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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꽃 보며 '깨 쏟아질' 꿈을 꿉니다

5월 중순에 씨 뿌려, 오락가락 비와 잡초 견디며 자라고 있어

등록|2016.07.13 11:45 수정|2016.07.13 11:45
며칠 전, 우리 밭을 지나 산책하는 아주머니가 다른 농사는 잘 지으면서 깨농사는 신통찮다고 합니다.

"이 집 참깨는 몇날 며칠을 털어야겠어요?"
"왜요?"
"참깨가 쌍둥이로 자라야 하는데, 형님 아우 하고 크니까 그렇죠!"
"씨를 두 번 뿌려서 그래요!"

▲ 우리 참깨밭이다. ⓒ 전갑남


우리 깨밭은 키가 들쑥날쑥합니다. 키 큰놈, 작은놈 하여 가지런하지가 않습니다. 아주머니 말마따나 형님 아우 하고 자라는 형국입니다.

형님깨 아우깨가 함께 자라다

나는 들깨는 그동안 쭉 심었으나 참깨농사는 올 처음입니다. 그동안 묵혀두었던 밭에 집에서 먹을 참기름이나 짤까 하고 두 판지에 씨를 넣었습니다.

참깨는 어떻게 가꾸는지를 몰라 이웃에게 귀동냥을 하였습니다. 수십 년 경험으로 농사를 짓는 이웃할머니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참깨는 일찍 씨 뿌리면 싹이 더뎌. 깨밭은 걸면 장마통에 바람 맞는 수가 있으니 밑거름은 하지 말고!"

참깨 재배요령은 간단했습니다. 씨를 잘 나게 하려면 5월 중순 지나 비오기 전에 씨 뿌리고, 기름진 밭보다는 메마른 땅이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참깨는 모를 부어 내면 좋은데 직접 뿌려도 됩니다. 바람 맞을 수가 있어 하우스 안에 심으면 그걸 피할 수 있습니다.

나는 봄에 밭을 일찍 갈고서 비닐을 미리 씌워두었습니다. 모내기철, 비 온다는 소식에 비닐을 뚫고 파종했습니다. 병뚜껑에 구멍을 내고, 병에 씨를 담아 비닐 구멍에 탈탈 털면서 씨를 묻었습니다. 온갖 정성을 다했지요.

그런데 웬걸! 비 소식에 씨를 뿌렸는데, 비는 건너 뛰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싹트기를 기다렸으나 듬성듬성 발아가 되었습니다. 들어맞지 않은 일기예보가 원망스러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싹이 안 난 곳은 재차 씨를 뿌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깨밭은 먼저 발아 된 녀석, 나중에 발아 된 녀석이 함께 자라게 되었습니다. 시차가 열흘 가까이 되어 키 차이가 나 자랐습니다.

그래도 나는 참깨밭에 정성을 쏟았습니다. 틈나는 대로 풀 뽑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비닐 구멍 사이로 올라오는 쇠뜨기는 참 징그러운 잡초입니다. 녀석은 땅속줄기로 번식하는 모양입니다. 쇠뜨기뿌리는 어찌나 땅속 깊숙이 박혀 있는지요.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쇠뜨기뿌리를 따라가면 지구 반대편이 나온다는 말까지 있을까요.

쇠뜨기 하나를 잡아 뽑으면 뚝 끊어집니다. 뿌리까지 길게 뽑히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뽑혀난 곳에 며칠 있으면 어느새 쇠뜨기 새싹이 고개를 쳐듭니다. 그런데 질긴 쇠뜨기도 눈에 보이는 대로 자꾸 뽑으면, 녀석도 점차 위세가 꺾여 자잘해집니다.

▲ 참깨밭에 꽃이 만발했다. ⓒ 전갑남


잡초를 이긴 우리 참깨밭도 7월의 뜨거운 햇살을 받아 부쩍 자랐습니다. 작물은 싸우는 상대를 제거해주면 알아서 잘도 크는 것 같습니다.

소박한 참깨꽃에 벌들이

처음 자랄 땐, 깨밭 같지도 않은 밭이 꽃이 피고부터 제법 모양새를 갖췄습니다. 키 차이가 많이 난 것들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며칠 전에는 큰 비가 와서 줄기가 연해지고 시들시들 해졌습니다. 키 큰 형님깨는 좀 자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볕이 좋아지니 제자리로 돌아서 뻣뻣해졌습니다. 신통방통한 자연의 복원력에 놀라울 뿐입니다. 

▲ 참깨꽃은 아래로부터 위로 꽃이 여러 날에 걸쳐 핀다. ⓒ 전갑남


'거름을 주기를 했나, 약을 치기를 했나!' 내 정성을 알아본 것인지, 운이 좋은 것인지 우리 참깨밭은 건강해보입니다.

꽃이 만발하니 참깨밭이 보기에 좋습니다. 참깨꽃은 약한 볼그레한 빛이 섞여 하얗게 피어납니다. 꽃은 딸랑딸랑 종 모양으로 대롱대롱 달립니다. 소박해 보이는 꽃은 땅을 쳐다보며 핍니다. 예쁜 자기 모습을 자랑하듯 하늘 향해 고개를 쳐들 만도 한데, 고개 숙인 참깨꽃에서 수줍음을 봅니다.

▲ 참깨꽃에 벌이 날아들어 꽃속 깊숙이 꿀을 빨고 있다. ⓒ 전갑남


참깨꽃은 수줍음을 타기는 해도 꿀벌을 불러 들입니다. 꿀벌은 꽃잎 깊숙이 고개를 처박으며 이 꽃 저 꽃을 들락거립니다. 꽃잎 속에서 단 꿀은 입맛 다시고, 꽃가루는 뒷다리에 뭉쳐서 모읍니다.

참깨꽃은 잎겨드랑이에서 여러 꽃들을 피워냅니다. 아래부터 꽃이 피고, 또 위로 올라가며 꽃망울을 만들어 여러 날 꽃을 피워냅니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는 열매집을 만들어 고소한 참깨를 안칩니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대한 기대

산책하던 아주머니와 다시 마주쳤습니다.

"우리 깨밭이 이젠 제법이죠?"
"꽃피고 나니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네요!"
"작물은 크면서 열두 번도 변한다잖아요."
"그래 아직은 몰라요! 꽃 피었다고 다 씨 여무는 것 아니니까!"

▲ 참깨꽃이 진 자리에 깍지가 맺혔다. ⓒ 전갑남


아주머니는 장마가 끝나지 않았으니 입찬소리는 아직 이르다고 합니다. 참깨가 자라면서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세찬 비바람도 견뎌야 하고, 혹시 있을지도 모를 병충해도 이겨내야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신혼 초, 꿈에 부푼 생활을 이야기하며 '깨가 쏟아진다'는 표현을 합니다. 오붓하고 아기자기해서 재미있을 때 비유하여 쓰는 말이지요.

바짝 마른 깨는 추수할 때 살짝 건들기만 해도 우수수 떨어집니다. 깨를 털 때 쏟아지는 소리는 기쁨의 소리입니다. 

나는 꽃이 아름답게 핀 참깨밭을 바라봅니다. 톡톡 여물어 쏟아질 깨와 함께 쏟아질 기쁨까지 소망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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