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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강진, 500여년 전부터 예견됐다

[다시 보는 오마이뉴스] 역사 속 한반도 지진... 세종 "경상도, 지진피해 특히 심각"

등록|2016.07.09 11:33 수정|2016.09.13 10:14
12일 오후 7시 44분과 8시 32분, 각각 규모 5.1, 5.8의 강진이 경북 경주와 울산지역을 강타해 시민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에 지난 7월 5일 울산 인근 해상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게재한 '역사 속 한반도 지진' 기사를 '다시 보는 오마이뉴스'로 싣는다. [편집자말]
[기사보강 : 9월 13일 오전 10시]

▲ 경북 경주에서 지진이 잇따라 발생한 12일 오후 부산 영도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 바닥이 갈라져 있다. 이 주차장의 갈라짐 현상은 이번 지진으로 더 심해졌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는 주로 경상도에 있다. 경북 울진군에 한울원자력발전소 단지, 경북 경주시에 월성원자력 단지, 부산시 기장군에 고리원자력 단지가 있다. 나머지 하나인 한빛원자력 단지만 전남 영광군에 있을 뿐이다.

걱정되는 것은, 과거에 한반도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이 바로 경상도라는 점이다. 지난 7월 5일 울산시 동쪽 52킬로미터 해상에서 발생한 규모 5.0 지진과 12일 오후 8시 32분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5.8 지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과거의 경상도가 지진 위험지대였다는 사실은 지리학계 논문에서도 나타난다. 2001년 당시, 윤순옥 경희대 지리학과 부교수가 전재범·황상일과 함께 <대한지리학회지> 제36권 제2호에 기고한 '조선시대 이래 한반도 지진 발생의 시·공간적 특성'이라는 공동 논문도 그중 하나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441건의 지진을 분석한 이 논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지진 발생의 지역별 분포를 살펴보면, 총 449개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하였으며, 도별 발생빈도는 경상북도-충청남도-경상남도-전라북도의 순으로 나타났고, 영남 지방이 전체의 33%를 차지하여 경상분지에서 지진활동이 가장 활발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진 발생 건수는 441건인데 발생 지역은 449개인 이유는, 동일한 지진이 여러 지역에 걸쳐 발생한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위 분석에 따르면, 한반도 전체에서 북부나 중부 지방보다 충청·전라·경상의 삼남 지방에서 지진이 가장 많이 발생했고, 삼남 중에서도 경상도가 최고의 발생 빈도를 보였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서울인 경주에서 발생한 '대지진'

유사한 연구 결과는 <한국지진공학회 논문집> 통권 제13호(2000년)에 실린 한양대 한국지진연구소 김소구 교수와 이승규 연구원의 공동 논문에도 나타난다. '남·북한 지진 목록을 이용한 한국 지진 위험도'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 따르면, 서기 2년부터 1977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지진의 규모 혹은 위험도라는 측면에서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난 곳은 경주와 울산이다. 오늘날 원자력 단지가 밀집한 지역인 경상도에서 과거 고위험도의 지진이 많이 발생했던 것이다.

경상도가 지진 위험지대였다는 점은, 지진으로 인해 신라와 가야의 국제관계에 변화가 생긴 사실에서도 증명된다. 일례로, 신라 제5대 군주인 파사왕(파사이사금, 재위 80~112년) 시대의 두 나라 관계를 들 수 있다. 파사왕은 집권 15년차부터 18년차 사이에 가야와 세 번이나 전쟁을 벌였다. 그 정도로 이 시기에는 신라와 가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집권 23년차 되는 서기 102년이었다. 이때 획기적인 사건이 두 나라 관계에서 발생한다. 파사왕이 신라 내부의 분쟁 해결을 가야연맹에 위임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신라왕이 행사할 사법권이 가야에 넘어간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102년 당시의 파사왕이 내부 분쟁을 조정할 수 없을 정도로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야연맹이 신라 내부에 대한 사법권을 행사했다. 이것은 이 시점의 신라가 가야에 대해 종속적 위치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신라가 허리를 숙이는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18년차까지만 해도 전쟁을 했던 파사왕이 23년차 때 허리를 숙이고 사법권을 넘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19년차와 21년차 때 벌어진 사건에서 드러난다. 이 두 해에 신라에서는 자연재해가 유독 심했다. 가뭄·우박·지진이 신라를 연타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인 것은 21년차 음력 10월, 양력으로 서기 102년 10월과 11월 사이에 발생한 대지진이었다. 신라 서울인 경주에서 발생한 이 지진으로 경주 시내 주택들이 붕괴하고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선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 해가 없고"

