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연락처 알려줄래요?" 참 이상한 카페가 나타났다

[카페 '봄봄'과 마을카페 하기 4]

등록|2016.07.15 15:16 수정|2016.07.15 15:16
서울 영등포역 1번 출구에서 1분 거리에 있는 마을카페 '봄봄'은 이제 3년 차에 접어든 마을카페다. 카페 '봄봄'의 회원인 기자가 3년 동안 망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 마을에 뿌리내린 카페 봄봄의 마을살이 과정을 소개하려고 한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 - 기자 말

▲ 사람들이 오길 기다리지 않고 사람들을 모으는 일을 벌이면서 카페 봄봄 두리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진은 카페 봄봄 2주년 행사 사진. 카페 봄봄은 오는 7월 15일 3주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 봄봄


디데이가 다가왔다. 2013년 7월 10일을 카페 봄봄이 문을 여는 개춘절(開春節)로 정하고 개춘절 주간 행사를 준비했다.

손님맞이에 앞서 봄봄 메뉴 개발에 나섰다. 매니저들은 저마다 자신 있는 술안주들을 하나씩 만들어냈다. 게맛살을 품은 깻잎, 돼지가 숙주를 사랑할 때, 고기가 절반 고추잡채, 기본으로 승부해 봄봄세트 같은 여러 메뉴를 만들어서 품평회까지 했다.  

많이 비어있던 카페 안도 하나씩 채워나갔다. 봄봄에서 쓸 찻잔을 수공예작가협동조합에 주문 제작한 뒤 협동조합에서 만든 도자기 제품들을 전시하고 대신 판매할 공간을 마련했다. 이름하여 숍인숍 매장이다. 전시공간에 개인이 만든 손도장, 쿠션 같은 제품들도 함께 올렸다. 매니저 쑥쑥의 시어머니가 손뜨개로 뜬 수세미도 판매물품에 포함했다. 시어머니는 "이런 것도 돈 받고 팔 수 있냐?" 반가워하며 틈날 때마다 바늘코를 손가락에 거셨다.

갤러리북카페답게 전시도 했다. 카페 공간의 변신을 기록한 공사 사진전과 작가 이진석의 '공존하는 풍경3' 회화전을 함께 했다. 가수 백자와 이수진의 공연도 이어졌다. 매일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고 며칠 동안 카페 봄봄은 계속 북적였다. 돈과 몸을 대면서 카페 봄봄을 탄생시켰던 서울노동광장 회원들과 매니저들의 지인들이 카페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런 나날이 계속될 줄 알았다.

북적북적 했던 개춘절이 지나니

▲ 지인들로 꽉 찼던 카페 봄봄 개춘절 행사가 끝나자마자 카페 봄봄은 고독을 견뎌야 했다. ⓒ 봄봄


현실은 달랐다. 개춘절 행사가 끝나자마자 카페 봄봄은 조용해졌다. 다음날부터 바로 파리를 날렸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여는 동안 카페에 한 사람도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카페를 보는 일 자체가 고독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간혹 손님이라도 오면 다섯 매니저가 모인 카톡방은 난리가 났다.

"와우. 동네 청년 두 명이 카페에 옴. 데이트 하다가 들어온 것 같음."
"중년의 여성이 와서 커피를 시킴. 구청에서 공자 매니저를 만났다고 함."
"오늘 온 아저씨는 고시텔에서 사시는 듯."

그날 담당 매니저가 보고를 하면 나머지 매니저들은 "커피 잘 내려요" "화이팅!" 같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장부에도 '커피 2000원' 같은 판매내역 옆에 손님들의 특이사항을 적어놓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손님들에게 직접 말을 걸기도 했다.

"커피 맛있게 드셨어요? 여기가 마을카페여서 강좌 등 행사가 많거든요. 연락처 알려주시면 행사 있을 때 연락드릴게요."
"벌써 두 번째 오셨네요. 한 달 1만 원 CMS 회원 가입하시면 매달 차가 3잔 공짜고, 장소 대여료나 행사 때 할인 혜택도 드려요. 회원 가입하실래요?"

참 이상한 카페였다. 그런데 이 별난 카페에 애정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카페 근처 아파트에 사는 해점씨도 그 중 한 명이다. 공사기간에 우연히 들렸다가 개업 후 다시 들렸다. 금세 친해진 매니저들이 CMS 회원 가입서를 내미는데 싫지가 않았다.

