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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지역에서 널 자라게 해 미안해"

'외부세력'의 성주 사드 반대 촛불집회 참가기

등록|2016.08.18 14:14 수정|2016.08.18 16:44

성주 사드 반대 플랜카드성주에 들어서자마자 플랜카드의 향연이 시작된다. 성주군민들이 성주 외의 지역 사드배치는 찬성한다는 인식과 달리 '한반도 배치 반대' 구호가 다수를 차지한다. ⓒ 이계은


"여기 군수님도 우시고, 이장님들도 우시고, 애 가진 젊은 학부모들도 울고…. 여기, 대학살이라도 당한 느낌이에요. ㅠㅠ"

'사드 배치지역 경북 성주에 사는 예비맘이에요 ㅜㅜ'라는 제목으로 아기 엄마 인터넷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여성의 호소글이다. 글쓴이는 사드 배치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자신을 비롯한 성주 군민들의 두려움, 그에 맞선 반대조차 '지역 이기주의'로 몰려 고립되는 것에 대한 울분을 토로했다. '고립된 성주'의 실상은 이어진 글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새누리 텃밭이라는 이유로 야당 지지자들에게 고소하다는 비난받고 있고요. 정작 새누리당은 나 몰라라 해요. 사드를 반대하면 빨갱이라느니, 지역이기주의를 보여준다느니, 보상금을 올리려고 지역민들이 시위한다느니…. 대통령은 불통이고요, 한민구 장관은 직접 사드 전자파 안전하다고 보여준대요. ㅜㅜ 잠깐 오는 사람이랑 계속 사는 사람이랑 같나요?"

결국 사드가 성주에 배치된다면 그것은 '성주만의 사정'일까? 그렇지 않다. '사드를 어느 지역에 배치하느냐'는 문제는 사드를 쓰레기 소각장 정도의 혐오시설 설치 정도의 문제로 호도하기 위한 정부의 프레임 전략이다. 사드 배치는 강대국의 '대리전쟁'을 치른 우리의 아픈 역사를 재연할지도 모를 위력을 지닌 중대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사드가 성주만의 일로 축소된 것은 상당수 많은 사람들이 정부가 전달하는 정보를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는 고장에 사드가 배치돼야만사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인가. 정부를 비롯한 보수진영이 홍보(?)하는 사드에 관한 정보는 다층적인 차원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다.

사드는 안전하다?

정부는 사드 레이더 100m 밖은 안전하며 사드 배치 부대 바깥 주민은 전자파의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반면 미 육군 교범에 따르면 사드 레이더의 강력한 전자파 때문에 전방 3.6km(약 15만 평, 축구장 약 70개)까지 통제구역이 된다. 따라서 미국 괌과 텍사스 기지는 전방 3.6km 이내에 민간인 접근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정부가 발표한 배치 지역의 3.6km 안에는 성주읍내 1만4000명의 거주자가 포함돼 있다. 미국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지정된 공간인데도 말이다.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려는 정부라면 최소한 성주 읍내 1만4000명에 대한 이주대책을 세우든지 전방 3.6km 내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했어야 한다. 물론 땅 좁고 인구밀도 높은 우리나라에 그만한 지역이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사드는 북한 미사일 방어를 위한 것?

그래서 전방 3.6km 내에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는 조처를 취하면 사드 배치는 문제가 없는 걸까? 설령 그렇더라도 사드는 배치돼선 안 된다. 사드는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협하고 평화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사드는 한 마디로 우리 것, 한국 군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것이며, 미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이다. 사드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를 위한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다. 미국은 이미 이란을 핑계로 러시아를 겨냥한 유럽 MD를, 북한을 핑계로 중국을 겨냥한 동북아 MD를 구축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라는 말은 언뜻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소극적인 무력 시스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격'의 의미까지 포함한다.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를 핵으로 공격한 후에 중국이나 러시아의 보복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며 '보복당할 걱정 없이 핵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미사일 방어체계를 갖춤으로써 적국의 핵능력을 무력화하는 전략'이다. 한반도를 주무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시스템인 셈이다.

고립된 성주, 지금 그곳은...

사드 배치 반대 성주 촛불집회매일 열리는 촛불집회 참여자 대다수는 여성 노인들이다. 초기에 활발히 참여하던 청소년들은 일베 신상털이의 피해로 참여가 저조해졌으며, '마스크' 혹은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여한다. ⓒ 이계은


2016년 7월 13일, 사전 예고도 없이 사드 배치 지역으로 확정된 성주에서는 그날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촛불집회가 열렸다. 성주 군민들의 삶은 7월 13일을 전후로 180도 달라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졌다. '새누리 텃밭'이던 성주 군민들의 절반 이상이 새누리당 탈당계를 제출했으며, 매일 열리는 촛불집회 장소를 '성주군청 앞'이 아닌 '평화나비 광장'으로 명명했다.

새누리당 탈당 신청서 접수처성주 사드 반대 대책위 한켠에는 '새누리당 탈당 신청 접수처'가 자리해 있었다. '믿었던 새누리당에 대한 배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이계은


궁금했다. 성주의 심정은 어떨까? '지역 이기주의'부터 '새누리 텃밭'까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구분 없이 욕을 먹으면서도 난생처음 머리에 띠를 두르고 어색한 팔뚝질을 하고 있을 성주군민들은 어떤 마음일까. 31일째 성주 사드배치 반대 촛불집회가 열리던 지난 8월 12일, 뒤늦게 성주를 찾아가 봤다.

