혜를 모르는 국민이라는 부끄러움'이 걷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도 그중 하나가 될 것 같다. 여성으로서의 삶은 물론 목숨까지 내던진 채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평가나 마땅한 예우는커녕 묻히고 잊힌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재조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지난날 독립운동 관련 여러 책에서 누군가의 협력자로 언급되곤 하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접하며 여성들의 독립운동, 그 구체적인 것들이 궁금했다. 그러나 여성 독립운동가들만을 재조명한 책을 찾지 못했다.
이러니 이름조차 전혀 몰랐던 여러 여성 독립운동가들까지 알게 해준 <조선의 딸, 총을 들다>가 인상 깊게 기억되는 것은 당연. <묻혀있는 한국 현대사>(인문서원 펴냄)는 <조선의 딸, 총을 들다>(관련기사 : 임신한 몸으로 독립운동했던 안경신, 그 후엔) 저자의 이후 책이다.
▲ 일제강점기 일제의 송탄유 채취로 인한 훼손을 간직한채 자라고 있는 아산 봉곡사 천년의 숲길 소나무. ⓒ 김현자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지난 100년 동안의 사건과 사실 19가지의 존재와 진실, 왜곡을 다뤘다. 목차를 훑다가 가장 먼저 찾아 읽은 것은 '해인사 소나무, 몹쓸 짓을 당하다-일제의 송진 채취로 훼손된 산림 잔혹사'다.
1940년대 들어 일제는 중국 대륙과 동남아 및 남양군도 등 두 곳에서 큰 전쟁을 벌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전쟁물자가 달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중에서도 석유가 제일 문제였다. 결국 석유 대용품을 만들어 쓰기로 했는데 송진에서 추출한 송탄유가 그것이었다. 송탄유는 비누나 도료 등 생필품 원료는 물론, 군용기에도 유용한 전쟁 물자였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지역별로 할당량을 정해 조선인들들 송진채취에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 전역의 질 좋은 소나무들이 칼질을 당했다. 1941년 미국의 석유수출 금지로 연료 수급에 차질을 빚게 되면서 무차별적으로 행해졌다.
소나무에서 송탄유를 추출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지면에서 70~80센티미터 지점에 높이 10센티미터, 길이 20센티미터 크기의 V자형 홈을 낸 후 소나무의 속결 사이로 배어나오는 생송진을 함석 등을 이용하여 받아내는 방식이며, 다른 하나는 가마 형태의 틀을 만든 후 그 속에 관솔을 넣고 불을 지펴 관솔에 함유된 송탄유를 추출하는 방식이다. - <묻혀있는 한국 현대사>에서.
일제강점기에 호랑이를 비롯한 한반도의 수많은 동물들이 일제에 의해 남획되어 멸종했다는 것. 수많은 소나무들이 일본의 무모한 전쟁, 그 망상에 희생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문경새재나 아산 봉곡사 일대의 소나무, 안면도 일대의 소나무 등 그 훼손 흔적을 가지고 있는 소나무들이 우리나라 전역에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의 소나무 훼손, 그 구체적인 것들까진 그다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훼손 사실을 알리는 안내문이 그들 소나무 곁에 서 있기 때문에 그나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긴 하다. 그런데 어떤 안내문이든, 그리고 어떤 책이든 안내문의 간략한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같은 내용을 다른 표현으로 이야기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채취과정이나 연료로 만드는 과정 등, 구체적으로, 가급 많이 알고 싶었다. 이 책은 8쪽에 걸쳐 송탄유 채취에 대해 꽤 깊이 다룬다. 어떤 연장들이 필요한지, 어떤 방법들로 채취를 했는지, 동네마다 송탄유 채취를 위해 조직되었던 단체나, 할당량을 달성하지 못했을 경우의 불이익 등, 송탄유 채취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깊게 들려준다.
