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 어렵지 않습니다
느리고 욕심없이 사는 삶... 인도네시아에서 서예하는 나는 신선입니다
일로 치자면 세상에 일 아닌 것이 없고, 놀이로 치자면 세상에 놀이 아닌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즐기기가 대세다. 돈과 명예를 걸고 격렬한 경기를 하는 선수가 "맘껏 즐기겠다"고 해도 그 말이 엉뚱하게 들리지 않고, 중대한 갈림길에 선 사람에게 "순간을 편하게 즐기라"고 하는 말도 괜찮은 격려가 된다. 모두가 '삶이란 그저 시간을 즐겁게 쓰는 놀이여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어떤 어려운 일도 '즐기자'는 캠페인이 전개되는 시대에 우리가 사는 것이다.
'신선놀음'이라는 단어가 있다. 분명 이 단어는 '신선이 하는 놀이'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단어는 상상 속의 신선을 향해서는 잘 쓰지 않는다. 권력이 높은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서도 잘 쓰지 않고, 천문학적 재산을 소유한 재벌들의 놀이를 들먹여 신선놀음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럼 대체 무엇을 신선놀음이라고 하는가? 답은 참 가깝고 하찮은 곳에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일상에 답이 있는 것이다. '걱정 근심 다 내려놓고 소소한 일에 심취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것을 일컬어 신선놀음'이라고 하니 말이다.
커피 한 잔, 음식 한 그릇의 여유
나는 지금 신선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더불어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60km 지점 보고르(Bogor) 지역의 한 산마을이다. 연평균 기온이 22도에서 27도인 이 산마을은 추위도 폭염도 없는 곳이다. 햇빛과 바람이 넉넉하고 강우량도 풍부한 그야말로 낙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자연 풍광에 깃들어 살아서 그럴까, 내가 보고 느끼기엔 이 마을에 사람들 또한 사는 모습이 딱 신선 형세다. 도대체 욕심이 없고 급한 것이 없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기질이 대체로 느리고 욕심이 없어서 행복도가 높다고 하지만, 이곳에 살다 보니 그보다 "산천과 사람은 닮는다"는 우리의 옛말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들은 참 게으르다. 만사에 별 의욕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웃으로서 내가 보는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와 다른 사람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툼이 거의 없다. 4년여를 산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다투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싸우는 모습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나다. 나 역시 이 산마을에 살게 된 이후 생각이 많이 변했다. 우선 기온과 공기, 풍광이 좋으니 늘 기분이 좋다. 연중무휴로 자라는 텃밭의 먹거리와 과일은 '아 여기서 이렇게 살면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를 썩 느긋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피고 지는 꽃들은 나를 늘 웃게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나는 커피 한 잔 끓여 마시는 것도 신선놀이로 생각하고 한다. 등산길에 만난 산마을 촌부가 모은 커피 루왁을 사와 껍질을 벗겨 몇 번이고 씻고 또 씻은 다음, 볶는 것도 내리는 것도 이리저리 실험하는데 이 모두가 흥미 만점이다. 기호로 잠시 마시는 것치고는 시간 소비가 과하다면 과하다. 하지만 그도 즐기다 보니 재미가 쏠쏠하다.
또 있다. '백주부'가 애칭인, 요리사이자 인기 방송인 흉내를 내며 뭔가 먹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 또한 창작이다 싶으니 호기롭기까지 하다. 즐기기도 파급이 되는 것이 분명하리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이 줄어들면서 '일상을 즐기자' 주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사 즐기면 다 신선놀음이고, 따져보면 신선놀음의 대상 또한 지천인 것 같다. 일로 치면 일이던 것이 놀이로 치니 모두가 놀이이니 말이다.
