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가기 싫어" 부둥켜안은 가족
[동행취재] 미등록 외국인 가족의 이별, 방글라데시로 떠난 엄마와 두 딸
▲ 마지막 가는 길, 딸을 꼭 안아주는 미등록 체류자... 한국을 떠나는 딸의 눈빛이 낯설다. ⓒ 송하성
6월 17일 금요일 오후, 남양주시외국인복지센터 무지개 보육실에서 이별파티를 하는 바씨마(7)의 얼굴은 어둡지 않았다. 친구들이 전해주는 이별 선물을 바씨마는 미소로 받았다.
"바씨마가 방글라데시로 떠나는 건 아는데 아빠와 오래 헤어진다는 건 몰라요."
보육교사의 귀띔에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누구도 이 파티를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애들도 불법이에요?
▲ 인천공항에서 출국 수속 전 미등록 체류 신고를 하는 외국인 근로자 가족 ⓒ 송하성
6월 19일 일요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난 바씨마는 여전히 활기찼다. 바씨마는 엄마와 동생 신티아(2)와 남양주외국인주민복지지원센터(남양주외복) 직원과 함께 공항 출입국민원실에 나타났다.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저쪽 대합실에 있어요. 여기 왔다가 적발되면 큰 일 나요."
엄마는 먼저 진술서부터 썼다. 2009년 10월에 한국에 들어온 엄마는 미등록, 소위 불법체류 상태다. 1994년에 입국해 역시 미등록 상태였던 아빠와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았다.
진술서를 다 쓴 뒤 출입국 직원에게 불법체류 외국인의 자진출국 사실을 알렸다. 진술서를 꼼꼼히 살펴 본 직원은 두 아이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 애들도 불법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2살, 7살 아이들의 존재가 불법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당국은 최소한 두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엄마가 주한방글라데시대사관에 가서 신고했고 이 기록은 엄마의 여권에 기재됐다. 하지만 출입국 직원은 두 아이의 출생증명서를 요구했다. 없으면 출국할 수 없다고 했다.
이전에도 미등록 체류 외국인 가족의 출국을 도운 일이 있는 남양주외복의 직원은 새로운 서류를 요구하는 것에 항의했지만 규정이라는 말에는 할 말이 없었다. 다행히 아빠가 출생증명서를 가지고 있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법체류 외국인의 자진출국을 위한 행정 처리의 마지막은 사진을 찍는 것이다. 엄마가 사진을 찍고 나오자 새로운 출입국 위반 사실이 드러났다. 엄마는 추가조사를 받아야 했고 3식구의 출국은 연기됐다.
아빠, 빨리 와야 돼!
▲ 방글라데시로 돌아가는 미등록 외국인 가족의 짐보따리 ⓒ 송하성
6월 20일 월요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에 다시 나타난 바씨마는 아직 한국을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다. 공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기자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하지만 출국 시간이 다가올수록 바씨마의 표정은 가라앉았다.
"아빠, 나 방글라데시 안 가면 안돼? 방글라데시 가기 싫다."
바씨마는 한번도 방글라데시에 가본 적이 없고 방글라데시 말도 못한다. 출국이 임박하자 엄마와 아빠가 바씨마를 설득했다.
"그럼, 아빠 금방 방글라데시에 올 거야?"
아빠가 그러겠다고 말하며 숨을 참았다. 바씨마를 꼭 안아주는 아빠의 어깨가 떨렸다.
출국장으로 들어서는데 엄마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신띠아를 안고 바씨마의 손을 꼭 잡은 엄마의 뱃속에는 셋째 아이가 있다. 언제 다시 남편을 만날 수 있을까. 부둥켜안은 4식구는 이제 춤을 추듯 울기 시작했다.
아빠 혼자 벌이로는 뱃속 아이까지 5식구의 생계와 고국에 있는 부모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가족은 생이별을 선택했다.
그들의 헤어짐이 모두의 생존이리라. 살기 위해 헤어지고 또 죽지 않기 위해 이별한다. 이들의 춤(?)은 오래 가지 못했다. 출국시간이 이들을 강제로 떼어내자 엄마는 말 없이 손을 들어 보이고 출국장을 빠져나갔다. 바씨마는 한국에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아빠, 빨리 와야 돼!"
22년을 떨어져 살까?
▲ 딸을 안아주는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 ⓒ 송하성
한국에 홀로 남겨진 아빠는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그의 눈물이 진정되자 "왜 가족과 같이 방글라데시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가서 먹고 살 것이 있으면 저도 갔을 거예요. 한국에서 고생하고 싶지 않아요. 한국에서 일 하는 것 마음도 힘들고 몸도 힘들어요. 방글라데시에서 할 일이 있다면 한국에서 고생할 이유가 없어요."
아빠는 벌써 가족을 추억한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아빠는 집으로 달려갔다. 그럼 2살 신띠아가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빠는 신띠아의 재롱을 보기 위해 기꺼이 점심시간을 투자했다.
"이제 집에 가면 누가 나를 맞아줄까요?"
아빠의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아빠는 가족과 같이 살다가 이제 떨어져서 살 수 있을까. 아빠가 숨을 참았다.
"미국과 호주는 2년만 일하면 영주권을 준다고 해요. 한국도 그렇게 된다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최소한 가족을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불법이든 합법이든 한국경제에 기여하는 것은 똑같잖아요. 한국 정부가 가족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준다면 저의 월급에서 세금을 더 가져가도 돼요."
아빠는 한국 정부가 어느 정도의 불법을 용인하고 있다고 믿는다. 20만명 이상인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가 모두 한국을 떠난다면 한국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우리 공장에 4명의 외국인이 있는데 모두 불법이에요. 합법인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사장님은 합법 신규 근로자를 원하지 않아요. 일을 못하기 때문이에요."
아빠가 방글라데시에 돌아간다 해도 문제는 있다. 한국에서 22년을 생활한 아빠는 이제 방글라데시 음식보다 한국 음식을 더 잘 먹는다. 10년을 생활한 엄마가 방글라데시로 떠나며 고추장, 된장을 챙겨 보내라고 말했을 정도다.
"3년 열심히 일 하고 방글라데시에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아이들이 이제 학교에 들어가면 돈이 점점 더 많이 들 거예요."
아빠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22년 전 처음 한국에 올 때도 아빠는 3년만 일하고 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있으랴. 그 22년 세월이 가족의 기나긴 이별을 말하는 것 같아 아빠는 기어이 서럽게 울고야 말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사진 중에서 얼굴이 노출된 사진은 본인의 허락을 혹은 부모의 허락을 받은 사진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