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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만든 천문대, 그곳에서 찍은 별자리

일산에서 살다가 전라도 광양으로 내려온 정호준·복채옥씨 부부

등록|2016.08.05 14:46 수정|2016.08.05 14:46

▲ 해달별펜션 앞에 선 정호준·복채옥 씨 부부. 정씨 부부는 경기도 일산에서 살다가 생면부지의 땅인 전라도 광양으로 삶터를 옮겨 살고 있다. ⓒ 이돈삼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장난으로 한 말이 진짜 이뤄져 버렸다는 뜻이다. 그 짝이다. 칠갑산 아래 충남 청양을 태자리로 둔 네 자매(복현옥·채옥·영옥·향옥)가 전라도 광양에 모여 살게 된 것이….

"언젠가 고로쇠 약수를 마시자고 네 가족 여덟 명이 모였었죠. 술을 곁들여서 밤새 얘기를 하다가, 큰동서가 '여기(광양) 좋지 않냐'고 묻기에 좋다고 했죠. '기회 되면 여기서 같이 살면 좋겠다'고 하기에 그러자고 했죠. 나중에 좋은 땅이 나왔다며 '사면 좋겠다'고 하기에 또 맞장구를 쳤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진짜 내려올 생각은 없었고요. 그냥 인사치레였죠."

네 자매 가운데 둘째인 복채옥(59)씨의 남편 정호준(61)씨의 말이다. 그의 표현대로 '말이 씨가 돼서 코가 꿴 셈'이다.

▲ 정호준 씨가 세운 해달별 천문대 전경. 전라남도 광양 백운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 정호준 씨가 해달별천문대의 돔형 천정을 열어 보이고 있다. 정 씨는 지난해 6월 전라도 광양으로 내려오자마자 이 천문대를 지었다. ⓒ 이돈삼


정씨는 지난해 6월 말 직장과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의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광양으로 내려왔다. 방광암 수술을 받았던 부인은 6년 전 먼저 내려와서 터전을 닦고 있었다. 정씨 부부는 백운산 자락,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하조마을에서 천문대와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백조 같은 생활이에요. 겉으로는 느긋한데, 실제는 무지 바빠요. 소소한 것들을 심고, 가꾸고, 물도 주고…. 정말 할 일 많고, 힘도 들지만 재밌어요. 마을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좋고요. 이제 도시생활 못하겠어요. 아파트 안에 들어가면 굼벵이가 된 느낌이랄까요. 그런 생활, 앞으로 다시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정씨의 부인 채옥씨의 말이다.

▲ 해달별펜션 주변의 별자리 촬영 모습. 정호준 씨가 찍은 사진이다. ⓒ 정호준


▲ 정호준 씨가 세운 해달별 천문대의 교육관 전경. 150인치 대형 스크린을 갖추고 있다. ⓒ 이돈삼


강원도 주문진에서 태어난 정씨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가와사키의 전화기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다. 3년 동안 일본에서 생활하다가 MBC 기술본부로 자리를 옮겨 30여 년을 일했다.

"중학교를 서울에서 다녔는데요. 마루에 앉아서 별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별에 관심이 많았는데, 나이 들어서 별보며 살자는 생각에 망원경을 구입했죠. 틈나는 대로 별을 보는 재미에 빠졌어요. 별을 보러 먼 곳까지 다니기도 했구요."

광양에 내려온 정씨가 백운산 자락에 천문대를 세운 이유다. 정씨는 지난해 광양으로 오자마자 산 중턱에 천문대를 지었다. 지자체나 전문 연구원이 아닌, 개인이 지은 천문대였다. 설계도 그가 직접 했다. 이름을 '해달별 천문대'로 붙였다.

천문대는 150인치 대형 스크린을 갖춘 교육관과 직경 6m의 돔형 천정 스크린 구조물의 플라네타륨관, 직경 3.1m의 천문 관측돔으로 이뤄져 있다. 망원경도 마을에서 사준 것을 포함해 모두 10여 대를 갖추고 있다.

▲ 해달별 천문대를 찾은 학생들. 정호준 씨가 세운 해달별천문대는 개관하자마자 지역 학생들의 체험학습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 정호준


▲ 해달별펜션의 화장실과 욕실. 안에서 백운산이 환히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 이돈삼


"제가 어렸을 때 별을 보며 꿈을 키운 것처럼, 우리 아이들이 하늘의 별을 보며 꿈과 희망을 키우면 좋겠어요. 별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몸소 체험하면서요. 그 아이들 가운데서 천문학자가 나오면 금상첨화구요."

정씨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정씨 부부는 해달별 천문대 옆에 2층짜리 펜션도 한 동 지었다. 찾아온 사람들이 밤새 머물면서 별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주변에 지천인 반딧불이를 보는 것도 신비감을 더해준다. 펜션의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백운산을 바라볼 수 있도록 벽면을 통유리로 해놓은 것도 이채롭다.

▲ 김세광·복향옥 씨 부부가 운영하는 음식점 앞 백운산 성불계곡 풍경. 지난 7월 26일 평일인 데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피서를 즐기고 있다. ⓒ 이돈삼


▲ 김세광·복향옥 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하조나라펜션 풍경. 김씨 부부는 성불계곡 가에서 음식점과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 이돈삼


복씨 자매의 광양살이는 15년 전부터 시작됐다. 맏이인 남근수·복현옥씨 부부가 맨 먼저 들어왔다. 순천에서 법원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남씨가 광양으로 옮겨 터를 잡았다. 지금은 읍내에 법무사사무소를 차려놓고 있다.

뒤를 이어 막내 김세광·복향옥씨 부부가 옮겨왔다. 서울에서 운영하던 음식점을 정리하고 내려왔다. 10년 전이다. 김씨 부부는 백운산 자락 성불계곡에서 음식점 '하조나라'와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 박진형·복영옥 씨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아로마테라피 체험박물관 전경. 해달별 천문대 바로 아래에 있다. ⓒ 이돈삼


▲ 막내 김세광·복향옥 씨 부부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한데 모인 복씨 네 자매 가족 8명. 귀촌을 기념해 한 자리에 모였다. ⓒ 정호준


셋째 박진형·복영옥씨 부부는 재작년에 내려와 아로마테라피 체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해달별 천문대 바로 아래에 있다. 백운산 자락에서 채취한 약초와 허브를 이용해 힐링오일을 만든다. 에센셜 오일 추출, 허브향초·천연비누 만들기, 천연염색, 매실장아찌·건강두부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정호준씨가 지난해 6월 마지막으로 합류하면서 네 자매의 광양살이가 완성됐다.

이들 가족 덕분에 기지개를 켜던 하조마을의 6차 산업 산촌생태마을 추진도 탄력을 받았다. 기존의 도자기 빚기, 감물 염색, 산열매 초콜릿 만들기 체험에다 친환경 향기제품 생산과 가공·유통·체험, 천문대에서 밤하늘의 별 보기 등이 버무려졌다.

한데 모여 살면서 산촌마을의 6차산업화까지 이끌고 있는 복씨 네 자매 가족이다.

▲ 하조나라 레스토랑에 한데 앉은 정호준·복채옥 씨 부부와 딸 정도경씨. 레스토랑은 도경 씨가 일하고 있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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