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은 나치와 같은 혐오 표현이다?
[주장] 김자연 성우 하차 논란... 기업 이익 논리 따른 양심 침해,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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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는 왕자를 필요치 않는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인증한 김자연 성우의 트윗. 이후 게이머들에 의해 메갈리아 논란에 휩싸였다. ⓒ 김자연 트위터
결국 그 다음날인 19일, <클로저스>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논란의 대상이 된 김자연 성우를 공식 하차 시키겠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그리고 뒤이어 "에이스톰"사의 <최강의 군단>에서도 논란에 휩싸인 김자연 성우를 전격 교체한다고 밝혔다. 잇따른 하차 발표에 김자연 성우의 '부당 해고'를 둘러싼 논란이 가속화 되자, 당사자인 김자연 성우 본인은 블로그를 통해 회사 측과 서로 간의 합의를 통해 깔끔하게 끝났다는 해명문을 올렸다.
메갈 논란으로 인해 문제가 크다는 걸 인지했다는 한편, 개발사와의 모든 계약은 이행이 되었으며, 계약 해지가 합의될 때까지 사측에서 부터 최대한의 배려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는 김자연 성우를 비난하는 측에서 메갈로 대표 되는 극단 페미니스트들이 당사자의 의지와 사정과는 상관이 없이 자신들의 목적인 남성 혐오 선동을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얼핏 그 주장은 당위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넥슨과 김자연 성우와의 관계는 고용주-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닌, 외주 계약 관계를 띠고 있고, 애당초 김자연 성우는 넥슨 혹은 나딕 게임즈에 전속 되어있는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몇 몇 극단 페미니스트들이 말하는 '부당 해고'라는 지칭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주장은 한편, 더 나아가서 성우 본인을 둘러싼 '메갈 논란'이 해당 게임과 기업 이미지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회사의 선택은 지극히 상식적이었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더불어, 계약은 일방적 파기가 아닌 상호 합의가 전제 된 상황에서 마무리 지어졌기 때문에, 이를 계속 문제 삼는 것은 성우 본인에 대한 입지만 악화시킬 뿐이라는 주장이다.
▲ 한 커뮤니티 게시판에 한 모바일 게임의 운영자가 썼다고 알려진 글. 김자연 성우의 하차를 긍정하는 이들의 논리이기도 하다. ⓒ 화면캡처
하지만 이 주장은 역설적으로 수많은 외주 노동자들이 기업의 이익 논리에 의해 침해 받는 현실을 시장 논리에 기대 '계약 관계'라는 이유로 정당화할 뿐이다. 그러므로, 이번 논란은 성우 개인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외주 노동자들의 인권이 "혐오"에 의해 얼마든지 내쳐질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며, 당사자 간의 합의가 마무리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어쩌면 이는 올해 초 쯔위가 겪었던 양안문제 사과 논란과 매우 많은 부분에서 겹쳐보인다.
행위의 당위성을 떠나서, 쯔위의 사과는 많은 부분을 시사했다. 첫째, 기업은 언제나 시장의 요구에 부합한다는 것. 둘째, 그 요구가 배타적 민족주의와 같이, 혐오에 기반한 정서도 시장 논리에 따라 얼마든지 수용될 수 있다는 것. 셋째, 그 과정에 있어 모든 책임은 서열 밑바닥에 위치한 노동자 개인을 억압함으로써 해결된다는 것이다.
물론 두 사건에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쯔위는 최소한 한국에서는 배타적 민족주의 폭력과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비정한 '어른들'의 논리에 희생 당한 피해자로 다뤄졌다. 세상 물정 모르는 걸그룹 멤버가 보호 받지 못하는 비극으로 소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자연 성우의 메갈리아 논란이 쯔위와는 정 반대로 비춰진 것은, '여성으로선 마땅히 받아야 할 남자의 보호'를 거부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여성의 주체성은 남성의 도움을 통해 성립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보호와 도움이라는 시혜적 시각 속에 정당화 되었던 부조리마저 거침없이 비판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Girl do not need a PRINCE"(여자는 왕자를 필요치 않는다) 티셔츠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단순한 홀로 서기가 아닌 남성 중심적 사회의 기득권 체계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므로 이 논란은 남성 중심적 사회 아래에서는, 똑같은 노동문제라 할지라도 페미니즘과 관련 된다면 어처구니없이 배제 당한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들은 남성 중심적 사회에 대해서도 끊임 없이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에, 기존의 질서가 유지되길 원하는 동등한 관계의 남성들에게서도 쓸데없는 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것이다. 즉, 페미니스트들은 계급 투쟁의 문제에서도 카스트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진짜 페미니즘과 가짜 페미니즘, 진정성의 함정
그럼 사건 자체로 돌아가보자. 표면적으로, 김자연 성우가 문제가 되었던 것은 페미니스트 티셔츠가 메갈리아의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판매되었다는 것이다. 김자연 성우를 문제 삼는, 그러니까 넥슨의 계약 해지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을 빙자한 '남성 혐오' 집단(이를 가짜 페미니스트 혹은 페미나치 라고도 한다. - 필자 주)인데, 이 집단을 문제 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나치즘과 같은 혐오 사상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 입장에 대해서는 게임동아의 조영준 기자의 (<클로저스 성우 교체 논란, "왜 넥슨이 욕을 먹어야 하나?"> http://game.donga.com/84682/) 라는 칼럼에서 잘 정리되어 있다.
