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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 급발진 추정 사고 534건, 인정은 '0건'

현대·기아·르노삼성 순으로 많아... 피해자에 불리한 원인 규명

등록|2016.08.06 11:13 수정|2016.08.06 11:13

▲ 교통안전공단에 접수된 2010년부터 2016년 7월까지 급발진 추정사고 접수 건수. 이 기간동안 발생한 급발진 추정사고는 모두 534건이다. ⓒ 정민규


급발진 의심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일 부산에서 발생한 일가족 4명 사망 교통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도 자동차 급발진이 거론되고 있다. 2010년부터 6년 7개월 동안 신고된 자동차 급발진 추정 사고는 모두 534건. 하지만 이들 중 실제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례는 전혀 없다.

<오마이뉴스>는 5일 교통안전공단을 통해 '연도별 급발진 추정사고 접수 건수'를 입수했다. 자료를 분석하면 2010년 28건에 불과했던 자동차 급발진 추정사고는 2011년 34건이었다가 2012년 136건으로 껑충 늘어났다.

2013년 139건으로 정점을 찍었던 급발진 추정사고는 2014년 113건, 2015년 50건으로 줄어들었다. 올해는 7월까지 교통안전공단에 접수된 급발진 추정사고가 34건이다.

제조사별 신고로는 내수시장 점유율이 가장 큰 현대자동차가 231건으로 가장 많았고 기아 83건, 르노삼성 82건, 한국지엠 38건, 쌍용 33건 순이었다. 수입 자동차 중에서는 BMW 18건, 벤츠 14건, 도요타 13건 순으로 급발진 추정사고 신고가 많았다.

이 자료는 자동차리콜센터에 신고된 내용만을 나타낸 것으로 교통안전공단 측은 이 수치가 "급발진 현상 발생 진위 여부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 공단은 "판매 대수, 등록 대수, 신고내용 등 다양한 조건이 고려되어야 통계적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급발진 의심은 늘어나는데 왜 피해 인정 못 받을까?

▲ 지난 2일 오후 부산 남구 감만동에서 일가족 5명이 탄 싼타페 차량이 길가에 주차된 트레일러를 추돌해 4명이 숨졌다. ⓒ 부산소방본부


이처럼 급발진 사고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원인은 속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급발진이 전자적 장비 이상으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지 않겠냐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물론 이에 대해 자동차 제조사들은 운전자의 조작 실수를 원인으로 든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 정리하자면 급발진의 기계적 결함을 인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는 식이다. 2008년 대법원은 차량이 일방통행로를 역주행해 1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사건에서 운전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급발진이라고 진술한 운전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운전자가) 의도적으로 역주행했다고 보기 어렵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판단했다.

사람이 차에 치여 죽어도 운전자가 죄가 없는 상황이라면 제조사는 책임이 있을까. 그렇지도 않다. 2013년 대법원은 급발진으로 피해를 봤다며 운전자가 제조사인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를 결정했다. "사고가 승용차의 결함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제조사의 책임, 소비자가 입증해야

▲ 지난 2일 오후 부산 남구 감만동에서 일가족 5명이 탄 싼타페 차량이 길가에 주차된 트레일러를 추돌해 4명이 숨졌다. ⓒ 부산소방본부


원칙적으로 제조물 책임법은 제조물의 결함으로 인해 생명이나 재산에 손해를 입은 경우 제조업체가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손해를 입었다는 증거를 피해자가 제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관련 연구들은 그 한계를 지적한다. 2014년 한국법학회 학술지인 <법학연구>에 실린 급발진 관련 논문에서 김종현 한경대 법학과 부교수는 "자동차 등과 같이 고도의 기술이 집약되어 생산되는 제조물에 있어서는 제조물 피해자인 일반 소비자가 그 생산 과정을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같은 해 6월 <한국정보통신학회논문지>에는 "제조사에게 문제제기를 하면 운전자의 자동차에 장착된 EDR(사고기록장치)을 분리해 제조사가 자체적으로 분석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제조사가 마음을 먹으면 언제든지 기록된 사고기록을 조작할 수 있어 사고분석에 대한 신빙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자동차 제조사에서도 이를 인정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국과수에서도 제조사의 도움을 받아 사고 자료를 분석해야 하는데 운전자가 피해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면서 "피해를 주장해도 제조사가 급발진이 아니라는 논리로 반박한다면 개인이 시간과 돈을 들여 대응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관련법을 소비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급발진연구회 회장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3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의 결함을 운전자에게 밝히라는 것은 의료사고를 피해자 개인이 밝히라는 것과 같다"면서 "소비자 중심의 공공기관을 갖추고 법적·제도적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징벌적 손해배상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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