주저 없이 가입서를 작성한 데 그치지 않고 동네 엄마들을 한 명 두 명 카페 봄봄에 소개했다. 세미나실 공간을 빌렸던 한 직장인 모임은 카페 시작과 마감 시간 안내 팻말이 없다면서 직접 팻말을 만들어놓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하나둘 인연이 쌓여갔지만 속도는 더뎠다.

카페 살리기 대책 회의 끝 결론은 "우리가 사람을 모으자"

▲ 골목벽화를 그리는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건물주들이 선뜻 벽을 캔버스로 내놓지 않았고, 허락을 맡은 벽은 너무 낡아서 곰팡이와 포스터 제거 작업에 힘을 쏟아야 했다. ⓒ 봄봄


"이제 오는 사람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사람을 모아보자."

매니저들이 카페 살리기 대책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일을 벌이자는 것. 먼저 마을 청소년들과 함께 할 일을 찾기로 했다. 아이들이 오면 부모는 따라온다는 계산 속에 나온 묘책이었다. 그때 벽화 그리기가 떠올랐다. 그림 그리기는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이자 어른들과 소통하기 싫어하는 청소년들이 욕구를 표출할 수 있는 좋은 통로도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벽화는 카페 봄봄에게도 절실한 문제였다. 매니저들은 홍보를 위해 약도를 그릴 때마다 갈등했다. 영등포역 1번 출구로 내려오면 바로 맞은편에 카페 봄봄으로 가는 좁은 골목이 보인다. 그 골목을 1분만 걸으면 바로 카페 봄봄이어서 '영등포역 역세권 마을카페'라고 소개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초라했다.

쓰레기가 쌓인 날도 많고 사람들이 오가다 노상방뇨를 하기도 하는 골목이었기 때문이다. 골목에도 환경미화가 필요했던 셈. 그림만큼 거리를 아름답게 꾸미기 좋은 것도 없으니 매니저들은 팔을 걷어붙였다.

그런데 벽화 그리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림 그릴 공간 선정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카페 봄봄이 있는 골목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면서 어디가 좋을지 살폈지만 선뜻 자기집 벽을 벽화 캔버스로 내놓겠다는 집주인이 없었다.

골목 입구 건물주인 할아버지는 벽이 더 더러워질 것 같다며 퇴짜를 놓았다. 다행히 봄봄 매니저들이 자주 가던 그 맞은편 건물 식당의 사장이 건물주에게 연락해 줬다. 한 달 넘게 동분서주한 끝에야 첫 번째 벽화 캔버스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한시름 놓자 매니저들 앞에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벽화를 그리기 전에 벽을 깨끗이 청소해야 했던 것이다. 매니저 용용이 당시 벽 상태를 설명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카바레 포스터와 갖가지 광고 스티커가 수십 장씩 붙어 있었죠. 곰팡이도 가득 했고요. 그냥 솔로 밀면 스티커들이 뜯기지 않아서 우비를 입은 채 벽 전체에 물을 뿌려놓고서 불린 다음에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렀죠. 그 작업만 세 번을 했어요. 물을 뿌렸는데도 풀풀 나는 먼지를 다 마시면서 일했어요."

▲ 벽화 그리기는 카페 봄봄 매니저들에게 소통의 방정식을 일깨워주었다. 연꽃 벽화를 싫어한 주민과 소통하면서 매니저들은 마을 속으로 한발짝 더 다가갔다. ⓒ 봄봄


▲ 벽화 그리기에는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함께 했다. ⓒ 봄봄


매니저들의 고된 노동 끝에 벽은 하얗게 돌아왔다. 곧장 동네에 벽화 그리기 홍보를 하니 카페로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매니저들의 바람처럼 근처 중학교 학생들의 신청이 많았다. 벽화 작업 당일엔 유치원생부터 중학생, 그리고 이들의 엄마아빠까지 30여 명이 붓을 들고서 벽에 그림을 그렸다.

지나가던 주민이 그 모습을 보고선 "나도 참여해도 돼요?"라고 묻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함께 벽화를 그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붓질이 이어질수록 하얗던 벽은 점점 꽃밭으로 변해갔다. 오물로 뒤덮였던 골목에서 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와 함께 사람들 마음도 환해졌다.

