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밥 한 그릇 사먹기도 어려운 소년가장 시절, 허구헌 날 점심은 국수였다. ⓒ 김대홍
소년 가장 시절의 아픈 기억이다. 어렵게 돈을 벌어서 홀아버지와 살아야 했다. 힘들게 번 돈에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먹자면 그게 바로 '사치'라는 생각이 마음에 거부감의 울타리를 쳤다.
그래서 허구한 날 사먹는 점심은 값이 싼 국수였다. 역 앞 국수집에선 소위 '가께우동'을 팔았고 그곳을 지나 왼쪽으로 차부(車部)를 끼고 돌아가면 국수를 팔았다. 가께우동은 사시사철 호황이었지만 여름엔 특유의 뜨거운 국물 탓에 손님이 뜸했다.
반면 차부 뒤 국숫집은 여름에 장사가 더 잘 되었다. 비빔국수와 열무국수 등 여름철 별미국수가 사람들의 인기를 끈 때문이었다. 그렇게 국수로 연명하던 어느 날, 차부(지금의 시외버스 터미널)에 정차돼 있는 버스에 올라가 행상을 할 때였다.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무언가를 사면서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다며 점심은 먹었냐고 물었다. 마침(?) 점심을 아직 안 먹었던 까닭에 함구하려니 그 아가씨가 버스에서 내리는 게 아닌가. 그리곤 근처 국밥집으로 데리고 가더니 두 그릇을 시키는 것이었다.
쥐뿔도 없는 어린 녀석이었지만 자존심은 있어서 안 먹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 아가씨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아까보다 더 살갑게 정담(情談)으로 다가왔다.
"경계하지 마, 난 OO대학교 영문과 학생이야. 내 동생 같아서 사주는 거니까 아무런 부담 갖지 말아."
덕분에 어찌어찌 국밥을 얻어먹긴 했지만 명치끝에 걸린 바늘인 양 그렇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인연이 되어 그 누나와 3년 가까이 펜팔(pen pal)을 했다.
"엄마도 없이 홀아버지와 사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니? 하지만 고진감래는 분명히 있으니 열심히, 그리고 착하게 살거라!"
그런 사연을 보자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누나는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데 소식이 감감하여 입때껏 함흥차사다.
그렇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노라면 각골난망(刻骨難忘)의 감사함이 태산처럼 육중하게 다가온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현대상선 임직원들에게 현대그룹에서 현대상선을 떠나보내는 소회를 밝힌 편지를 삼계탕과 함께 보냈다는 뉴스를 보았다.
현대그룹에 따르면 현 회장은 남편인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기일이었던 지난 8월 4일 그룹 계열사 전체 임직원 5000여 명의 가정에 포장된 삼계탕 4마리와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순간 그 편지와 삼계탕을 보면서 울먹인 사람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동병상련으로 내 마음에도 금세 감동의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