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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흑인인데 웬 인종차별이냐고?

[인터뷰 ②]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펼치는 심리치료전공자 주승섭씨

등록|2016.07.26 17:06 수정|2016.07.26 17:06
[인터뷰 ①] 한인 유학생이 흑인인권운동에 동참하는 이유

▲ 미국 댈러스 흑인 사회의 항의 시위를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미국처럼 인종 차별에 강력한 처벌 기준을 둔 나라는 많지 않다. 이러한 법안은 실제로 차별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흑백 갈등은 인종 차별 문제를 대표할 뿐이다. 실제로 아시아인은 흑인과 다른 차별을 받는다. 은근하게 차별받은 아시아인들의 이야기는 차별이라고 대놓고 말하기도 모호한 지점이 참 많다. 아시아인들은 이러한 차별에 비애를 느끼지만, 말하지 못한다는 어려움을 동시에 경험한다. 이 문제는 때로 흑백 갈등을 무마하거나 눈을 돌리게 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지난 4월 유죄 판결을 받은 '피터 량 사건'은 LA에서 있었던 흑인 폭동 사건과 '다른 듯 같은' 유색 인종 간 대립을 불러왔다. 지난 2014년 11월, 중국계 미국인 경관 피터 량이 순찰 도중 무고한 흑인을 쏘아죽였다. 이 사건은 뉴욕 스태턴아일랜드에서 경찰이 헤드록으로 흑인을 죽인 사건,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백인 경관이 비무장 흑인을 사살한 사건 등과 맞물려 큰 논란을 빚었다.

앞선 두 사건의 경관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던 탓이다. 흑인 사회에서 'Black Lives Matter'(BLM,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과 시위가 일어났다. 신입 경관이었던 피터 량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졌고, 지난 2월 배심원들은 유죄를 평결했다. 결국 중국인들을 중심으로 아시아인들이 거세게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전 사건과 달리, 피터 량을 유죄로 판결한 것은 '인종 차별'이라는 주장이다. 판결은 사회봉사 800시간과 보호관찰 5년이었다. 판사는 우발적 총격이라고 봤다.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들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인들과 흑인들 간의 인종 격돌 문제로 비화하려 했다. LA 흑인 폭동 사건이 일어났을 때처럼 흑인들의 분노가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으로 향하게 하려 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잘 전달되지 않았다. BLM 운동에 동참하던 젊은 한인들은 이러한 상황이 난감하다. 한국만큼 역사 교육에 정직하지 못한 미국의 현실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대학에서 한국과 미국의 제대로 된 역사를 접한 유학생 주승섭씨도 이러한 역사적 해석과 설명이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이 생각하는 흑백갈등을 나눈 지난 이야기에 이어 그가 바라보는 미국의 갈등 문제를 들어 보았다.

맥락을 삭제한 역사 교육... 소수자 차별 문제의 시작

▲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경찰 제도 아래 일어난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흑인이 아닌 다른 유색 인종이 가지고 있는 인종 차별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보았다. ⓒ 유영


- 얼마 전 동양인 경찰이 흑인을 총격으로 죽여 재판을 받았다. 실형은 면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어떤 생각을 했는가?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백인 우월주의라는 큰 프레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1세대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 아시아인 안에 있는 흑인 차별 의식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이러한 상황을 흑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무죄에 가까운 판결을 보면서도 안타까웠다. 아시아인 경찰이 흑인을 죽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실형 판결을 받아야 할 사람이 받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사안에서도 진보 활동가들도 의견이 갈렸다. 흑백 갈등 논리 안에서 아시아인이 백인을 대신해 총대 메고 당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건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경찰 제도 아래 일어난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흑인이 아닌 다른 유색 인종이 가지고 있는 인종 차별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보았다."

- 흑인이 대통령인 나라에서 흑인 차별 이야기는 어불성설이라는 말도 많다.
"나도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흑인이 대통령까지 하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 젊은 세대 한인들이 흑인 대통령이 나왔으면 끝난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도 들었다. 여기서 흑인 인권은 이미 완성됐다고 평가한다. 아직 아시아인 미국 대통령은 없으니 말이다. 이건 마치 여성 대통령이 나왔으니 여성 인권 문제는 다 끝난 것 아니냐는 말과 같다. 잘못된 생각이다.

인종 이야기를 할 때 흑백 갈등 구조만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아시아인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지 계속 자문한다. 아시아인의 인식 개선을 위해 어떻게 활동해야 할지 고민이다. 실제 아시아인은 흑인들이나 히스패닉이 경험하는 인종차별과 다른 형식의 차별을 경험한다. 최근 들어 미묘한 차별,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는 심리학적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말이지만 2007년에 확산돼 아시아인이 경험하는 인종 차별이 연구되고 있다.

아시아인들도 차별 당한다는 같은 전제 아래 있지만, 흑백 갈등 구조만 이야기될 때가 많다. 가장 오래되고 골이 깊은 인종 문제이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한다. 1700년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시기부터, 아니 더 멀리 보면 십자군 전쟁에서부터 시작된 흑백 갈등 구조가 먼저 풀려야 한다. 그래야만 다른 인종 차별 논의도 계속 진전할 수 있을 것이다."

