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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배달됐다, 출생증명서와 함께

[책과 함께 떠나는 여름휴가]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을 <우리 누나>와 <깡통 소년>

등록|2016.08.01 11:40 수정|2016.08.01 11:40
조금만 움직여도 구슬땀이 비질비질 흘러내리는 불볕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린다. 땀방울에 가시가 돋아난 듯 피부마저 따끔거린다. 더위에 지친 입맛 때문인지 밥상 위 젓가락 행진곡도 지루하기 짝이 없다.

시원한 그늘을 찾아 떠나지만, 여전히 흘려할 땀은 한 바가지. 이럴 땐 동네 도서관이 제 격이다. 책이 전해주는 재미와 감동의 물결 속으로 첨벙 빠져들어 보자. 온 가족이 함께 도서관으로 떠나는 피서여행! 아이와 함께 읽으면 좋을 동화책 두 권을 소개한다.

오카 슈조의 <우리 누나>

▲ 동화책 <우리 누나> 오카 슈조 글/ 카미야 신 그림 ⓒ 웅진주니어

처음 추천할 책은 오카 슈조의 <우리 누나>. 글을 쓰기 전 오카 슈조는 특수학교 선생님이었다. 큰 병을 앓기 시작한 마흔 무렵부터 장애인을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애아를 위한 동화라면 교훈적인 주제가 떠오르겠지만, 그런 편견은 이 책 앞에서 잠시 접어두어도 좋다.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 동화에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등장하지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정황을 그려낼 뿐이다.

첫 월급을 탄 기념으로 온 가족이 함께 외식을 하러 나선다. 복지 사업소에서 일하는 장애인 누나가 받은 한 달 월급은 3천 엔이다. 그날 네 식구가 먹은 조촐한 저녁 식사 값은 오천이백 엔. 월급봉투를 손에 쥔 누나가 카운터 앞으로 다가간다. 누나가 계산 하려고 봉투를 여는데, 삼만 엔 지폐 석장이 딸려 나온다. 어떻게 된 일일까. 표제작 <우리 누나>의 결말에는 짭조름한 여름바다의 파도가 넘실거린다.

"내 마음에 그 아이의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61쪽)


두 번째 단편 <잇자국>은 특별한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시게루의 거짓말을 눈감아 주었던 어린 시절은 깊게 패인 잇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만약 시게루의 몸에 난 잇자국이 자신의 것이었다면, 사실대로 말할 수 있었을까.

시게루는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모든 싸움의 원인을 떠넘겨버렸다. 그 잇자국은 팔다리가 불편한 아이가 한 최후의 자기 방어였다. 모른 척 외면해버린 기억 한 조각이 마음속을 헤집어 놓는다. 

강자가 약자에게 휘두르는 힘은 장애와 비장애의 문제만은 아니다. 장애아를 소재로 다루었지만, 책 속엔 보편적인 인간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오해와 편견으로 물들어버린 삶의 이면들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언제부터인가 폭력은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다고 인간의 폭력적 성향에 대해 단순한 비판만을 쏟아내지 않는다. 이 책 속엔 폭력적인 단면들을 이해하려는 포용력도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말을 못하는 아이 몸에 난 멍을 바라보며, 상처를 낸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는 히사에의 엄마. 장난감 목걸이를 사는 아키라를 놀려대는 반 친구들에게 그 목걸이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하려는 동네 할머니의 편지.

그 사이사이 모나고 뾰족한 마음들을 다독이는 작가의 시선이 묻어난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다른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다. 장애와 비장애라는 구별 자체가 부질없다. 책 첫 장을 펼치면 작가가 전하는 짤막한 글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인생은 즐거운 것이죠. 하지만 힘든 일과 슬픈 일과 고통스러운 일도 참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런 많은 일들을 체험하면서,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아는 진정한 인간이."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깡통 소년>

▲ 동화책 <깡통 소년>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글/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 아이세움

다음으로 만나볼 책은 SF영화처럼 흥미진진한 <깡통 소년>이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들어 있는 커다란 깡통이 집으로 배달된다면, 이 한 여름의 무더위는 오싹한 소름으로 바뀔 듯하다. 깡통을 열자 어린 소년이 대뜸 "엄마"라고 부른다면, 현재의 시공간을 의심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

바톨로티 부인은 어리둥절했다. 깡통 속엔 아버지가 콘라트 아우구스트 바톨로티라고 적혀 있는 출생증명서가 있었다. 남편은 말도 없이 집을 나간 지 벌써 오래 전이다. 엄마? 아이를 키워본 적 없는 부인에게 그 말은 외계어처럼 들린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스턴트 아이'가 종알거리는 생소한 단어 앞에서 부인은 어쩔 줄을 모른다.

