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네 남자의 재기발랄 재기 프로젝트
[한국소설이 건네는 이야기 28] 김호연 <망원동 브라더스>
망원시장에는 2천 원짜리 칼국수, 1마리에 6천 원 하는 쩍벌 통닭, 500 원하는 고로케, 그 외 닭강정, 떡볶이, 꽈배기 등등 싸고 맛난 음식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가는 법도 쉽다고 해요. 6호선 망원역에 내려 2번 출구로 나온 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그다음부턴 큰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가는 쪽이 있다면 그쪽이 망원시장 가는 길이라고 해요.
'망원시장 가는 법'을 검색어에 넣고 엔터를 치자 생각보다 많은 블로그가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망원동에 사는 동네 주민뿐 아니라, 쉬는 날 큰 마음먹고 망원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꽤 되는 듯했어요. '장미 여관' 육중완씨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그의 집이 망원동 옥탑방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망원동 옥탑방'을 머리에 그리며 '망원시장 가는 법'을 찾아본 거였습니다. 요즘 연극으로도 관객을 만나고 있는 '망원동 브라더스'의 원작, 김호연의 <망원동 브라더스>를 막 읽은 참이었거든요. 책의 배경 또한 육중완씨 집과 같이, 망원동 옥탑방이었습니다. 10평도 안 되는 옥탑방에서 다 큰 남자 넷이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소설은 그 5개월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찌질한 네 남자가 옥탑방에...
소설의 한 축은 이런 단어들이 책임집니다. 찌질, 궁색, 절망. 또 다른 축은 이런 단어들이 책임집니다. 태평, 유쾌, 농담. 네 명의 남자가 처한 상황은 첫 번째 축을 담당하는 단어들이 설명해주고, 그 남자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그다음 축에 있는 단어들이 대변해줍니다. 실패한 사람들의 찌질한 이야기가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다가오는 건 인물들의 이러한 태평하고도 유쾌한 태도 때문입니다.
옥탑방에는 원래 영준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서른다섯 살, 3년째 백수, 잡지 만화 시절 등단한 만화가인 영준 혼자요. 보증금 500에 월세 30을 내면서 말이죠. 얼마 전부턴 보증금을 까먹으며 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런 집이라도 좋으니 빌붙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겁니다.
그 첫 인물이 김 부장이에요. 어찌 된 일인지 아내와 딸은 캐나다에 두고 달랑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옥탑방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기러기 아빠도 못 되는 펭귄 아빠라고 자학하면서요. 기러기는 가족들 보러 비행기 타고 날아갈 수라도 있지, 본인은 돈이 없어 날아갈 수조차 없으니 펭귄이라는 겁니다.
그다음 인물이 싸부입니다. 10년 전 영준에게 만화를 가르쳐준 만화 스토리 작가예요. 사실 영준이 싸부를 만난 그 시절 이미 싸부의 좋던 시절은 끝물을 맞고 있었습니다. 80년대엔 대기업 부장 급보다 두 배는 많은 월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기도 했었지만, 90년대 들어 일본 만화들이 수입되며 설 자리를 잃고 만 거죠. 그래도 순종적이고 생활력 강한 아내 덕분에 그간 밥은 먹고 살았는데, 아내가 이제 더는 못 참겠다고 나섰습니다. 이혼 도장을 찍으라는 아내를 피해 싸부가 도망 온 곳도, 망원동 옥탑방이었습니다.
마지막 인물이 20대 고시생 삼척동자입니다. 삼척동자란 별명은 '아는 척, 돈 많은 척, 잘생긴 척'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데요. 삼척동자의 상황은 삼척동자가 언젠가 영준에게 한 말을 통해 드러납니다.
"자긴 특별한 꿈도 없고 그저 학교라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고시라는 정거장에서 내린 뒤, 세상이라는 버스로 환승하지 않는 것일 뿐이란다."