'여기가 성주구나!' 성주에 대한 첫 인상은 끝없이 펼쳐지는 플래카드의 향연이었다. 각종 동문회와 향우회, 모텔과 중국집 주인까지 자신의 단체 이름과 상호명을 플래카드에 적어놨다. 이름은 다양했지만, 목소리는 하나였다. '사드배치 반대'. 생경한 풍경이었다.

성주에서 새롭게 발견한 분노는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분노'였다. 믿었던 세상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의 한 가운데엔 성주가 경상북도에서 인구가 적고(4만5000명), 주민 60% 이상이 참외농사를 지으며, 고령인구 비율이 높은, 한 마디로 가진 것 없고 약해서 사드가 배치됐다는 '버려진 자들의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사드 반대 글한 게시판에는 초등학생들의 사드 배치에 대한 의견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인구 적다고 사드 배치해도 되나?",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안중요하고 딴 나라만 중요한가? 사퇴해라" 등 적나라하고 본질을 꿰뚫는 말들이다. ⓒ 이계은


마음을 아리게 했던 초등학생들의 글을 봤다. 어린이들의 분노는 성인들의 그것보다 한층 더 적나라하고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딸 : "엄마 사드가 뭐야? 그거 때문에 우리 다 죽는다고 그래."
엄마 : "사드 있는 지역에 너 자라게 해서 미안해..."
대한민국 : "아니야~ 미국 말만 듣는 대표자가 있는 나라라서 미안해..."

성주 읍내에 자리한 초등학교 앞에는 다른 곳보다 월등히 높은 밀도로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사드 배치가 확정되고 군민들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것은 힘 없는 사람들의 고장에서 태어나게 한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었으리라. 하지만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우리가 힘이 없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부당한 권력자의 횡포'와 '사드는 한반도 그 어디에도 배치돼선 안 된다'는 진실을.

폭염이 한창이던 8월 12일, 성주의 촛불집회는 해가 진 저녁 8시에 열렸다. 고령인구가 많은 도시임을 보여주듯 참여 인원의 80%가 노인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여성 노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상대적으로 남성 노인들은 정부에 대한 미련을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을 터다. 나처럼 타 지역에서 참여한 '외부세력'은 극소수였다. 성주가 고립돼 있음을 실감했다.

성주의 '투쟁 대오'는 생경하고 어설프지만 단단했다. 촛불집회는 민중의례 대신 국민의례로 시작됐다. 살면서 '투쟁'이라는 말을 입 밖에 처음 꺼내봤을 사람들, 시위 31일째였지만 사회자는 "투쟁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과격한 단어가 아니"라면서 여전히 투쟁 구호가 낯설은 시위자들에게 구호를 연습시켰다.

군청 공무원들은 정문으로 퇴근한 직후 시위 대열에 합류해 "시위대에는 꼭 촛불을 들고 들어가"길 안내했다. 내용은 격렬한 분노와 투쟁이었지만 형식은 관에서 열리는 관변행사였다. 군청 건물에 "친환경 성주에 사드배치 절대 안 돼" 플래카드가 시위대로 하여금 정당성을 부여했다.

애처로운 풍경이었다. 제대로 된 상황이라면 지금쯤 성주로 가는 희망버스가 함께하고, 연일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한 촛불집회가 열렸어야 했다. 사드 반대 집회를 청와대에서 200km 이상 떨어진 성주에서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은 분명 문제가 있다.

대통령의 "외부세력" 발언의 영향력은 사드배치를 외롭게 막아내는 성주 군민들에게도 전해진 듯하다. 투쟁지도부는 8월 15일 광복절에 있을 1000명 삭발시위의 참가자를 군민으로 한정 짓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말말말] 눈물의 삭발식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했지만...").

성주의 투쟁은 이제 성주군을 넘어서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삭발 신청자를 성주군민으로 제한한 이유에 대해 관계자들은 "성주군민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 혹은 "이미 군민 900여 명 신청자 너무 많아서"였다. 하지만, 정부의 프레임에 갇힌 것은 자명해 보였다.

한반도 사드배치 철회"성주군민은 한반도 사드배치 철회를 요구합니다" 전 국민이 함께 요구해야 할 때다. ⓒ 이계은


고립된 성주의 투쟁, 전 국민의 투쟁으로 이어져야

사드를 성주로 고립시키는 전략은 최근까지 효과를 본 듯하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이들의 사드의 본질을 알아가고, 성주의 투쟁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인근 지역 상주와 대구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대신 싸워주는' 성주 군민들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마음에서 그치지 말고 응원하고 더 나아가 함께해야 한다. 한반도, 더 나아가 아시아의 평화를 깨는 사드배치는 성주군민만의 시위로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드 반대 투쟁을 성주 군민들만의 싸움으로 내버려둘 수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기사 내용 중 사드에 대한 정보는 한국 천주교 남자수도회 및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전문위원회에서 발간한 <사드(THAAD) 이것만은 알자!>에서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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