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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세리머니' 마라토너 '망명 돕자'... 모금 운동

릴레사 "처형당할 것"... 에티오피아 정부 "걱정말고 돌아오라"

등록|2016.08.23 10:58 수정|2016.08.23 10:58

▲ 리우 올림픽 마라톤 은메달리스트 페이샤 릴레사의 에티오피아 반정부 세리머니를 전하는 소셜미디어 갈무리. ⓒ 트위터


리우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반정부 세리머니를 펼친 에티오피아 마라토너의 용기에 격려와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릴레사는 21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남자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결승선을 통과하며 두 팔을 엇갈려 'X'를 그렸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 진압을 비판하는 시위였다.

릴레사는 "올림픽 무대가 에티오피아의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릴 기회라고 생각했다"라며 "반정부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권리와 평화, 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상식과 기자회견에서도 똑같은 세리머니를 펼쳤다. 다만 올림픽에서 모든 정치·종교·상업적 선전을 엄격히 금지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에 따라 메달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

메달보다 '목숨' 걱정... 릴레사는 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육상 200m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는 시상식에서 검정 장갑을 낀 손을 들어 올리며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세리머니를 펼쳤다.

두 선수는 메달을 박탈당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선수촌에서 추방당했다. 또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한국 축구대표팀의 박종우가 동메달을 따낸 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적힌 종이를 관중에게서 받아 그라운드를 돌다가 동메달을 박탈당할 뻔도 했다.

그러나 릴레사는 메달보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는 "에티오피아에 돌아가면 사형당하거나 감독에 갇힐 것"이라며 "이미 나의 친척들도 감독에 있다"라고 밝혔다. 에티오피아 국영 방송은 릴레사의 세리머니를 삭제하고 은메달 획득 사실을 보도했다.

▲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육상 200m 시상식에서 마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의 인종 차별 항의 장면을 소개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AP, CNN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정부는 최대 부족인 오로모족이 사는 지역들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편입하기로 결정하고 강제 이주를 진행했다. 이에 오로모족이 반발하자 폭력 진압에 나섰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 진압으로 오로모족 400여 명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오로모족 사람들은 두 팔로 'X'를 그리며 폭력 진압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며, 오모로족 출신인 릴레사도 동참한 것이다.

릴레사는 기자회견에서 "에티오피아 정부는 오로모족의 땅과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라며 "나는 오로모족으로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며, 평화를 원한다"라고 강조했다.

에티오피아 "걱정말고 돌아오라"... 릴레사는 망명 고려

릴레사의 세리머니가 국제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자 에티오피아 정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에티오피아의 게타츄 레다 통신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릴레사는 안전을 걱정하지 않고 돌아와도 된다"라며 "에티오피아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릴레사와 그의 가족에게 어떠한 일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일부 외신이나 인권단체가 밝힌 시위 진압 희생자 규모에 대해서도 과장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정부의 공언에도 릴레사는 망명을 고려하고 있으며, 미국이나 케냐로 갈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또한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릴레사의 망명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크라우드 펀딩)도 벌어지고 있다.

모금에 참여한 한 누리꾼은 "릴레사의 용기를 지지한다"라며 "그와 가족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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