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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녹취록은 '헬조선'의 증거

[주장] KBS, 청와대, 이정현의 뻔뻔함

등록|2016.07.09 00:48 수정|2016.07.09 00:48

세월호참사, 청와대의 KBS 보도통제 증거 공개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청와대의 세월호 보도 통제 증거 공개 언론단체 기자회견'이 자유언론실천재단, 동아투위,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노조 주최로 열렸다.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김시곤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보도내용에 항의하고, 편집에 개입하는 내용의 육성 녹음파일이 공개되었다. ⓒ 권우성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었던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 사이의 통화내용이 공개된 것은 지난달 30일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시민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자유언론시민단체 등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이정현 의원이 김시곤 국장에게 세월호 참사 보도 내용과 관련해 압력을 행사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녹취록은 청와대가 KBS의 보도를 통제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동안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방송 장악은 있을 수도 없고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다며 의혹을 일축해온 터였다. 그러나 녹취록으로 인해 이들의 주장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이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뜻이며, 방송법이 명시한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보장을 위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KBS, 청와대, 이정현... 왜 이러시나?

그런데 녹취록과 관련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의문스런 장면들이 거듭 연출되고 있다. 녹취록을 둘러싼 의문점은 크게 3가지다. 먼저 청와대의 압력에 의해 방송 편성의 자율권과 독립성이 무너진 KBS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녹취록에서 이정현 의원은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 보도와 관련해 비속어까지 섞어가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두 번째 전화 통화에서는 대통령의 심기를 거론하며 방송의 수정을 요구했고 결국 언급된 보도는 방송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처럼 방송 편성에 대한 자신들의 주권이 명백히 침해됐는데도 불구하고 KBS는 아직까지 이 사태와 관련해서 철저히 함구로 일관하고 있다. 이는 결국 KBS가 현 집권세력과 끈끈한 권언유착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들의 밀착 관계는 녹취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시곤 국장은 "솔직히 우리만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느냐"며 둘 사이의 밀월관계가 꽤 오래됐음을 시사했다. 이는 KBS가 방송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포기했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만큼 정권편향적이라는 뜻이며, 사안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녹취록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 역시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청와대의 보도통제에 대한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는 상황에서도 이정현 의원의 발언을 "홍보수석으로서의 본연의 임무" "통상적인 업무협조 요청"이라고 감싸기에 바빴다.

야당 의원들의 질타에 곤혹스러운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 세월호 참사 직후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김시곤 전 KBS보도국장에게 해경 비판 보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에 대한 의원들의 질타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시청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권력과 사회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본연의 역할이자 기능이다. 그러나 이원종 비서실장의 발언은 언론을 권력의 치부를 가리고 정권의 치적을 홍보하는 도구로 여기고 있다는 뉘앙스다. 이원종 비서실장의 인식은 언론을 떡 주무르듯 자기들 마음대로 통제했던 권위주의 시대의 그것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것이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은 인식인지 지극히 의문스럽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가장 의문스러운 행동을 하는 것은 녹취록 파문의 당사자인 이정현 의원이다. 그는 사태의 중요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당하게도 당 대표 출마 선언을 해버렸다. 그의 출사표는 그보다 더 어이가 없다. 그는 "제가 당 대표가 되려는 목적은 하나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그는 이어 이것이 "저를 연이어 두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선택해주신 전남 순천 시민들의 엄중한 명령이자 제가 순천시민들께 했던 약속"이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다.

▲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지난 7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방송편성에 관해 누구도 규제나 간섭을 할 수 없도록 명시한 방송법을 정면으로 위배한 당사자가 정치를 바꾸겠다니 아찔하기 짝이 없다. 바꿔야 할 것은 이 나라 정치가 아니라 본인의 시대착오적 인식이라는 것을 그는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당 대표 출마가 순천시민의 명령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순천 시민사회가 이정현 의원의 석고대죄와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이러한 행태는 너무나 터무니없고 실없다.

'비정상의 정상화?' 현실은 딴판

공영방송의 보도와 관련해 권력이 방송편성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이번 녹취록 파문의 핵심이다. 정상적이라면 KBS가 침해당한 자신들의 주권 회복에 앞장서야 하고, 청와대는 대국민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약속을 선언해야 하며, 압력을 행사한 당사자인 이정현 의원은 자신의 위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는 정반대의 양상이 연출되고 있다.

KBS는 공영방송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청와대는 방송편성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해치는 위법행위를 홍보수석 본연의 임무이자 통상적인 업무협조로 둔갑시키고 있다. 게다가 법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할 외압의 당사자인 이정현 의원은 뻔뻔하게도 당 대표 출마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모두 보편적 상식을 뒤엎는 비상식적인 장면들이다.

▲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자유언론실천재단,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언론 관련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5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참사 당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보도 통제를 규탄하며 국회 청문회 실시와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방송법 개정을 촉구했다. ⓒ 유성호


비정상의 정상화. 이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상적인 것들이 비정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외눈박이의 세상에서는 두눈박이가 비정상이라 취급받는다. 그런 면에서 2016년의 대한민국은 외눈박이의 세상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의 추이가 이를 여실히 말해준다. 두눈박이들의 세상 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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