공부가 싫다는 20대 고시생, 만화를 그리지 않는 30대 만화가, 돈 못 버는 40대 기러기 아빠, 황혼이혼에 처한 50대 중년 백수. 이렇듯 기가 푹 꺾인 네 남자가 8평 옥탑방에 앉아 닭다리나 뜯고 앉아 있는 상황인 건데요. 딱 봐도 꽤 암담해 보이죠.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마냥 풀이 죽어 살 수는 없는 법! 네 남자는 '알게 뭐람' 태도로 서로를 놀려대며 씩씩하게 계속 닭다리를 뜯어 나갑니다.
지더라도 산다!
물론,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일을 하는 중에도, 그러니까 닭다리를 뜯어 나가는 중에도, 네 남자의 삶엔 슬그머니 변화가 찾아옵니다. 우리 대부분의 삶도 그렇듯이요. 내일은 그저, 오늘과 아주 미세하게 다른 또 하나의 오늘일 뿐이지만, 이런 미세한 변화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눈에 드러나는 변화가 되곤 하듯이요.
영준의 삶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3년 움츠려 있던 영준은 다시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걸음을 뗍니다. 초등학교 이후 한 번도 만화를 손에서 놓은 적 없던 영준은 지난 3년 만화를 완전히 포기했었어요. 언젠가부터 영준이 아는 만화는 사라지고, 웹툰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죠. 영준의 자존심은 웹툰을 외면하게 했고, 웹툰을 거부한 영준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지 않는 만화가가 됐습니다.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만화를 포기했었다면, 이젠 살기 위해 자존심을 굽힐 차례입니다. 세상에 이기기만 할 수는 없으니, 이젠 져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영준은 압니다. 직접 학습 교재 일을 구합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재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등단한 만화가라는 타이틀을 버린 대신, 영준은 다시 만화 그리는 사람이 된 겁니다. 영준은 생각합니다.
주변의 사람이 다 지면서 살고 있다. 지면서도 산다. 어쩌면 그게 삶의 숭고함 일지도 모르겠다. - 본문 중에서
소설 속 네 남자는 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도 지금껏 더러 져왔고, 앞으로 몇 번은 더 질지도 모르니까요. 뜻대로, 기대대로 살기란 참 어렵우니까요. 하지만 위의 문장에서 중요한 건 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산다는 사실입니다. 지더라도 사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런 삶을 소설은 숭고하다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재능으로는 그저 아이들에게 보여줄 좋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 정도다"라고 영준은 말합니다. 지면서도 산다는 건, 이렇듯 우리 손에 들린 작은 재능으로 다시금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말할 거예요. 전 네 남자가 각자 지니고 있는 작은 재능을 손에 꼭 쥐고 다시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기분 좋게 지켜봤습니다. 사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남자가 모이면, 좀 웃기거든요.
'망원시장 가는 법'을 검색어에 넣고 엔터를 치자 생각보다 많은 블로그가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망원동에 사는 동네 주민뿐 아니라, 쉬는 날 큰 마음먹고 망원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꽤 되는 듯했어요. '장미 여관' 육중완씨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그의 집이 망원동 옥탑방이었다고 합니다.
찌질한 네 남자가 옥탑방에...
▲ 책표지 ⓒ 나무 옆 의자
옥탑방에는 원래 영준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서른다섯 살, 3년째 백수, 잡지 만화 시절 등단한 만화가인 영준 혼자요. 보증금 500에 월세 30을 내면서 말이죠. 얼마 전부턴 보증금을 까먹으며 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런 집이라도 좋으니 빌붙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겁니다.
그 첫 인물이 김 부장이에요. 어찌 된 일인지 아내와 딸은 캐나다에 두고 달랑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옥탑방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나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본인은 기러기 아빠도 못 되는 펭귄 아빠라고 자학하면서요. 기러기는 가족들 보러 비행기 타고 날아갈 수라도 있지, 본인은 돈이 없어 날아갈 수조차 없으니 펭귄이라는 겁니다.