작업을 다 끝낸 뒤 매니저들과 일부 참가자들은 싹 바뀐 벽 앞에서 막걸리를 마시면서 뒤풀이를 했다. 그때 벽화 작업을 거부했던 앞 건물주인 할아버지가 슬그머니 다가오셨다.

"다음 번엔 우리 벽에도 그림 그려줘. 예쁘네~."

할아버지뿐 아니었다. 얼마 뒤에는 여성 두 명이 카페 봄봄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들은 동네에 오랫동안 비워있는 집이 있는데 아이들 탈선 장소로 이용될 것 같다면서 그 집 벽에도 벽화를 그려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붕괴 위험 때문에 벽화를 그리지는 못했지만 좋은 인연은 맺었다. 찾아왔던 여성 중 한 명이 통장이었던 것. 다른 한 명도 봄봄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벽화 그리기로 알게 된 소통의 방정식

▲ 주민이 싫어했던 연꽃 벽화를 1년 후 올빼미 벽화로 다시 작업한 후 모습. 사진 속 사람들이 카페 봄봄을 이끌어가고 있는 봄봄의 매니저들이다. ⓒ 봄봄


동네 주민들의 열화 같은 요청에 봄봄 매니저들은 1년에 두 번씩 벽화를 그리고 있다. 두 번째 벽화는 삭막한 고시텔 벽에 온기를 불어넣었고, 2014년 여름에 그린 세 번째 벽화의 캔버스는 주민센터 옆 공용주차장 담벼락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주차장 맞은편에 사는 아주머니 한 분이 찾아왔다.

"그림에 왜 연꽃이 들어가는 거죠? 그건 불교를 상징하는 거잖아요. 나는 기독교인데 연꽃 벽화는 안 그렸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연꽃을 그리던 중학생이 그 주민의 말에 발끈했다.

"저도 교회 다니는데 연꽃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에 속상해했지만 그 주민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그때 매니저들은 다른 지역에서 들었던 벽화 일화가 떠올랐다. 예술가들이 주민들에게 벽화로 어떤 그림을 그리면 좋을지 설문을 했더니 그냥 깨끗한 흰색으로 그려달라는 의견이 많아서 그냥 흰색 칠만 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차, 우리가 골목에 사는 주민들과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벽화작업을 했구나.'

뒤늦은 깨달음이 몰려왔다. 그러나 이미 연꽃 벽화를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매니저 규카소가 총대를 메고 그 주민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창조주께서 만든 피조물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연꽃이 정 싫다면, 내년에 다른 벽화로 다시 그리도록 하겠습니다. 중학생 아이들이 고생해서 그린 벽화니까 당분간만 좀 지켜봐주세요."

다행히 대화는 잘 풀렸고 연꽃벽화는 피어났다. 그로부터 1년 후 연꽃벽화는 올빼미 코끼리 벽화로 재탄생했다. 이번에는 주민에게 미리 도안을 보이는 작은 소통작업을 먼저 했다. 벽화를 그리는 날, 그 아주머니는 음료수와 함께 그 집 나무에서 수확한 자두, 사과, 감 들을 한 아름 안고 찾아와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벽화는 그림 그 자체가 아니라 마을로 통하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조금만 신경 쓰니 소통의 방정식은 금세 풀렸다. 막힘없이 통하니 골목에는 계속 벽화가 늘어가고 있다. 편의점 벽에도, 교회 벽에도, 고시텔 벽에도 벽화 꽃들이 피어있다. 옆 골목 천지신명당에서도 벽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해와서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와 함께 벽화 그리기에 재미를 붙인 골수팬들도 나타났다. 매번 벽화를 그릴 때마다 참여했던 영등포 영원중학교에는 벽화동아리가 생겼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도 벽화를 그릴 때면 찾아왔던 한 고등학생은 벽화 그리기를 배우고 싶다고까지 하고 있다.

아이와 함께 벽화를 그리러 왔다가 카페 봄봄 회원이 된 동현 엄마는 지금은 봄봄을 열렬히 응원하는 팬이다. 이제 벽화를 보면 사람들이 떠오른다. 

오는 7월 16일에 봄봄은 7번째 벽화를 그린다. 이번에는 또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덧붙이는 글 * 카페 봄봄은 문을 연 지 3년을 맞아 오는 7월 15일(금) 19시, '봄봄, 어디까지 왔니?' 행사를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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