- 인종 갈등 문제에서도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할 도구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
"LA에서 있었던 사태를 비롯해 이민 사회 형성 등과 여러 사회와의 관계 등을 포함한 이민 역사 연구가 잘 이뤄지면 어떨까 생각한다. 미국에서 자라는 한인 자녀 세대가 한국사를 제대로 배울 기회도 없지만, 배워도 6.25 등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는 것만 배운다. 역사적 맥락을 배우기는 쉽지 않다.

이민 사회에서 살면서 우리 정체성을 배울 때도 이런 역사 속 사건만 배운다. 민족사를 배우는 것과 함께 이민 사회의 맥락이 한국, 미국 역사와 어떻게 이어지는 알아야 한국계 미국인의 정체성을 잘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국에서도 현대사를 대학에 가서나 배울 수 있다고 말하는데, 미국에서도 현대사가 많이 약한가?
"미국도 이게 문제다. 역사를 제대로 안 가르친다. 편협한 사고를 주입한다. 백인들이 세운 학교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구조화한다. 예를 들어 이런 문제다. 콜럼버스가 '발견했다'와 '왔다'라는 표현을 교과서에 쓴다고 생각해 보자. 여기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발견했다고 쓰는 건 문제가 있다. 그가 여기에 온 것이다. 그런데 발견했다고 쓰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다.

노예제도를 미화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역사를 식민사관으로 기술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미국도 역사를 지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등도 멕시코 땅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러한 사실을 잘 말하지 않는다. 그곳에 사는 멕시코인들이 이민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원주민으로 지냈던 사람이 많은데, 이 역시 배우지 못해서 생겨난 편견이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로 대표되는 흑인 인권 운동 이야기도 백인 시각으로 많이 해석됐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어록이나 'I have a dream(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도 제대로 된 의미에서 사용하는 사람을 별로 못 본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도 흑인 여성들의 죽음은 말하지도 않고 잊혔다. 인권 운동을 벌인 여성들의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성소수자들 이야기도 묻혔다. Black Lives Matter(BLM) 운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운동 전체를 보는 BLM이 있고, BLM 해시태그 운동이 있고, BLM 단체가 있다. 여기서 단체를 처음 시작한 이들은 성소수자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여성, 성소수자는 모두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도 지워진다.

나는 교육대학에서 심리 치료를 전공했다. 그래서 교육에 관심이 많고, 교사로 일하는 친구도 많다. 교사 친구들이 BLM운동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경찰이든 경찰 손에 죽은 사람이든 12년 교과 과정을 거쳤을 텐데, 이 사람들이 인종 문제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왜 아무도 모를까, 왜 모르는 사람이 많을까 궁금해한다. 인종과 성별, 소수자 인권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집중해 고민한다."

차별과 편견에 연대로 맞서야

▲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전제는 기본이다. 편견으로 살해당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더 펼쳐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유영


- 경찰 살해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이 부분도 참 많이 안타깝다. 생명이 사라졌다는 상황에서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 문제로 Blue Lives Matter(경찰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말도 나오면서 흑인들의 폭력성을 지적하기도 하니 여러 가지로 아쉽다. 170여 명의 흑인이 죽을 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던 사람들도 경찰들의 죽음에는 애도를 표한다.

경찰을 살해한 사람은 BLM과 상관이 없다고 밝혔지만, BLM과 연관해 몰아가는 상황도 아쉽다. 그리고 경찰이 범인을 살해한 방식도 문제가 많다. 미국 국민인데, 로봇을 이용해 폭탄을 터트려 죽였다. 테러범을 죽이듯 말이다. 모두의 생명이 중요하다면 누군가를 살해했을 때도 납득할 수 있는 벌이 따라야 한다. 어떤 살해범은 폭탄으로 죽고, 어떤 살해범은 직장을 잃는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관련 기사 : 분노한 흑인에 '폭탄 로봇', 극단으로 치닫는 미국)

앞서 말했듯 경찰 살해로 인해 Blue Lives Matter를 해시태그로 거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All Lives Matter(모든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구호들은 모두 Black Lives Matter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BLM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고 말한다. 경찰의 편견과 오해로 죽어 나가야 했던 흑인들이 죽어가기에 외치는 말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전제는 기본이다. 편견으로 살해당하는 사람들이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더 펼쳐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 미국에 있는 한인들과 아시아인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면 인권 운동에 사용된 말이 사람들을 억압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리고 백인 위주 역사를 배우고 이해한 사람들은 편견의 눈으로 흑인들을 바라본다. 다수, 권력이 편견으로 움직이기에 소수자인 우리 아시아인들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흑인 인권 운동은 모든 유색인종을 포함한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한 투쟁이었다. 편견이 낳은 차별 속에서 우리도 살아간다. 편견과 차별에 함께 맞서나가도록 소수자들이 연대하고 위로하며 나아가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주 한인 언론 <뉴스 M>에도 송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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