내 활동은 서예창작과 교습이다. 나이 육십을 넘긴 지금까지 변함없이 해온 일이다. 하긴 더러 지인들은 내게 늘 신선놀이를 한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 내가 좀 분주할 때가 있다. 전시회를 준비할 때다. 문하생들의 모임인 <自筆墨緣>(자필묵연) 정기전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누구에게 특별히 도움을 요청할 만한 일도 아닌 어정쩡한 일들이 수월찮게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지금 활동하는 곳이 인도네시아이기 때문에 손수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점도 있다.
아무튼, 과정을 알아도 어수선하고 모르면 더욱 복잡하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이 전시에 관한 일들이다. 그래서 자필묵연 단체 대화방에는 내가 또 전시 준비하느라 입술이 부르트고 몸살을 앓을까 봐 염려하는 회원들의 글이 뜨고, 도울 일이 없는가를 묻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일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나는 목하 즐기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 결과가 모두 기뻐할 그림임을 알고 하는 일이기에, 전시 준비가 분주해도 제법 즐길만한 내 일인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 모두 신선이다
신선놀음이라 생각하고 일을 하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신선놀음에도 나름의 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구잡이 즐거움만 좇다 보면 그것은 신선놀음이 아니고 애꿎은 시간 허비일성싶지 않은가. 신선놀음에도 분명한 자기 방식이 있어야 하리라. 좀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이는 곧 자기에게 알맞게 즐기는 것이라 하겠다. 분수에 맞지 않으면 어떤 놀이도 신선놀음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전시를 앞둔 자필묵연 회원들에게 좋은 작품을 창작하자고 성화를 댄들 뭔 대수랴. 붓 놀이 먹 놀이 멋지게 즐기자고 닦달을 한들 어찌 도가 지나치다 하랴. 전시 날짜는 정해져 있으니 집중하여 작품 마무리하고, 필요한 자료들 빨리 보내라고 들볶아도 별 미안한 마음이 없다. 기왕 하는 신선놀음이니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몰두해야 하지 않겠는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세상에는 신선이 없다. 신선을 공인해주는 곳도 없다. 신선놀음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신선놀음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신선이다. 우리 모두 신선이 되자. 자기가 하는 일을 모두 신선놀이로 만들자. 바로 오늘! 우리 모두 신선의 세상에서 살자.
'신선놀음'이라는 단어가 있다. 분명 이 단어는 '신선이 하는 놀이'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단어는 상상 속의 신선을 향해서는 잘 쓰지 않는다. 권력이 높은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서도 잘 쓰지 않고, 천문학적 재산을 소유한 재벌들의 놀이를 들먹여 신선놀음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럼 대체 무엇을 신선놀음이라고 하는가? 답은 참 가깝고 하찮은 곳에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일상에 답이 있는 것이다. '걱정 근심 다 내려놓고 소소한 일에 심취해 세월 가는 줄 모르고 즐기는 것을 일컬어 신선놀음'이라고 하니 말이다.
커피 한 잔, 음식 한 그릇의 여유
▲ 현지인 돕기 행사2016년 2월 25일 사단법인 한국서협 윤점용 이사장 인도네시아 방문 기념 장학금 전달식. ⓒ 손인식
나는 지금 신선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더불어 살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남쪽으로 60km 지점 보고르(Bogor) 지역의 한 산마을이다. 연평균 기온이 22도에서 27도인 이 산마을은 추위도 폭염도 없는 곳이다. 햇빛과 바람이 넉넉하고 강우량도 풍부한 그야말로 낙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자연 풍광에 깃들어 살아서 그럴까, 내가 보고 느끼기엔 이 마을에 사람들 또한 사는 모습이 딱 신선 형세다. 도대체 욕심이 없고 급한 것이 없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기질이 대체로 느리고 욕심이 없어서 행복도가 높다고 하지만, 이곳에 살다 보니 그보다 "산천과 사람은 닮는다"는 우리의 옛말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들은 참 게으르다. 만사에 별 의욕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웃으로서 내가 보는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와 다른 사람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툼이 거의 없다. 4년여를 산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다투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싸우는 모습은 더더욱 보지 못했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사는 나다. 나 역시 이 산마을에 살게 된 이후 생각이 많이 변했다. 우선 기온과 공기, 풍광이 좋으니 늘 기분이 좋다. 연중무휴로 자라는 텃밭의 먹거리와 과일은 '아 여기서 이렇게 살면 굶어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나를 썩 느긋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여기저기서 쉬지 않고 피고 지는 꽃들은 나를 늘 웃게 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요즘 나는 커피 한 잔 끓여 마시는 것도 신선놀이로 생각하고 한다. 등산길에 만난 산마을 촌부가 모은 커피 루왁을 사와 껍질을 벗겨 몇 번이고 씻고 또 씻은 다음, 볶는 것도 내리는 것도 이리저리 실험하는데 이 모두가 흥미 만점이다. 기호로 잠시 마시는 것치고는 시간 소비가 과하다면 과하다. 하지만 그도 즐기다 보니 재미가 쏠쏠하다.
