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주민들이 면 단위 최초로 신문 만드는 까닭은?
8월 창간준비호 발행키로... 발행주체는 '협동조합'
▲ 지난 21일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예리에 있는 자산문화관 2층에서 '흑산신문 발행을 위한 주민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는 20명의 주민들이 참여했다. ⓒ 이주빈
요즘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신문이고 방송인데 섬사람들이 하는 말 조곤조곤 담아주는 언론 하나 없다. 모두가 다 기자라는 세상인데 '팩트(fact)'를 확인하러 섬마을까지 오는 기자는 드물다.
그래서 섬에서 사건만 발생하면 섬사람들에 대한 집단폭력이 난무한다. "섬은 폐쇄적이어서 범죄가 발생하면 서로 쉬쉬하고 감싼다"라는 것이 그들이 바꾸지 않고 즐겨 써먹는 낙인찍기다. 그들이 생각하는 섬엔 인간이 없다. 그저 자신들의 분노를 배설할 대상으로써 '섬'과 '섬놈'만 존재할 뿐.
그러니 거기엔 이성이 개입할 필요조차 없다. 사실관계를 따지고 현장을 확인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최소한의 분별력조차 생략해도 나무라는 이가 없으니까. 사회적 신경질을 부리며 떼거리로 구타를 해도 변변하게 대응하지 못할 그 '폐쇄적이고 미개한 것들은' 육지에서 격리된 섬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당한 사회폭력의 경험을, 사회적 신경질을 부리며 또 다른 사회폭력으로 전가하는 자들이 많은 사회는 불우한 사회다. 이들은 주로 집단학살과 고문 등 국가폭력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회에 많다. 이들에게 섬과 섬사람들은 매우 좋은 먹잇거리다. 그들은 도시사람들이 흔히 하는 항의방문조차 쉽게 할 수 없는 외딴 섬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폭력을 당한 피해자를 변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폭력을 행사한다. 또 그들은 항상 '2차 피해'를 강조한다. 자신들이 이미 2차 피해자를 낙인 찍어놓고 실컷 집단폭력을 가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지난 21일 오전 10시 30분, 전남 신안군 흑산면 예리에 있는 자산문화회관 2층에 흑산도 주민 20명이 모였다. 이들이 모인 까닭은 면 단위 최초로 지역신문 창간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흑산도 주민들은 논의를 통해 오는 8월에 '(가칭) 흑산신문' 창간준비호를 내기로 했다. 그리고 신문을 내는 발행주체를 '협동조합'으로 하기로 했다. 7월 24일 현재 흑산신문 창간에 동의한 주민 25명이 창립발기인으로 참여하고 있다. 흑산신문 창립준비위는 "주민이건 출향인사건 발행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라고 문을 열어놓고 있다.
▲ 흑산신문 발행을 주도하고 있는 이영일 준비위원장. 그는 "흑산신문은 협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주빈
"육지와 이웃 섬 소통할 수 있는 다리 역할"
이영일 흑산신문 창간 준비위원장은 "신안군은 한국에서 제일 섬이 많이 있는 기초자치단체지만 하다못해 생활정보조차 서로 나누기 힘든 곳이었다"라며 "비금도나 도초도처럼 그나마 목포와 가까운 섬은 무료생활정보지라도 받아볼 수 있지만 먼바다 건너 흑산도에선 이조차 힘들어서 애로사항이 많았다"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이 때문에 생활권이 같아도 흑산도는 목포 등 도시와는 물론 가까운 이웃 섬과 간접 소통조차 힘들었다"라며 "육지와 이웃 섬과 소통할 수 있는 다리 역할로서 흑산신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발생한 이른바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주민들로 하여금 자체 신문 창간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들었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종편을 비롯한 다수의 매체들은 주민들을 범죄자들과 동일하게 취급했다고. 심지어 학교에 가는 어린 학생들에게 인터뷰를 강요하며 마이크를 들이대고, 주민들에게 마이크를 숨기고 자극적인 말로 극단적인 대답을 유도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처음 당해보는 상식 이하의 취재 행태"에 경악했다.
"이건 아니라고 백날 말해봤자 소용없었다. 우리 얘기를 해도 받아주는 매체 하나 없었다. 주민들이 '어 이건 아닌데, 정말 아닌데...'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주민들 말 들어주는 매체 하나 없다는 것, 우리 주민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 하나 없다는 것이 우리 주민들이 직접 신문을 만들게 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흑산신문은 주로 지역 소식과 생활 밀착형 공공정보를 많이 전달할 것"이라며 "그리고 흑산도를 비롯한 흑산군도의 섬들이 빼어난 관광지인 만큼 우리 주민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섬의 멋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광문화도 활성화 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1일 흑산신문 창간을 위한 주민 설명회에 최연장자로 참여한 박도순(68, 사리)씨의 기대는 남다르다.
박씨는 "섬에서의 공론화 과정이 주로 개발위원회 등 관변단체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흑산신문이 발간되면 지역 담론을 주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라며 "여러 조건이 안 좋은 섬에서 신문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만 조급하게 맘먹지 말고 가다보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축하했다.
흑산도 사람들이 면 단위 섬에서는 최초로 만들게 될 지역신문인 <흑산신문>. 흑산도 사람들이 직접 취재하고, 직접 만들 <흑산신문>에 어떤 이야기들이 담길까. 출발을 지켜보는 이들의 눈매가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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