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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남편 폭력에도, 헤어지지 못하는 이유

가정폭력 당한 결혼이주여성이 도움을 청할 곳은 어디에...

등록|2016.08.25 11:45 수정|2016.08.25 11:45

▲ 2010년, 한국으로 시집온 지 8일 만에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신부 고 탓티황옥 씨 사건과 관련해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고 탓티황옥 추모 기자회견'에서 조아니따 필리핀 이주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롯타(가명·29)는 캄보디아에서 왔다.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낳은 네 살 된 아들이 하나 있다. 결혼한 직후부터 남편은 롯타를 폭행했다. 얼마 전, 남편은 직장을 잃었다. 롯타는 남편을 대신해 공장에서 힘든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런데도 남편은 계속 술을 마셨고, 롯타를 폭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남편은 롯타의 친구 앞에서도 롯타를 때렸다. 하지만 롯타는 친구에게 "제발 신고하지 말고 모른 척 해 달라"고 했다. 아이와 가정을 지키려면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이주여성이 당하는 폭력은 심각하다. 한국엔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식구라고 해봐야 시댁식구 뿐이다. 그러니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그렇다고 먼 나라에 있는 식구들에게 '남편에게 맞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힘들게 살고 있는 식구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걱정을 끼칠 순 없는 일이니 말이다.

나는 한국에 들어온 후, 결혼이주여성을 때리는 남편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간간이 들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런 남편을 만나지 않아 참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동시에 '만약에 남편이 나를 자꾸 때린다면, 혼자인 나는 어떻게 할까,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상상만 해도 정말 두려웠다.

많은 이가 잘 살기 위해 한국에 온다. 하지만 '잘 사는 것'이 참 어렵다. 롯타 말고도 남편한테 늘 폭행을 당하던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심지어 한국에 잠시 머문 친정엄마 앞에서도 남편에게 맞았다고 했다. 친정엄마는 딸을 위해서 사위에게 그저 비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친구는 친정엄마를 본국으로 보냈다. 그 후에도 남편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친구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 지인의 집에서 며칠 지냈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경찰서에 찾아갔고, 경찰은 남편에게 연락했다. 한참 후 남편의 형과 시어머니가 경찰서에 와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녀는 아이를 찾으려고 그들을 따라 갔지만, 시어머니는 그녀의 짐을 밖으로 던지며 집에서 내쫓았다. 그녀는 지금 혼자다.

그녀는 한국 국적을 받지 못한 채 외국인처럼 살고 있다. 결혼이민(F-6)비자는 2년마다 체류기간을 연장해야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있다. 만일 유효기간이 지나면 벌금도 내야 한다.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선 보건소에서 결핵 검사를 받고 확인증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제출해야 한다. 여권도 자국의 대사관에서 2년마다 그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이혼한 결혼이주여성이 국적을 갖기 위해선, 이혼의 책임이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다는 내용이 적힌 이혼조정결정문이나 이혼판결문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절차를 알고 있는 결혼이주여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한국 법은 결혼이주여성에게 결코 따뜻하지 않다. 결국 국적도, 한국에서 온전한 삶도, 아이의 양육권도, 모두 물 건너간 꿈이 돼버리는 것이다.

롯타의 두려움은 바로 이것이다.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어 한국에 왔지만, 생각지도 못한 끔찍한 폭력을 겪고 있으니 앞날이 막막할 뿐이다. 아이를 빼앗긴 채 가족도 없이, 이 땅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울지 상상할 수 없다.

결혼이주여성에게도 인권이 있다. 가정폭력을 겪은 그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법적으로 그들을 보호해줄 방법은 있을까? 가슴이 너무 아프지만, 어떤 도움을 줘야 할지 알 수 없어 막막하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시사인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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