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청혼 멘트가 "세계여행 가자"였다니
300일의 신혼여행... 세계일주자 이보람·이영주 부부
▲ 세계여행을 한 이보람씨(왼쪽)와 이영주씨(오른쪽) ⓒ 이보람씨 제공
지금 만나볼 이 부부에게는 뉴스가 될 만한 사건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혼여행으로 300일 동안 세계일주를 한 것이고, 둘째는 각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을 그림으로 그려 지난 7월 <일러스트레이션페어 2016>에 전시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셋째는 여행지에서 다녀와 두 부부에게 가장 큰 축복인 아이가 생겼다는 것이다. 스케일이 남다른 부부인지라 아이 태명도 '우주'다. 범상치 않다.
모두가 영화 같은 삶을 꿈꾸지만, 그것을 현실로 이루기는 쉽지 않다. 남편 이영주(41)씨는 통증의학과 의사로 병원에서 근무하며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아내 이보람(33)씨를 만나고 세계여행을 결심한다.
아내와 함께라면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이 창조한 경이로운 세계를 두 눈으로 목격했고, 위험한 순간도, 재밌는 사건도 많이 맞닥뜨렸다. 꿈만 같던 세계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본 이 부부에게 그간 어떤 일이 펼쳐졌던 것인지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행경비 마련, 결혼비용 아끼고 외식 자제, 신혼집도 최소로
▲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 사막 ⓒ 이보람씨 제공
- 신혼여행으로 300일 동안 세계여행을 하셨는데, 처음 누구 아이디어였나요?
이영주 : "제 아이디어였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세계여행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그만 잊고 살다가 아내를 만나면서 그 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래, 이 사람과 함께라면 뭐든 문제 없겠다…. 결혼 전부터 세계여행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쩌면 결혼보다는 여행준비에 더 몰두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보람 : "청혼할 때 신랑이 '나랑 결혼하면 세계여행 간다!'였어요. 제가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이 아니라 걱정도 많이 됐지만, 이 사람과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떠나셨을 텐데, 여행비는 어떻게 충당하셨나요?
이영주 : "저는 통증의학과 의사로 적은 월급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세계여행을 떠날 정도로 금전 사정이 넉넉하진 않아서 경비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습니다. 결혼비용은 최대한 아끼고 외식은 자제했으며, 신혼집은 결혼 전에 살던 작은 오피스텔로 했습니다."
- 여행에서 만난 가장 감사했던 사람이 있나요?
이영주 : "아이슬란드 여행 중이었어요. 여름이라 내륙도로가 오픈되었다고 해서 약간 눈이 쌓여 있었지만, 렌트한 4륜 SUV만 믿고 그냥 차를 몰았죠. 아뿔싸! 차가 눈구덩이에 빠진 것이었어요. 별수를 다 써도 차는 더 깊이 빠져만 갔습니다. 한참을 차와 씨름하다 주위에 외딴집 한 채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주인 할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한 손사래였습니다. 절망적인 마음으로 홍안의 바이킹 후예 아저씨에게 손짓발짓을 하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선뜻 집채만 한 트랙터를 몰고 와서 저희 차를 꺼내주었습니다. 백야 기간이라 주위가 밝았어도 밤 10시 넘은 시간이라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합니다."
- 위험에 맞닥뜨린 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보람 : "나폴리 중앙역에서 사기꾼에 낚여 시실리행 기차를 놓치고 위장 택시에 실려 어딘지도 모를 이태리 남부 마을로 소환되던 그 새벽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피아의 본고장에서 이러다 돈 꼴레오네라도 만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도 받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었죠. 다행히 200유로 사기 당하는 데 그쳤습니다. 저흰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여행자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여행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안전수칙'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 갈라파고스 제도, 동네 누렁이처럼 뒹굴던 바다사자
▲ 암스테르담 여행지에서 이보람씨가 그린 일러스트 ⓒ 이보람씨 제공
-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여행지는 어딘가요?
이영주 : "이 질문은 너무 잔인합니다. 모든 여행지가 비교할 수 없는 큰 매력이 있었으니까요. 아이슬란드, 모로코의 사막, 카리브해의 섬들, 브라질 북부해변, 파타고니아 지역들…. 모두 엄청난 매력을 간직한 곳이었지만, 꼭 한 곳만 소개해야 한다면 '갈라파고스 제도'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2주가량 머물렀었는데,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길거리에 동네 누렁이처럼 뒹구는 바다사자와 부둣가에서 늘 만날 수 있는 거북이, 가오리…. 그 어떤 바다 생명체들보다 환상적이고 다양한 녀석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갈라파고스였습니다. 주머니 사정 문제만 아니었더라면 몇 달이고 머물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 두 분과 같은 꿈을 가진 이들이 많이 있을 텐데, 여행팁 좀 전수해주세요.
이영주 :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저는 남미 파타고니아에서 40대에 접어들었습니다. 여행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제 나이 또래의 남자 여행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창 일하고 가정을 돌보고 애를 키울 나이인 것이죠. 물론 늦은 나이에 결혼해서 연로하신 부모님께 큰 걱정을 끼쳐드리긴 했지만, 저의 결정을 이해해준 가족들에게 항상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현실의 소중함도 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떠나기 300일 전부터 여행 일정을 시간 단위로 계산해서 엑셀 파일로 정리했습니다. 또한, 프로모션 가격으로 예약할 수 있는 곳은 예약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비가 초과되었으며, 다녀와서도 바로 일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면에서는 좀 어려웠습니다. 여행에 대한 철저한 고민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 이보람 씨는 여행지를 직접 그림으로 그리셨는데요, 그림을 통해 무엇을 배우셨나요?
이보람 : "저만의 여행 타이틀이 있었어요. 'Color of Journey'…. 바로 여행의 색이에요. 여행을 하다보면 각 나라, 도시의 색이 있어요. 한국에 오방색이 있다고 한다면 다른 나라에도 고유의 색이 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세상에 색이 참 다양하고 새롭구나, 색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아요. 사진은 시간이 흘러서 꺼내보면 그곳의 장면과 그때의 기억들이 어렴풋이 생각나잖아요. 하지만 그림은 사진에서 보이는 표면적인 것들 이외에 그곳의 풍경과 느낌, 더 디테일한 요소들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나요."
- 여행지 그림을 <일러스트레이션페어 2016>에 전시를 하셨는데 감회가 어떠셨나요?
이보람 : "처음으로 일러스트레이션페어에 참가했는데요, 우선 제가 직접 여행했던 곳들을 소재로 해서 전시하게 된 것이 너무 설렜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느끼고 보았던 각 나라의 색감들을 저만의 스타일로 표현했는데, 관람하는 분들에게도 그때의 제 마음이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것 같아요."
- 세계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는데 어떤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나요?
이보람 : "아이가 왠지 모험심이 굉장히 많을 것 같아요. 태명이 '우주'인데 나중에 세계여행이 아닌 우주여행을 간다고 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콩알만 한 우주야! 앞으로 엄마랑 같이 좋은 생각 많이 하면서 건강하게 만나자."
-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무얼 계획 중인가요?
이영주 : "얼마 전 목동에 자그마한 의원을 열었습니다. 제 병원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언제라도 멋진 여행을 떠나실 수 있는 건강한 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진료하려고 합니다."
이보람 : "저는 여행을 다녀와서 그림책 작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교를 하고 있고요. 따뜻한 마음을 담은 그림책을 내년에 태어날 우리 아이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snsmedia.wixsite.com/snsmedia)> 8월호에 먼저 실린 기사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