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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제이슨 본, 충분히 재미있다

[권오윤의 더 리뷰 42] 서스펜스에 입체적 갈등 구도를 더한 <제이슨 본>

등록|2016.08.02 16:32 수정|2016.08.02 18:20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9년 만에 '제대로' 돌아온 본을 기대하는 마음은 남달랐습니다. 단순히 시리즈의 최신작이 나왔으니까 보러 간다는 생각 이상의 설렘이었죠.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에 안타까워할 것을 예감하면서도 마치 오래전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기 직전의 마음 같은 이 느낌은, 본 시리즈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다들 비슷하게 갖고 있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가 없었던 <본 레거시>가 안겨준 실망감, 그리고 <본 얼티메이텀> 이후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그만한 재미와 흥분을 선사하는 액션물이 딱히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남다른 관심과 기대를 불러 모은 주된 이유일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 <제이슨 본>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내면의 어두운 기억을 지닌 영웅 제이슨 본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추격신과 탈출신, 박진감 넘치는 자동차 액션 장면의 재미도 여전하기 때문이죠.

서스펜스 강조된 <제이슨 본>

▲ 영화 <제이슨 본>의 한 장면.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감독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은 여전히 흥미진진한 액션 시퀀스들을 선보인다. ⓒ UPI코리아


앞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운데 위협을 헤쳐 나가는 스릴러 장르의 특징이 강했던 전작들과는 달리, 이번 작품은 관객들이 등장인물들보다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느낄 수 있는 서스펜스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속도감이 전작들보다 떨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서스펜스 연출은 시간 지연을 기본으로 하니까요.

그렇지만 이것은 식상함을 방지하기 위한 영리한 선택이기도 합니다. 영화든 소설이든, 시리즈물의 공식화된 요소가 잘 알려진 상태에서 스릴러식 구성을 반복하게 되면 지루해지게 되죠. 주인공이 비밀을 밝혀내고 목숨을 부지하는 과정이 더는 궁금하지 않습니다. '뭐 어쨌든 주인공이 잘되겠지'하는 심드렁한 기분으로 보게 되니까요. 갈수록 평범하고 상투적이 되어가는 007시리즈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시리즈들이 제이슨 본과 CIA의 양극 구도였다면, 이 영화는 본이 CIA 국장 듀이(토미 리 존스), 전자전 팀장 헤더 리(알리시아 비칸데르)와 함께 만드는 삼각 구도가 중심입니다. 토미 리 존스의 의뭉스러움과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야심만만함은 맷 데이먼의 우직함과 어우러져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만들어 내지요.

맷 데이먼은 언제나처럼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제이슨 본의 캐릭터를 잘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정신적 혼란과 내면의 상처에 힘들어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계속해서 싸워야 하는 그런 인물을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알게 되지만 그의 고민은 여전히 계속될 것 같습니다. 이제 그의 문제는 좀처럼 밝혀지지 않는 과거의 진실이 아니라, 치유하기 어려운 심리적 내상이 될 것입니다.

주체적 여성, 헤더 팀장

전자전 팀장 헤더 리는 그간 이 장르에 나온 여성 캐릭터 중에서 가장 주체적이고 강인한 캐릭터입니다. 그 흔한 액션신 하나 없지만요. 보통 이런 액션물에서 여성 캐릭터는 자기 직무에만 충실하거나, 주인공과 애정 관계를 맺거나, 조직이나 미션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는 역할만 해왔습니다. 작년에 나온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에서 주목받았던 일사(레베카 퍼거슨)도 결국은 그런 역할에 머물렀지요.

하지만 헤더 리는 다릅니다. 그녀는 업무 능력도 좋지만, 자신의 야심과 필요에 충실합니다. 그녀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결국 자기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과 연결돼 있습니다. 이렇게 주관이 뚜렷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그녀의 존재는 기존 방식의 대결 구도에 기분 좋은 파열음을 일으키며 극의 재미를 더합니다.

▲ 영화 <제이슨 본>의 한 장면. CIA 국장 듀이(토미 리 존스)와 전자전 팀장 헤더 리(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제이슨 본(맷 데이먼)과 함께 갈등의 삼각 구도를 이루는 비중 있는 인물들이다. ⓒ UPI코리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른 <로얄 어페어>로 할리우드의 눈도장을 찍은, 스웨덴 배우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청춘의 증언> 류의 시대물부터 <엑스 마키나> 같은 SF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갈고 닦아 왔습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대니쉬 걸>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것은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죠.

이 영화에서도 어떤 배우와 붙어도 밀리지 않는 화면 장악력을 보여주며 좋은 연기를 펼쳤습니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앞으로의 성공이 더욱 기대되는 배우입니다. 내년까지 소개될 주연작이 4편이나 되고, 2018년에 공개될 <툼 레이더> 리부트 영화에서 라라 크로프트 역할을 맡아 액션까지 소화할 예정이니까요.

본 시리즈가 21세기 액션 스릴러 영화들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큽니다. 전 세계 액션 영화에서 박진감 넘치는 카메라 앵글과 사실적인 카 액션신, 배우가 직접 연기하는 맨몸 액션 장면들이 급증한 현상은 이 시리즈의 성공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그동안 어떤 영화도 이 시리즈를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이 영화 <제이슨 본> 역시도 그렇습니다. 기술적 완성도와 쾌감이 굉장했던 <본 얼티메이텀>(2007)이나, 영화 사상 가장 잘 만든 속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본 슈프리머시>(2004) 만큼 대단한 재미를 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나온 어떤 스파이 액션물보다도 집중하면서 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시종일관 흥미진진했습니다. 실망할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이 정도의 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참 반가웠죠. 앞으로 몇 년을 더 기다려도 좋으니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 조합의 시리즈 후속편을 또 한 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영화 <제이슨 본>의 포스터. 시리즈의 유명세와 영향력에 비하면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적어도 당대 최고의 스파이 액션 스릴러인 것은 분명한 작품.충분히 재미있다. ⓒ UPI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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