해당 칼럼에서는 모바일 게임 <이터널 클래시>의 선례를 들어 업계의 당연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어떤 기업의 서비스건, 서비스 내에 특정한 사상이 부각 되면 대중들에게 논란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최소 수십억 원의 부담을 진 기업 입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예시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 모바일 게임 "이터널 클래시" 서비스 초기 스크린 샷. 일베의 부적절한 코드가 들어갔다는 의혹이 큰 논란을 불러왔다. 현재는 수정된 상태. ⓒ 화면캡처
<이터널 클래시>의 사례는 게임 내적인 부분에서 -혐오와 비하로 점철된- 적절치 않은 일베의 유머 코드가 직접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김자연 성우의 티셔츠 인증은 엄연히 게임과는 관련 없는 사적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말로 두 사례가 같은 층위에서 다루어진다면, 피터 노먼과 랜스 암스트롱(피터 노먼은 1968년 멕시코 시티 하계 올림픽 당시,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수였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와 함께 메달 시상식에서 흑백차별 반대 퍼포먼스에 동참하여 퇴출당한 호주인 육상 선수이며, 랜스 암스트롱은 도핑 혐의가 발각되어 사이클계에서 추방된 前투르 드 프랑스 챔피언이다.- 필자 주)은 이유야 어찌됐든 물의를 일으켜 스포츠 계에서 퇴출 된 건 마찬가지기 때문에 똑같은 부류로 묶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한편 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티셔츠 펀딩의 주체인 '메갈리아4'가 이전 메갈리아의 '급진 세력'과의 결별 여부와 "미러링"이라는 수단의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설명을 어떻게 하든, 메갈리아는 이미 '나치'와 '이슬람 국가'에 비견 되는 극단주의자로 몰려있기 때문에 김자연 성우의 진정성이 검증이 되어도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
진짜 문제는 "미러링"의 정당성 따위가 아니다. 이미 '페미나치'라는 단어에 대한 문제 의식없이 무분별하게 통용되는 풍토에서, "미러링"에 대한 정당성은 메갈의 도덕성을 문제 삼아 공격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혐오를 우려하기 때문에 메갈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페미니즘을 반사회적 집단으로 포장하기 위해 메갈의 도덕성을 언급하는 것 뿐이다.
오히려 그들은 메갈에게 급진주의 라는 이미지를 부여하고 '나치'와 '이슬람국가'의 이미지를 이에 결부시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를 가할 대의명분을 생산하는데 이용한다. 물론 그들에게 나치와 이슬람 국가의 행보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페미니즘에 대해 맹목적인 증오를 반증하는 선동의 어휘로 사용할 뿐이다.
페미니즘은 우리 모두의 문제
▲ 김자연 성우에 대해 지지한 웹툰 작가들의 검열을 강요하는 네티즌 사이에서 퍼지는 "예스컷" 운동의 아이콘.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검열에 반대하던 "노컷 캠페인"의 로고를 그대로 가져왔다. ⓒ 화면캡처
이번 논란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 혐오 정서가 노골적으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김자연 성우의 경우처럼, "Girl do not need a PRINCE"티셔츠를 인증한 이들을 향한 신상 몰이가 가속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으로는 김자연 성우를 지지한 웹툰 작가들 뿐만 아닌(그 수는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작품을 통해 페미니즘 정서만 드러내도 "메갈리아에 오염된" 동조자로 간주하고 검열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게임개발자연대의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는 사건 이후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게임업계 노동자들의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 게임개발자연대 트위터
한편 게임개발자연대에 따르면, 해당 사건에 대해 부정적인 우려를 표한 개발자들이 권고 사직을 권유 받는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전에는 창작물과 개인에게 반영된 왜곡된 여성상을 지적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행위를 검열이라 주장했던 이들이, 지금에 와서는 작가 개인과 노동자들의 사적 발언권과 창작의 자유에 검열 권력의 칼을 들이댄 채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외주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이다. 그러나 더 나아가 그 기저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적개심이 깔려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티셔츠 한장으로 촉발된 남혐 대 여혐이라는 단순한 성대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티셔츠를 둘러싼 여성혐오의 정서가, 페미니즘에 대한 적개심을 빌미로 노동 인권의 억압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침해마저 정당화하려는, 파시즘적 회귀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에 대한 투쟁이다.
사실 넥슨이라는 기업에게 있어서 김자연 성우가 "Girl do not need a PRINCE"(여자는 왕자를 필요치 않는다)라는 티셔츠를 입어서 실추한 이미지는 김정주 넥슨 회장과 진경준 검사장의 커넥션 사건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 않냐는 의견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굳이 중요하게 봐야 하냐는 시선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조리에는 경중이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됐던, 부조리가 실재한다면 당연히 타파해야 한다. 페미니즘 티셔츠를 인증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인신 공격을 당하며 직장 내 불이익을 감내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사소한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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