깡통 소년의 이름은 콘라트 바톨로티. 깡통 속엔 공장의 교육과정을 우수하게 수료한 성적표도 있었다. 콘라트는 예의 바르며 어른 말씀에 순종하는 착한 아이 프로그램에 맞게 훈련된 아이다. 어떤 행동을 해도 되는지 먼저 물어보고, 집안일을 돕겠다고 나서며, 학교 가기 전에 예습은 필수다. 자기 전이라면 사탕의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다. 콘라트는 완제품반에서 금지된 사항을 어기면, 마음이 편치 않다는 것까지 배웠다.

난생 처음 엄마가 된 바톨로티 부인은 카펫 가내수공업자다. 부인은 자신만의 상상력을 즐긴다. 남들과 비슷한 옷차림과 평범한 화장은 질색이다. 그래서 부인은 어디 가나 눈에 띈다. 바톨로티 부인의 남자 친구인 에곤은 콘라트의 아버지를 자처하고 나선다. 똑똑한 아이를 아들로 삼을 기적 같은 일을 놓쳐버릴 사람이 어디 있겠냐면서.

이렇게 해서 콘라트의 새로운 가정이 꾸려진 셈이다. 자상하고 얌전한 행동과는 거리가 먼 엄마 바톨로티 부인과 공부에 대한 기대가 남다른 아빠 에곤, 그리고 완제품 훈련 프로그램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한 아들 콘라트까지. 어쩌면 콘라트네 가족은 가까운 미래에 신인류가 만들어낼 가정의 한 유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콘라트의 학교생활은 어떨까. 지켜야할 것은 반드시 지키는 콘라트에게 아이들 세상은 오류가 넘쳐나는 이상한 나라다. 의문의 물음표가 잔뜩 걸려 있는 해독 불가능한 신세계다. 아이들은 왜 서로를 골려먹는지,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지, 시험공부는 미리 준비하지 않는지, 이해 불가능하다.

그런 콘라트를 향해 바톨로티 부인은 말한다. 애는 애다운 말투를 쓰고, 애다운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콘라트는 애다운 게 뭔지 공장에서 배운 적이 없었다. 지켜야할 규칙과 금기시된 행동들만 익혔다. 부인은 말한다.

"너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봐! 네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뭔지 너도 느낄 수 있을 거야." (122쪽)


콘라트의 인식세계는 꼭 공장에서 찍어놓은 통조림 같다. 혹시 내가 바라던 아이 역시 깡통 소년을 닮은 것은 아닐까. 예절 바른 아이, 착한 아이, 공부 잘 하는 아이는 아이들에게 투영되는 이 시대의 공통적인 이상향이다. 모든 부모의 열망을 안고 우리 앞에 나타난 깡통 소년이건만, 무슨 조화인지, 전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예기치 못한 특별한 상황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법이다. 콘라트네 가족에게도 뜻밖의 위기가 찾아온다. 깡통 소년을 만든 회사 직원이 직접 바톨로티 부인을 방문한다. 잘못된 배달 사고였다는 정중한 사과와 함께 콘라트를 즉시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제 막 가족의 정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허무하게  헤어질 수는 없다. 특별한 상황에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가족과의 생이별을 막기 위해, 콘라트가 해낼 고난이도의 특별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과연 콘라트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는 통쾌한 웃음을, 어른들에게는 발그레한 홍조를 선사해주는 책. 아이들은 '공장에서 생산되는 깡통 소년'이 아니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무늬로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합리적인 생산 라인으로 짜 맞춰 놓은 깡통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 마지막 장에는 "하느님 맙소사!"를 외치는 바톨로티 부인과 에곤이 등장한다. 같은 말 다른 뜻을 표현하는 그 속사정을 꼭 확인해보시기를. 청량한 웃음이 무더위의 갈증을 시원하게 날려보낼 것이다. 동화가 그려내는 상상은 어제와는 조금 다른 세상을 보여줄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우리 누나> 오카 슈조 글/ 카미야 신 그림/ 김난주 옮김/ 웅진주니어/ 값 7500원
<깡통 소년>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글 / 프란츠 비트캄프 그림/ 유혜자 옮김/ 아이세움/ 값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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