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얼마죠? "미소만 지어주시면 돼요"
[맞벌이 가족 리씨네 여행에세이 48] 기분 좋게 해주는 독일 미담사례
▲ 캠핑장에서 꽤 떨어진 하이델베르크에 다녀올 때 자전거를 탔다. ⓒ 이성애
▲ 중국 고등학생 200여명의 수학여행 장면, 산으로 올라가는 중에 수도 없이 많은 복분자가 인상적이었던 하이델베르크 ⓒ 이성애
#. 새것으로 다시 가져오세요
하이델베르크를 시작으로 독일 여행을 시작하는 때였다. 물건을 사러 마트에 들어갔는데 예상보다 구입한 것이 많아져 남편도 나도 품 안에 물건을 겹겹이 껴안고 있었다. 먼저 계산대에 도착한 후 남편을 기다리는데 다가올수록 좋지 않은 표정이다. 그의 눈짓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6입 묶음 달걀꾸러미에서 노란 국물이 줄줄 세어 나오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상황이다. 떨어뜨린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라며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한국에서도 보통 이렇게 했으니까.
20대 젊은 계산원이 그건 도로 가져다 놓고 다시 새 것을 가져오란다. 우리 잘못이라 했더니 중요치 않단다. 깨진 달걀은 이미 계산원에 의해 저쪽 어딘가로 치워졌다. 남편은 새 것을 가지러 갔다. 그리고 또 내가 꼼꼼하게 살피지 않고 골라온 복숭아 아래쪽이 짓물러 썩은 것을 가리키며 이것도 새 것으로 다시 바꿔오란다. 복숭아에 대해선 당연히 바꿔올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내가 간 뒤 '똑똑하지 않은 소비자'라 말하든 말든 그의 간섭이 고마웠다. 남편도 나도 몸은 좀 바빴지만 기분이 참 좋았다.
#. 당신을 믿으니까요
포츠담에서 묶은 이 곳은 별 4개짜리 캠핑장이다. 즉 편의 시설, 마켓이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독일 캠핑장에서만 유독 특이한 것이 있다. 빵을 사고 싶으면 그 전날 미리 리셉션이나 마켓에 주문을 해야 한다. 주문 받은 양에 한해 물건을 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필요한 물건만 가져오니 버리는 것이 없을 것이다. 참 합리적이긴 하다. 소비자 입장에선 사전 예약하는 번거로움은 있지만 어느 시간에 가든 내가 원했던 빵을 먹을 수 있다. 물론 즉흥적으로 맛있어 보이는 빵을 먹을 수 없긴 하다.
첫 날은 크루아상 2개, 치즈 빵 2개, 짧은 바게트 1개를 주문했다. 주문함과 동시에 계산을 하는데 그 영수증을 잘 가지고 있다가 그 다음 날 그것을 내보이면 빵과 바꿔주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아침에 빵을 받으러 가야 하는데 영수증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저곳 한참을 찾은 후 차 안에 구겨져 있는 것을 간신히 찾아 마켓으로 갔다. 정말 상큼 발랄한 에너지가 기분 좋게 전달되는 스태프가 있었다. 외모뿐 아니라 높은 톤의 목소리를 들으면 한국에 있을 내 지인이 떠올랐다.
나: 빵 바꾸려면 이 영수증 잃어버리면 안 되지요?
스태프: 네네~ 잃어버리면 안 돼요.
나: 아침에 이것 찾느라고 힘들었어요.
스태프: 그래도 꼭 찾아야 돼요.
그녀에게 빵을 받은 후 다음 날 아침에 먹을 빵을 또 주문하고 계산도 끝냈다. 집으로 돌아와 영수증을 잘 보관한다고 둔 곳이 텐트 주머니 중 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아침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다시 계산한다는 조건하에 주문한 빵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리셉션에 갔다. 처음 보는 다른 스태프가 있다.
나: 어, 빵 영수증을 잃어버렸어요.
다른 스태프: 뭐 주문했는지 알아요?
나: 크루아상 2, 치즈 2, 바게트1이에요. 다시 계산하면 되나요?
다른 스태프: (빵을 챙겨 건네며) 다시 계산하지 않아도 돼요.
나: 그래도 영수증을 잃어버렸잖아요.
다른 스태프: 당신의 말을 믿어요. 괜찮아요.
나: 우와~ 고마워요.
돈으로 따지면 기껏 6000원이지만 '트러스트'라는 단어를 써서 나를 믿어주는 그녀가, 이곳의 여유와 정신이 멋지단 생각을 했다.
▲ 한 눈에 봐도 시원한 호수 도시이다. ⓒ 이성애
▲ 캠핑장 초입에 있는 설치물이다. ⓒ 이성애
#. 미소만 보여 주세요
내가 머문 곳은 텐트를 치는 구역이었다. 거의 70%가 가까운 포츠담 시내나 베를린 관광을 위해 아침 열차 혹은 자가용을 타고 밖으로 나간다. 캠핑장보다는 숲 속이란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나무가 우거진 캠핑장의 낮은 정말 고요하고 한적했다. 오늘은 이틀에 한 번 있는, 아이스크림 먹는 날이라 2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진즉에 사먹고 빈둥대며 놀고 있었다.
그때 스태프가 상자를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 보였다. 우리에게도 다가오더니 "아이스"라고 묻는다. 나는 일단 "오케이"라고 말을 하며 아이스박스용 얼음을 나눠주겠다는 건지,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는 건지 몰라 일어서서 상자 안을 보았다. 콜라 아이스크림이 있다. 3개를 꺼낸 후 아이들 손에 쥐어주니 오늘만 두 번째 아이스크림이라며 입이 찢어졌다. 얼마냐는 나의 말에 그녀는 "미소만 보여 주세요"라고 말한다. '와우'란 감탄사와 함께 나는 입을 최대한 찢어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주었다.
캠핑장이 거의 꽉 차는 성수기 시즌에, 시설과 서비스 면에서 가격도 저렴한 곳인데 이런 기본 좋은 이벤트도 하다니. 아이스크림을 먹는 내내, 종이가 좀 찢어져 국물이 새는 중에도 기분이 좋았다.
▲ 아이들이 즐겨 놀던 놀이터다. 보물섬이 연상된다. ⓒ 이성애
▲ 조용히 숨어 지내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대부분 관광을 나간 후라 캠핑장이 조용하다. ⓒ 이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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