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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진제 완화 나선 정부, 국민이 원숭인 줄 아나

[주장] 누진제 한시적 완화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등록|2016.08.12 11:36 수정|2016.08.12 11:36
기록적인 폭염으로 에어컨을 틀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너무 더워 어쩔 수 없이 에어컨을 틀었지만, 전기요금이 얼마나 나올지 걱정이 됩니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전기요금 때문에 민란이 날 수도 있다는 웃지 못할 소리까지 나옵니다. 그만큼 가정마다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이 큰 것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11일 '누진제 한시적(7~9월) 완화'를 발표했습니다. 전기요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쉽게 볼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의 '누진제 완화'는 더위와 높은 전기요금에 지친 국민을 일시적으로 '달래기'만 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작년에도 나왔던 한시적 전기요금 인하 조치

▲ 정부의 전기요금 인하 조치 관련 2016년, 2015년 기사 ⓒ 동아일보,조선일보 캡처


11일 정부와 여당이 발표한 누진제 완화는 구간별로 정해 놓은 사용량 상한선을 50kWh씩 늘려주는 방안입니다. 쉽게 말해 50kWh씩을 더 사용해도 누진제 구간을 넘지 않는 방식입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보도했지만, 사실 비슷한 인하조치가 이미 작년에도 나왔었습니다.

2015년 6월 정부는 한시적으로 4구간에도 3구간 요금을 적용하는 주택용 전기요금 인하조치를 발표했습니다. 3구간 사용자들이 4구간까지 사용해도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 방식입니다.

2015년은 최대 1만 원, 2016년은 약 1~2만 원 정도 혜택을 주는 전기요금 인하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닙니다. 그저 국민들이 폭염과 전기요금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자 달래겠다는 한시적인 방식에 불과합니다.

10배 사용해도, 요금은 30배 내야 하는 누진제

▲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설명. 주택 전기요금은 사용량에 따라 최대 31배, 금액은 11배 이상 차이가 난다. ⓒ 임병도


보통 물건 가격에 맞게 돈을 지불하면 제품을 구매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기요금은 내가 10개를 샀을 때 10개의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30개에 해당하는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전기 55kWh를 쓰면 3574원의 요금을 냅니다. 만약 550kWh를 사용했다면 전기요금의 10배를 내면 됩니다. 그러나 실제 주택용 전기요금은 10배인 3만5745원을 내는 것이 아니라 14만8615원을 내야 합니다. 자기가 사용한 전기요금 이외에 31배 이상 돈을 더 내야 하는 억울한 경우가 발생합니다.

사용한 양보다 30배 이상의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하는 불합리한 전기요금은, 다른나라에 비해 유독 과도한 대한민국의 '누진제' 때문입니다.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전기를 쓰면 쓸수록 비싸지는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으며 총 6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100kWh 이하는 기본요금이 410원이지만 500kWh를 초과하면 31배인 1만2940원이 됩니다. 전력량 사용에 따라 kWh당 요금은 1~100kWh까지는 60.7원인데 반해 500kWh를 초과하면 약 11배인 709.5원입니다.

'누진제' 때문에 올해처럼 폭염으로 에어컨 등을 사용하면 50kWh씩 늘려줘도 전기요금 폭탄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과도한 주택전기요금의 원인인 누진제를 개선하거나, 폐지하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민을 봉으로 아나, 유독 한국만 심한 누진제

▲ 나라별 주택용 전기요금 비교 '주택용전기요금의 현황과 개편 방향' 인용 ⓒ 조세연구원 임소영


누진제는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도한 누진제는 유독 한국에만 있습니다. 물론 대만이나 일본, 미국, 호주도 한국처럼 누진제를 적용합니다. 그러나 한국만 6단계의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5단계, 일본 3단계, 미국과 호주는 2단계에 불과합니다.

한국은 누진배율이 최대 11배입니다. 그러나 대만은 1.9배, 일본 1/4배, 미국 1배, 호주 1.1배로 한국과 거의 10배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누진제의 기본 전제가 과도한 전기 사용량 억제와 에너지 절약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름철 누진단계를 적용하는 대만도 6~9월까지 누진배율이 고작 2.4배에 불과합니다. 호주는 1.3배로 한국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2015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의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OECD 평균 2335kWh의 55%에 해당하는 1278kWh에 불과합니다. 이는 미국의 29%, 일본의 57% 수준입니다.

정부와 한전, 언론은 매번 한국인들이 가정용 전기를 펑펑 쓰니 누진제가 꼭 필요하고 폐지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의 가정용 전력 소비 비율은 13%에 불과합니다. 산업용 전력 소비 비율 52%에 비하면 극히 저조한 편입니다.

▲ OECD 주요국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 한국은 34개국 중 26위였다. ⓒ 임병도


미국(산업용 23%, 가정용 37%, 공공·상업용 36%), 일본(산업용 30%, 가정용 31%, 공공·상업용 36%)과 비교하면 얼마나 한국인들이 가정용 전력을 아껴 쓰는지 알 수 있습니다.

뿔난 소비자, 한전 상대로 소송 진행 중

2014년 8월 '법무법인 인강' 곽상언 대표 변호사는 한전 전기 사용자 21명의 소송인단을 대리해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법무법인 인강 곽상언 변호사가 진행하고 있는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 ⓒ 법무법인 인강 홈페이지 캡처


곽상언 변호사는 '한전의 전기공급 규정이 불공정한 약관이며, '약관 규제에 관한 법률'에 의해 불공정한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는 한전의 전기공급규정은 당연히 무효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곽 변호사의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 소식이 다시 주목을 받으면서 1천 명 이상의 시민들이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모였고, 전기요금 누진제 등을 걱정하는 많은 소비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한다고 해도 반환 전기요금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월 평균 350kWh 사용자는 45만 원가량이고 450kWh 사용자도 88만 원가량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신 집단 소송으로 한전의 누진제가 얼마나 불합리한지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국민이 불만을 표출하면 잠시 달래기만 하려는 정부의 한시적인 조치는 불합리한 제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태도입니다. 국민이 정부의 조삼모사와 같은 제도를 엄청난 혜택으로만 생각한다면 아마 내년 여름에도 비슷한 '전기요금 특단의 조치'라는 기사가 나올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정치미디어 The 아이엠피터 (theimpeter.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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