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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민주주의에 기댄 이화여대의 '느린 민주주의'

[주장] 농성에서 운동권 배제하는 왜곡된 직접 민주주의, 심도 깊은 토론 필요해

등록|2016.08.17 18:30 수정|2016.08.29 18:17
[기사 수정: 29일 오후 6시 13분]

* 이 기사는 지난 주장 기사 "운동권의 '고체 연대', 이대생의 '액체 연대'"에 대한 반론입니다.

▲ 최경희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본관건물 앞에서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추진 철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화여대는 3일 오전 9시에 개최된 긴급 교무회의를 통해 재학생과 졸업생의 강한 반발을 불러온 미래라이프대학을 설립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 최윤석


승리 이후에도 지속되는 농성

지난 8월 10일 이화여대 안에 3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재학생, 졸업생 불문하고 '해방이화, 총장퇴진'을 외치며 캠퍼스를 행진했다. 보수언론과 학교에서는 3000명가량의 학생이 참여했다며 학생들의 수를 축소하려 하였으나, 많은 이화여대 재학생, 졸업생들의 뜨거운 함성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이화여대 미래라이프 대학 폐지'로 시작된 본교 본관 농성은 많은 학생들의 농성참여로 사업 폐지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학교에 1600가량의 경찰을 투입한 총장에게 책임을 물으며 총장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졸업생은 졸업장반납시위, 재학생들은 손자보 작성 등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 힘을 모아 농성투쟁을 이어가고자 했다. 또한 학생들의 자발성과 적극성은 본관 안과 밖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농성을 이어가기 위한 팀들을 스스로 조직하고 이 팀을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누구하나 할 것 없이 밥을 거르고, 잠을 줄여가며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에 3주가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본관에는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농성에 참여하고 있다.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대학 폐지', '총장퇴진' 요구는 요근래 학생사회에서 얻어낸 이례적인 승리이다. 또한 방학 중 이렇게 오랜 기간 농성을 유지하는 것도 특수한 경우이다. 그렇기에 이화여대를 향한 외부의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느린 민주주의? 마냥 긍정할 순 없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이화여대 투쟁 승리의 주된 요인이 '느린 민주주의'와 '순수성'이라는 점, 이는 외부세력 제외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와 같은 방식을 신성시하는 주장들이 많다.

"운동권의 '고체 연대', 이대생의 '액체 연대'"라는 기사에서는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집단지성을 제대로 발휘하여 고도의 정치적 선택과 판단을 내렸고, 창조력과 상상력으로 싸움 상대를 당혹시키는 새로운 전술을 들고 나왔다"라며 "이 새로운 방식이 퍼질 때만이 승리가 계속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위 기사의 주된 주장은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 정치운동"을 하기 위해서 외부세력을 제외하는 것이 탁월했으며, 외부세력 논란의 중점에 있는 '운동권' 배제는 '순수한' 이화인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대 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습들을 살펴보면, "운동권의…"에서와 같이 '느린 민주주의'라고 찬사를 보내며 마냥 긍정할 수만은 없다. 우선, 현재 이대 안에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를 이루기 위해서 특정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이들이 추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는 사상의 자유,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것인데, 이를 과연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대 안 '직접 민주주의'의 한계

뿔난 이화인들의 행진대학 본관을 점거중인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이 지난 10일 오후 이화여대 정문 앞 광장에 모여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행진을 벌이고 있다. ⓒ 남소연


본관 안에서 진행되는 전체 토론인 '만민공동회'에서는 모든 사람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직접 민주주의적인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본관 중앙에 모여서 거수를 한다는 것, 익명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다는 점 외에는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없다.

오히려 이대에서의 '느린 민주주의'와 '만민공동회'가 의미하는 바는 '본관의 주도자는 익명의 이화인이기 때문에 어떠한 대표성도 인정할 수 없으며, 어떠한 사항에도 개인을 드러내거나, 개인이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기조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발언은 배제되거나, 야유를 받게 된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선출된 학생회 대표들도 익명의 이화인 개인이 아닌 '대표성'을 띤다는 이유로 발언권이 배제되거나 야유를 받았다.

본관의 인원을 충원하기 위한 학생회 사업 또한 대표성을 드러낸다는 이유로 아래로부터의 반대에 의하여 취소되기도 하였다. 이화인의 전체의 의견을 듣기 위한 직접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그 절차와 내용적 측면에서 오류가 많다. 오히려 본관 안의 익명성을 지키기 위한 직접민주주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배제된 소수의 '운동권'

이러한 왜곡된 직접민주주의에서 크게 배제된 존재는 '운동권'이다. 본관 농성에서 운동권이 배제된 이유는 투쟁 속에서 '운동권'의 특색을 드러냈기 때문이 아니다. '운동권은 자신의 단체를 드러내면서 본관 안 하나의 이화인이라는 익명성을 거부하고 주도자가 되려고 할테니 이 투쟁에는 빠져라'라는 여론은, 단체를 밝힌 적도 없는 정치단체 소속 활동가를 본관에서 추방했다.

또한 추방되기 전 본관 안에서의 운동권은 대중에게 '물렁하다'며 '훈계질'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장에서의 대중의 급진적인 발언에 근거를 대며 힘을 실어주었다. 모든 의사결정은 몇몇 운동권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았으며, '만민공동회' 안에서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따랐다. 그럼에도 이화여대 안의 대중들은 이화여대 투쟁에 대한 한 정치단체의 입장을 운동권이 낸 입장이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타령'이라며 비하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위 기사는 이대 투쟁에서의 운동권 배제를 승리를 위한 현실적 전술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이대의 투쟁 방식을 "액체연대"라 칭하며 수평적인 관계와 활발하고 민주적인 토론이라고 찬양하고 있다. 이는 대표성 부정과 운동권 배제를 민주적이고 수평적 관계에서 나온 전술이라고 보는 자가당착적인 주장이다.

'현실적 전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운동권 배제현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중받아 마땅한 평등과 자유가 침해된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침해가 직접민주주의적인 형식을 통하여 나타났다는 것을 부각하면서, 그렇기에 민주적이라는 주장은 그리스의 도편추방제가 바람직한 민주주의라고 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 

섣부른 찬사보다는 심도있는 분석과 다각적 토론으로

이처럼 위 기사에서 찬양하고 있는 '느린 민주주의'는 다수의 익명성을 지키기 위하여 특정 소수를 낙인찍고 배제함으로써 유지되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직접결정'과 '다수결'이라는 직접 민주주의의 형식을 물신화 한 채 그 내용에 대해서 눈감는 것은 잘못이다. 따라서 이러한 '느린 민주주의'가 전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과연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거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화여대의 본관 농성이 '총장퇴진' 요구를 건 지 20일을 넘어가고 있다. 이화인들의 투쟁은 단결된 학생들의 힘이 대학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이 투쟁의 승리와 전진이 개인의 자발성과 단결력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투쟁 과정에서의 한계와 문제점들을 이 투쟁이 '승리'하였기 때문에 앞으로의 투쟁에 적용하자는 주장은 경계해야한다. 혐오와 배제가 만연한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집단적 에너지가 넘치는 현장에 적용되었을 때 발생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하며, 이러한 흐름에 섣불리 찬사를 보내기보다는 이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과 다각적인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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