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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만나지 말란 남편과 싸웠습니다

결혼한 여자는 다른 남성과 연대할 수 없는가

등록|2016.07.28 15:52 수정|2016.07.28 15:52

▲ 연대의 표시로 손을 잡고 있는 남녀 ⓒ pixabay


"엄마, 엄마는 남자 친구 없어?"
"왜... 많이 있었지."
"그럼 지금은 없어?"
"아니, 있지... 만나지는 못하고 가끔 전화통화만 해. 친구들이 서울에 살거든."

무슨 이유에선지 요즘 큰 아이가 내게 남자 친구가 있는지 묻는다. 결혼 전만 해도 나는 여자 친구보다 남자 친구가 더 많았다. 피맛골에서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이야기 나눴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그렇게 신이 났는지 틈만 나면 모여 깔깔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호주제나 고부갈등은 우리가 자주 토론하던 주제였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나와 달리 친구들 중에는 차별을 경험한 아이가 많았다. A도 그런 아이였다.

연좌제, 장기실업, 가난이 어둡게 자리 잡은 가정에서 자란 A를 여성학동우회에서 만났다. 아들만 둘 있는 집 막내였다. A는 돈 벌러 나가는 엄마를 대신해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그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3∼4명이 누울 수 있는 방에 겨우 취사할 수 있는 공간만 붙어 있는 옥탑방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나는 당시 부모님이 얻어주신 24평 아파트에서 여동생과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언젠가 우리 집에 놀러온 그가 "여기서는 제대로 요리할 수 있겠다"며 해맑게 웃는데, 나는 그의 초라한 방이 떠올라 미안해서 그가 끓여준 콩나물국을 제대로 삼킬 수가 없었다.

"왜, 맛이 없어?"
"응?.. 아니, 맛있어."

억지웃음을 지으며 나는 서둘러 국을 떠 마셨었다.

내가 20대를 보냈던 1990년대 중·후반에는 성(sexuality)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 터트리던 시기였다. 미국의 1960년대처럼 성에 대한 실험도 많았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것을 알고 싶었고 경험해보고 싶었다. 특히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많이 고민했다. 이 시절 나는 B와 연예를 했었는데, 그가 나의 성적 결정권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했다.

"이게 헤어질 이유가 되는 거니?"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C는 여성학동우회 게시판에 정신대 할머니를 모욕하는 글이 올라오자 반박글을 써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무혐의 처리됐지만 싸우는 과정에서 파트너십을 경험했다.

이런 내가 지금의 남편인 D와 결혼을 했을 때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는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남자들과 달랐다. 그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그보다 어려운 가정을 일으켜 세우려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소박하고 진실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서로가 너무 다르다고 주변 사람들이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 

예견된 수순이었을까? 어렵게 결혼을 했는데 나는 결혼 뒤 셀 수 없는 날을 그와 싸우는데 보냈다. 남자친구를 만난다는 것도 싸우는 이유 중 하나였다. 남편은 결혼하면 남자친구를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일 때문에 만난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안 그러는데 왜 자기는 내가 만나는 사람까지 상관하고 그래.'

분해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다 그렇게 다 상관하면 어떻게 사회생활 하냐고 반박했다. 나중에 남편이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더 이상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언제 오냐고 전화하는 통에 만남을 지속하기 어려웠다.

"결혼을 했다." "직장을 옮겼다" "창업을 했다."

간간히 소식만 듣고 지냈다.

얼마 전 C가 전화를 했다.

"오랜만이지?"
"어떻게 지내? E 통해서 가끔 이야기 듣긴 했어."

C는 장애가 있다는 셋째 아이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다 전화를 끊었다. 자기 문제도 아닌데, 정신대 할머니의 아픔을 나서서 대변하다 고소당했던 C 모습이 떠올랐다. 이번엔 내가 도와줄 차례였다. 남편, 나 남자친구 만날 거다. 이번에도 뭐라고 할 테면 해 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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