▲ 신라 때의 경주 시내를 추정적으로 복원한 그림. 서울시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그때 발생한 대지진에 관해 "서울(경주)에 지진이 나서 민가가 무너지고 사망자가 생겼다"라고 비교적 간략하게 기술했다. 하지만 지진의 피해가 훨씬 더 심각했다는 점은 이로부터 얼마 뒤 신라가 가야에 허리를 숙인 사실에서 드러난다.

102년에 지진이 발생하기 직전만 해도 신라는 가야와 대립하고 있었다. 그랬던 신라가 지진 얼마 뒤에 갑자기 허리를 숙인 것은, 지진 피해로 인해 정권이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경주 지진으로 민심이 이반하고 정권의 권위가 흔들렸기 때문에, 적대국 가야한테 허리를 숙이는 상황까지 발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진 피해가 국제관계의 변화로 이어졌을 정도로 경상도는 지진의 고위험 지대였다. 

이 점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시대 군주들도 경상도가 지진 위험지대라는 점 때문에 마음을 졸였다. 그런 사례 중 하나를 세종대왕한테서 확인할 수 있다. 

음력으로 세종 14년 5월 5일이었다. 양력으로는 1432년 6월 2일이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이 날 세종은 경연이란 학술 세미나 자리에서 "지진은 재난 중에서도 중요한 것이다"라고 입을 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지진이 발생하지 않는 해가 없고, 경상도에서는 특히 심하다"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에 세종은 "지난 기유년(1429년)에는 지진이 경상도에서 시작해 충청·강원·경기 세 도로 파급됐다"면서 "하삼도(충청·전라·경상)에 지진이 매우 많으니 오랑캐의 변란이 있을까 염려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경상도를 비롯한 남부 지방의 지진을 틈타 대마도·일본 해적 즉 왜구가 침략을 감행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다. 이런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경상도는 신라 때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지진 위험지대였다.

지진이 심한 기간과 덜한 기간이 주기적으로 반복

▲ 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 김종성


과거에 경상도에서 지진이 많이 발생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많이 발생하리란 보장이 있을까? 지금의 상황을 보면, 경상도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지진 피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하지 않은가? 이런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 역사에서 추출된 패턴을 보면, 앞으로 한반도가 또다시 지진 위험지대가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위에서 소개한 윤순옥·전재범·황상일의 논문에 따르면, 조선왕조 500년(1392~1910년) 기간 동안에도 지진이 많아졌다 적어졌다 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되풀이됐다.

1392~1535년의 143년 동안에는 지진이 203회 발생했다. 세종이 살았던 시기는 바로 이때다. 다음 기간인 1536~1665년의 129년 동안에는 지진이 44회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666~1765년의 99년 동안에는 189회로 다시 늘어났다. 다음 기간인 1766~1910년의 144년 동안에는 그 횟수가 5회로 떨어졌다.

이런 통계를 보면, 지진이 심한 기간과 덜한 기간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우리나라에서는 지진이 발생하지 않은 해가 없다"고 말했다. 이때만 해도 한반도는 지진 위험지대였다. 그러다가 1536년 이후로 지진 안전지대가 되었고, 1666년부터는 다시 지진 위험지대가 되었다.

지진 발생빈도가 늘었다 줄어드는 일이 계속해서 되풀이됐다면, 지금 당장에는 지진 피해가 별로 없더라도 언젠가 다시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가 다시 지진 위험지대가 된다면, 경상도가 지진 피해에 가장 크게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1년, 동일본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것은 지진 위험지대에 원전을 배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한국 정부는 지진 위험지대인 경상도에 원자력 단지를 세 군데나 설치했다. 그런데도 경북 울주군에 새로운 원전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진 위험지대인 데다가 원전 단지가 밀집한 경상도에 원전을 추가로 설치하려 하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경상도는 지진피해가 특히 심각한 지역"이라고 말했다. 원전이 이미 경상도에 밀집된 것도 모자라 새로 추가되려 하는 상황을 본다면, 차분하고 신중한 세종대왕도 경악을 금치 못해 쓰러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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