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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 귀한 포도, 어머니께서 가져가라던 이유

등록|2016.08.13 09:55 수정|2016.08.13 09:55

▲ ⓒ 조상연


▲ ⓒ 조상연


▲ ⓒ 조상연


우리집 포도, 임자는 따로 있지요.

감식초가 좋다고 하기에 하동에서 매실농사와 감 농사를 짓는 분께 감식초를 주문했는데 아버지 건강을 위해서지요. 감식초를 넣은 베낭을 짊어지고 자전거를 타고 20분 거리의 어머니댁으로 달렸지요. 김치빈대떡(강원도 우리 고향말로 김치 부치기)가 먹고 싶어 어머니께 미리 전화를 해놓고 김치빈대떡 값으로 10만 원을 준비했습니다.

어머니는 김치빈대떡을 지지시느라 땀을 흘리시고 아버지는 큰아들 온다고 막걸리를 두 병이나 사다놓으셨네요. 준비해간 10만 원을 5만 원씩 나누어드리니 "에이 이런 걸 뭘...." 하시며 얼른 챙기십니다.

중요한 건, 제가 언젠가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만(http://omn.kr/vy6) 참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우리집 포도를 맛보았다는 겁니다. 어머니댁의 포도는 말만 우리 것이지 정작 저는 맛 보기도 힘든 형편입니다. 어머니가 이웃친구들 불러모으는 유일한 먹거리요, 재미이기 때문입니다.

배불리 먹고 마시고 아버지의 흐뭇한 미소를 뒤로 집을 나서는데 웬일로 어머니가 "포도 몇 송이 따다가 에미나 줘라"고 하시는 겁니다.

"어이구 웬일이시랴?"
"그게 아니구... 얼마전 우리 포도를 제일 맛있게 드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예? 할아버지 얼마 전까지 건강해 뵈시던데?
"몰라, 갑자기 돌아가셨어."

"쯧쯧, 할아버지 돌아가시니까 포도가 제 입으로도 들어오네요. 하하."
"왜? 니덜 포도 많이 가져다 먹지 않았냐?"
"아이구 어머니, 몇 년만에 처음 맛보는구먼요."
"..."


이제는 면목동 어머니의 친구분들도 한 분 한 분 떠나시네요. 제가 우리집 그 맛난 입장포도를 맛보지 못해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집 포도는 어머니와 이웃 친구분들을 이어주는 튼튼한 밧줄이자 정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친구분들 중에 제일 연세가 많으신 분이 돌아가시고 그 다음 연세 많으신 분이 어머니지요. 이 점이 아마 어머니를 더 쓸쓸하게 만드시는 것 같습니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자전거에 올라타는 제 귓가에 어머니의 속 마음이 비춰집니다.

오늘따라 포도가 별나게 달착지근합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저희 아들 삼형제를 보며 어머니를 늘상 부러워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다음은 내 차례야 이놈아, 그러니 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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