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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초 한국을 찾은 사할린 동포 3세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할머니는 왜 돌아가지 못했나요?" 재차 물으며 눈물 글썽

등록|2016.08.07 12:07 수정|2016.08.07 13:58

▲ 조상의 나라를 찾아온 사할린 동포들 ⓒ 송태원


지난 2일 러시아 사할린(Sakhalin)에서 태어나 한국 방문은 처음인 고등학생과 대학생 17명과 인솔자 2명(동포2세)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부산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에서 사할린 한인회의 추천을 받아 초청한 사할린 동포 3세대(혹은 4세대)들이다.

일제강점기 후반 남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된 수는 4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탄광, 벌목장, 도로, 철도, 비행장 등의 현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일년만 이년만 고생하면 고향으로 돌아갈수 있다는 희망도 사라졌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패전한 일제가 조선으로 돌아갈 귀국선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본으로 가는 배에도 태워주지 않았다. 그렇게 외면받고 잊혀진 채로 71년의 세월이 흘렸다.

일제강점기 후반 징용자들이 도주한다는 이유로 가족 단위로 강제이주를 시켰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 탄광 노동자들은 연합군의 공격으로 사할린에서 채굴한 석탄의 수송이 어렵다고 다시 일본으로 보냈다고 한다. 사할린에 있는 가족을  두고 다시 강제징용이 되어 간 곳은 하시마섬('군함도'라는 징용자에게는 지옥의 섬이다. 얼마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이다. 뼈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할린 동포는 4세대 이르렀고 2만5천명이 거주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조국(사할린 징용자의 70% 이상이 경상도 출신이라고 함)을 찾은 사할린 청소년들은 울산 진하리조트에서 1박을 하였다. 3일 오전에 한국사 강연을 듣고 부산으로 왔다. 부산시청과 국제교류전시관, 부산시의회를 견학으로 부산 일정을 시작하였다.

기자는 4일 오전부터 이들과 동행하였다. '러시아 사할린 동포와 함께 하는 역사기행'에는 부산 동아고 2학년(11명)과 3학년(1명)도 3일 저녁부터 모든 일정을 함께 하였다.

▲ 한복을 입은 사할린 동포 학생들이 전통예절에 대해 배웠다. ⓒ 송태원


4일날 일정은 동래읍성을 둘러보고 충렬사를 향했다. 충렬사 중강의실에서 전통예절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한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서 러시아 국적의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예절교육을 마치고 즉석에서 교포3세가 한국무용을 선보였다. 충렬사에서 참배를 하고 떡메치기, 제기차기, 투호(항아리 같은데 화살을 던져서 꽂는 놀이)를 하며 오전 일정을 마쳤다.

오후에 찾은 곳은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었다. 2015년 11월 개관하였다. 부산서 2번째 국립박물관으로 등록된 곳으로 사할린에 관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한 한인들의 실상과 일제만행을 알리고 교육하는 공간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곳에서는 좀처럼 웃지 않았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 견학을 마치고 해설사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였다. ⓒ 송태원


▲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상설전시실에서 사진과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 송태원


"왜 돌아가지 못했나요?"
"왜 조국에 돌아가지 못했나요?"
"한국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왜 데러오지 않았나요?"
"할아버지 할머니 잘못이 아닌데 왜 고국으로 갈 수 없었나요?"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서 사할린 3세들이 반복해서 해설사에게 물었다.

"일본은 패망하여 자국민을 챙기기에 바빴고 우리나라도 재외동포에 신경 쓸 틈이 없이 혼란했다. 소련은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조선인 징용자들을 억류하고 있었다"라는 대답에 "그런데 왜 고국에 갈 수 없었는지?" 계속해서 물었다. 전시실에서 사할린 관련 내용이 있는 부분에서는 눈물을 보이는 여대생도 있었다. '사할린의 영문 표기가 잘못되었다'며 소리치기도 하였다.

▲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사할린 영문표기가 제각각이다. Sakhalin, Saharlin 으로 되어있다. 잘못 표기된 'Saharlin' 때문에 러시아 교포들은 굉장히 짜쯩을 내었다. ⓒ 송태원


지난 5일은 부산 영도의 해양박물관을 견학하였고 부산교육청의 초청으로 부산서부교육지원청에서 김석준교육감과 도시락을 먹었다. "러시아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게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한국어 교재도 별로 없고 가르칠 선생님도 적다"며 "부산 교육청에서 사할린 3세, 4세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에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는 말에 김 교육감은 "지원할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답해 주었다. "부산에서 우리를 초청해 주고 가는 곳마다 우리를 환영해 주어 감사하다"며 "교육감님도 사할린에 방문해 주실수 없는지" 물었다. 1시간여 동안 도시락을 먹으며 자연스런 대화를 이어나갔다.

▲ 요트위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 송태원


광안리에서의 요트체험으로 4박5일간의 일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6일 오전에 부산을 출발해 인천공항을 통해 러시아로 돌아간다. '러시아 동포와 함께하는 역사기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말로서 부족한 글을 마무리 한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할아버지나 할머니로부터 전혀 한국에 대한 이야기, 징용에 대해 들은 적이 없었다. 이모가 한국의 건물은 크고 높고, 자동차가 많다. 옛날에는 못 살았는데 지금은 잘 산다고 말해줬다. TV(한국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정도만 한국에 대해 알고 있었다. 처음 도착해서 느낀 것은 너무 더워서 아주 생각이 안 났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보고 일본에 대한 분노가 생겼는데 하지만 과거에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고 우리같은 젊은이들은 모르고 있다.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는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제동원으로 일본이 잘못한 여러가지 일이 지금의 일본 젊은이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화합하여 앞으로를 살아갈 수 있도록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질 부분을 책임진다면 용서하고 화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 크리스티나(여,18세, 대학생)

사할린 젊은이의 모국 방문을 영상기록으로 남기기위해 함께 한 김지운 감독(조선적(朝鮮籍) 재일동포들의 한국 입국 문제를 다룬 다큐영화 <항로-제주,조선,오사카>를 만든 감독)은 "사할린에 대해 오래 외면하고 잊고 지냈다. 예전의 정부는 그들을 버렸고 이후의 정부와 우리는 그들을 잊고 있었다. 사할린 동포에 대해 오래 외면하고 잊고 살아온 만큼 이번을 계기로 잊은 만큼 오래 기억하고 외면한 만큼 깊이 반성하고 그들(사할린 동포와 재외동포 모두)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하고 찾아서 만들어 가야한다"라고 말했다.

▲ 러시아 동포와 3박4일을 함께 했던 동아고 학생들이다. 통역없이도 대화가 된다는 학생들이다. 5일 일정을 마치고 헤어지기전에 한 컷 ⓒ 송태원


동아고 2학년 학생 "저는 러시아말 하나도 모릅니다. 그래도 통역없이 1시간 넘게 이야기 하고 같이 다니고 했는데 조금 불편하기는 했는데 이야기를 꼭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을 하였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다음은 이름이 생각나는 러시아 사할린 교포들의 이름입니다. 스테판, 세르게이, 세르게이, 올가, 블라지슬라브,블라지슬라브, 뗀순남,아나스타시야,김태식,수니,스테판,나탈리야,엘레나.일리나.니키타.김명하기,고영순,이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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