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오-이강희만 못한 '악역 김영애', 그럼에도
[리뷰]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이런 류의 영화 계속 나와주길
▲ 작년에 나온 많은 범죄 영화 중 일명 '사이다' 범죄 장르가 있었는데, <베테랑> <탐정: 더 비기닝> <성난 변호사>가 그것이다. 이 영화는 그 계보를 이었다.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포스터. ⓒ NEW
지난 2015년 한 해 유독 범죄 영화가 많았다. 생각나는 건만 해도 <나의 절친 악당들> <악의 연대기> <극비수사> <베테랑> <탐정: 더 비기닝> <성난 변호사> <내부자들>까지, 대부분 괜찮은 관심과 인기를 받았다. 스타일에서 정반대에 위치한 <베테랑>이나 <내부자들>은 한 해 동안 영화계뿐만 아니라 한국을 뒤흔들기도 했다.
이중에, '사이다' 범죄 영화가 몇몇 있다. <베테랑> <탐정: 더 비기닝> <성난 변호사> 등이 그것인데, 범죄를 다루고 있으니 웬만큼 잔인하지만 코믹 요소가 다분하고 마지막엔 속 시원히 문제를 해결한다. 치가 떨리는 '나쁜 놈'이 나오기도 한다. 올해 초 <검사외전>까지 대히트를 치면서 트렌드를 넘어 하나의 장르로 굳어진 느낌이다.
코믹 사이다 범죄 영화의 계보를 잇다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는 그 계보를 이었다. <성난 변호사>와 정말 비슷하다. 심지어 관객수까지. 영화가 기획되어 개봉하기까지의 시간이 비슷비슷하다고 가정하면, 이들 영화는 비슷한 때에 제작되었을 테고 지금은 더 하겠지만 그때 사회가 전에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을 거라 유추해볼 수 있다.
▲ 영화는 주인공 최필재 사무장의 활극 액션으로 진행된다. 기존 '사이다' 범죄 영화들과 비슷하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에 제작이 시작되었을 것 같은데, 한 발 늦게 지금에야 개봉했다.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는데, 겨우겨우 봉합해 나온 것 같다.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한 장면. ⓒ NEW
과거 모범 경찰이었지만 지금은 변호사 사무장으로 있는 최필재(김명민 분)는,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양 형사를 상대하던 와중에 편지를 하나 받는다. 인천의 대재벌인 대해제철의 며느리를 죽여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권순태에게서 온 편지였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절절하게 전한다. 필재는 이 사건이 양 형사와 관련이 있다고 직감하고는 뒤를 캐기 시작한다. 양 형사의 인생을 거덜나게 하기 위해서.
당연히 쉽지 않다. 자신이 모시는 변호사 김판수는 반대하고, 경찰도 검사도 아니니 지나간 사건을 파헤치기도 힘들거니와, 대해제철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 모든 난관들을 필재는 '맨몸'으로 헤쳐나간다. 그는 본래 지극히 속물적인 인간이었는데 나름 '특별수사'를 하는 와중에 바뀌게 되니, 사형수 권순태의 딸 권동현 때문이다.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는 아쉬움
영화는 여기서부터 조금 삐거덕거리기 시작한다. 필재의 과거가 나오면서 말이다. 그는 과거에 모범 경찰이었다. 그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는 살인만 빼고는 나쁜 짓 안 해본 게 없는 범죄자였는다. 그 때문에 그는 '범죄자의 아들'로 살아왔고 경찰인 그의 할아버지는 평생 말단으로 지냈다. 필재가 변화하는 이유가 권동현이고, 권동현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상당히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이 부분을 대충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그 고리를 순태와 동현의 감동적인 눈물로 강하게 연결해보려 하는데 필재까지 이어지지 않은 것 같다. 필재가 이 사건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 수밖에 없는 확실한 이유를 제시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 '사이다' 범죄 영화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부분인 지독한 악역이, 이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악역이 악역다웠다면, 영화가 훨씬 살았을 것이다. 주인공만 쓸데없이 너무 고생한 느낌이다.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한 장면. ⓒ NEW
그런데 여기서 사실상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빠지지 않았나 싶다. 살인범 권순태가 누명을 썼다는 건 영화 초반에 다 밝혀지니만큼, 진짜 살인범이자 진짜 '나쁜놈'이 어디 있냐, 하는 거 말이다. 다름 아닌 인천의 대재벌인 대해제철일 게 뻔한데, 그닥 존재감이 없어 보인다. 영화 초반부가 지나갈 즈음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베테랑>의 조태오나 <내부자들>의 이강희는 말할 것도 없이 <성난 변호사>의 문지훈에도 못 미치는 존재감이었다. 그 바로 아래에서 실질적으로 진두지휘하는 이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뻔한 움직임과 반응들, 2년 만 일찍 개봉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든다.
모르긴 몰라도, 주인공 필재의 직업은 중간에 바뀌었을 것 같다. 극 중에서 필재는 사무장으로 나오는데, 제목이 <특별수사>인 걸 보면 그렇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제목이 내용이나 캐릭터와 너무 맞지 않다. <성난 변호사>가 변호사가 주축이 되어 사무장, 예전 동료 검사와 함께 사건을 풀어가는 것과 비슷한듯 다른듯 <특별수사>는 사무장이 주축이 되어 변호사, 예전 동료 경찰과 함께 사건을 풀어가지 않는가. 비슷해도 너무 비슷하다. 일명 '사이다' 범죄 영화가 한창일 작년 후반기에 개봉하지 않고 지금에 와서야 개봉한 이유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사회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가장 큰 힘 '관심'
다만, 영화의 모티브가 2002년 '영남제분 여대생 살인사건'이라는 점이 와 닿는다. 2002년 3월 여대생 하지혜 양을 영남제분 회장 부인이 청부살인한 사건으로, 사위와의 관계를 의심해서 그와 같은 짓을 저질렀다. 이후 무기징역을 받은 그녀는 건강 상의 이유를 들어 계속 형집행을 정지했고 병원에서 초호화 생활을 했다고 한다. 영화 스토리를 봤을 때 큰 유사점을 느끼진 못했지만, 사건을 재조명하게 되는 계기는 마련해 주었다.
▲ 김명민과 성동일의 조합이 나쁘지 않았다. 진중한 캐릭터보다 조금 가벼운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 김명민, 연기 스팩트럼이 가장 넓은 배우 중 한 명인 성동일. 이 둘을 보는 재미로도 충분하다.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의 한 장면. ⓒ NEW
여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배우 김명민과 성동일의 조합이 나쁘지 않았다. 진중한 캐릭터보다 <간첩>이나 <조선명탐정>의 분야에서 출중한 실력을 자랑하지만 조금 가벼운 캐릭터가 더 잘 어울리고 매력 있는 듯하다. 연기 스팩트럼이 워낙 넓은 성동일은 따로 말할 것도 없겠다. 누구와 붙여 놓고 어디에 놔둬도 제 몫을 하는 그이기에, 여기서도 빛을 발하며 옆사람도 빛나게 한다.
식상함을 떠나서 이런 류의 영화가 계속 나와주기를 바란다. 사회를 깊숙이 들여다보진 못하지만, 최소한 문제의 심각성을 불러일으키며 잊지 않게 해주진 않는가 싶어서다. 거기에 영화적 재미도 풍부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한 번쯤 관심가져 줄만은 하겠다. 사회를 무너지지 않게 하는 가장 큰 게 바로 '관심'이 아닐까. 영화에서 필재가 어떤 이유로든 순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그들 부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관심이 사람을 살리고 가족을 지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singenv.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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