그다음 인물이 싸부입니다. 10년 전 영준에게 만화를 가르쳐준 만화 스토리 작가예요. 사실 영준이 싸부를 만난 그 시절 이미 싸부의 좋던 시절은 끝물을 맞고 있었습니다. 80년대엔 대기업 부장 급보다 두 배는 많은 월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기도 했었지만, 90년대 들어 일본 만화들이 수입되며 설 자리를 잃고 만 거죠. 그래도 순종적이고 생활력 강한 아내 덕분에 그간 밥은 먹고 살았는데, 아내가 이제 더는 못 참겠다고 나섰습니다. 이혼 도장을 찍으라는 아내를 피해 싸부가 도망 온 곳도, 망원동 옥탑방이었습니다.
마지막 인물이 20대 고시생 삼척동자입니다. 삼척동자란 별명은 '아는 척, 돈 많은 척, 잘생긴 척'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데요. 삼척동자의 상황은 삼척동자가 언젠가 영준에게 한 말을 통해 드러납니다.
"자긴 특별한 꿈도 없고 그저 학교라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고시라는 정거장에서 내린 뒤, 세상이라는 버스로 환승하지 않는 것일 뿐이란다."
공부가 싫다는 20대 고시생, 만화를 그리지 않는 30대 만화가, 돈 못 버는 40대 기러기 아빠, 황혼이혼에 처한 50대 중년 백수. 이렇듯 기가 푹 꺾인 네 남자가 8평 옥탑방에 앉아 닭다리나 뜯고 앉아 있는 상황인 건데요. 딱 봐도 꽤 암담해 보이죠.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고 마냥 풀이 죽어 살 수는 없는 법! 네 남자는 '알게 뭐람' 태도로 서로를 놀려대며 씩씩하게 계속 닭다리를 뜯어 나갑니다.
지더라도 산다!
물론, 아무것도 아닌 듯한 일을 하는 중에도, 그러니까 닭다리를 뜯어 나가는 중에도, 네 남자의 삶엔 슬그머니 변화가 찾아옵니다. 우리 대부분의 삶도 그렇듯이요. 내일은 그저, 오늘과 아주 미세하게 다른 또 하나의 오늘일 뿐이지만, 이런 미세한 변화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눈에 드러나는 변화가 되곤 하듯이요.
영준의 삶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3년 움츠려 있던 영준은 다시 세상을 향해 한발, 한발 걸음을 뗍니다. 초등학교 이후 한 번도 만화를 손에서 놓은 적 없던 영준은 지난 3년 만화를 완전히 포기했었어요. 언젠가부터 영준이 아는 만화는 사라지고, 웹툰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죠. 영준의 자존심은 웹툰을 외면하게 했고, 웹툰을 거부한 영준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지 않는 만화가가 됐습니다.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만화를 포기했었다면, 이젠 살기 위해 자존심을 굽힐 차례입니다. 세상에 이기기만 할 수는 없으니, 이젠 져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영준은 압니다. 직접 학습 교재 일을 구합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재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등단한 만화가라는 타이틀을 버린 대신, 영준은 다시 만화 그리는 사람이 된 겁니다. 영준은 생각합니다.
주변의 사람이 다 지면서 살고 있다. 지면서도 산다. 어쩌면 그게 삶의 숭고함 일지도 모르겠다. - 본문 중에서
소설 속 네 남자는 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우리도 지금껏 더러 져왔고, 앞으로 몇 번은 더 질지도 모르니까요. 뜻대로, 기대대로 살기란 참 어렵우니까요. 하지만 위의 문장에서 중요한 건 진다는 사실이 아니라, 산다는 사실입니다. 지더라도 사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런 삶을 소설은 숭고하다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지금 내 손에 들린 재능으로는 그저 아이들에게 보여줄 좋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는 것 정도다"라고 영준은 말합니다. 지면서도 산다는 건, 이렇듯 우리 손에 들린 작은 재능으로 다시금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말할 거예요. 전 네 남자가 각자 지니고 있는 작은 재능을 손에 꼭 쥐고 다시 세상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기분 좋게 지켜봤습니다. 사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네 남자가 모이면, 좀 웃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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