"내가 3학년, 그가 4학년이 되자 각 학년의 학급이 일제히 군대식 편제로 바뀌었다. 각 학년의 분단은 분대로, 그리고 각 학급이 소대로 개칭되었다. (…)매주 하루가 수업이 없는 근로봉사일로 바뀌었다. 그날이 되면 우리는 낫이나 손도끼에 지게를 지고 소나무가 있는 산으로 내몰리었다. 일제는 그 무렵에 벌써 전쟁 수행을 위한 자원인 유류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체원료로 소나무 공이를 따서 기름을 얻어 쓰는 송탄유 채취에 우리를 동원했다.
일제가 강제한 송탄유 채취는 군 작전에 준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출발 전에 우리는 연병장으로 개칭된 운동장에 모였다. 거기서 교장의 사열을 받은 각 반 단위로 송탄유 채취가 가능한 산을 향하여 행군했다. 대열 앞에는 군기에 해당되는 각 학급의 정신대기가 나부꼈다. 그런 대열에는 행진곡을 부는 나팔수가 부는 신호에 맞추어 송탄유 채취장인 산으로 향했던 것이다."(당시 초등학생으로 송탄유 채취에 동원되었던 김용직(서울대 명예교수) 증언)
게다가 이처럼 송탄유 채취에 동원되었던 사람들의 증언까지 싣고 있다. 관련 사진도 7장이나 실었다. 여하간 덕분에 오래전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었으나 알길 없던 그 갈망이 어는 정도 풀렸다. 책의 특징은, 이처럼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그 어떤 책보다 깊이, 그리고 폭넓게 다뤘다는 것이다.
▲ <묻혀있는 한국 현대사> 책표지. ⓒ 인문서원
송탄유 채취 관련 이야기처럼 그 어떤 책에서도 들려주지 않은 것들을, 그리고 엄연한 사실임에도 이제까지 누구도 말하지 않은 참 많은, 그리고 중요한 사실들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묻혀 있는 것들을 발굴해 들려준다'는 생각이 자주 들 정도로 말이다.
을사오적보다 30년 앞서 친일에 알장선 친일파 1호 김인승 이야기도, 서울시가 우남시가 될 뻔한 사연도, 빨갱이란 용어 탄생 이야기도 특히 인상 깊은 이야기들이다.
죄라면 힘없는 국민이라는 이유뿐인데 일본의 가미카제였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조차 위로받지 못하고 있는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들의 이야기는 매우 짠하게 읽었다.
'묻혀 있는 수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내는 계기의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봄, <조선의 딸, 총을 들다>를 읽으며, 그리고 책소개 글을 쓰며 무심결에 이처럼 바랐다. 지난해 여름에 본 <암살>(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을 도와주는 아네모네 마담(김혜숙 분)도 떠올랐다. 그 마담처럼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나라의 독립에 바쳤지만 마땅한 예우는커녕 그처럼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 없이 묻히고, 잊힌 여성들이 많을 것인가?란 생각과 함께.
이 책 <묻혀있는 한국 현대사>도 그처럼 이름만이라도 알려졌으면, 그런 그들의 삶이나 관련 사건이 재조명 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광복 71년째임에도 마땅한 예우는커녕 이름조차 낯설어 아쉽고 씁쓸해지는 그런 이름들이 나온다.
'최후의 레지스탕스, 이승만 암살을 시도하다'란 제목으로 만날 수 있는 독립운동가 김시현과 김시현을 도운 총독부 경찰 출신 황옥, '광복군의 숨은 은인'을 아십니까'란 제목으로 소개되는 왕계현 대령이 그들. 특히 광복군 연락 및 지원업무 실무자였던, 그런데도 정부 차원의 인사도 받지 못한 채 삶을 마감했다는 중국인 왕계현 이야기는 너무나 씁쓸하게 읽었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이들의 이야길 읽으며 '그 어떤 일보다 객관적인 평가와 그에 맞는 보상이 이뤄져야 하는 독립운동 관련 보상(예우)에도 기득권자들의 입김이 기준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나친 걸까. 그런데 아마도 나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은혜를 모르는 국민이라는 부끄러움'이 걷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묻혀 있는 한국 현대사>(정운현) | 인문서원 | 2016-05-27 l 정가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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