또 있다. '백주부'가 애칭인, 요리사이자 인기 방송인 흉내를 내며 뭔가 먹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 또한 창작이다 싶으니 호기롭기까지 하다. 즐기기도 파급이 되는 것이 분명하리라. 몸을 움직이는 것이 귀찮다는 생각이 줄어들면서 '일상을 즐기자' 주의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세상사 즐기면 다 신선놀음이고, 따져보면 신선놀음의 대상 또한 지천인 것 같다. 일로 치면 일이던 것이 놀이로 치니 모두가 놀이이니 말이다.
▲ 산정무한 전<적도의 묵향 서울 나들이>와 함께 열린 인재 손인식 주갑전 山情無限. 인사동 한국미술관 ⓒ 손인식
내 활동은 서예창작과 교습이다. 나이 육십을 넘긴 지금까지 변함없이 해온 일이다. 하긴 더러 지인들은 내게 늘 신선놀이를 한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 내가 좀 분주할 때가 있다. 전시회를 준비할 때다. 문하생들의 모임인 <自筆墨緣>(자필묵연) 정기전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누구에게 특별히 도움을 요청할 만한 일도 아닌 어정쩡한 일들이 수월찮게 많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지금 활동하는 곳이 인도네시아이기 때문에 손수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점도 있다.
아무튼, 과정을 알아도 어수선하고 모르면 더욱 복잡하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이 전시에 관한 일들이다. 그래서 자필묵연 단체 대화방에는 내가 또 전시 준비하느라 입술이 부르트고 몸살을 앓을까 봐 염려하는 회원들의 글이 뜨고, 도울 일이 없는가를 묻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일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나는 목하 즐기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 결과가 모두 기뻐할 그림임을 알고 하는 일이기에, 전시 준비가 분주해도 제법 즐길만한 내 일인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 모두 신선이다
▲ 새로운 시작 인도네시아 한인동포 서예동호회 자필묵연 제11회 정기전 제목 ⓒ 손인식
신선놀음이라 생각하고 일을 하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신선놀음에도 나름의 도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구잡이 즐거움만 좇다 보면 그것은 신선놀음이 아니고 애꿎은 시간 허비일성싶지 않은가. 신선놀음에도 분명한 자기 방식이 있어야 하리라. 좀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이는 곧 자기에게 알맞게 즐기는 것이라 하겠다. 분수에 맞지 않으면 어떤 놀이도 신선놀음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므로 전시를 앞둔 자필묵연 회원들에게 좋은 작품을 창작하자고 성화를 댄들 뭔 대수랴. 붓 놀이 먹 놀이 멋지게 즐기자고 닦달을 한들 어찌 도가 지나치다 하랴. 전시 날짜는 정해져 있으니 집중하여 작품 마무리하고, 필요한 자료들 빨리 보내라고 들볶아도 별 미안한 마음이 없다. 기왕 하는 신선놀음이니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몰두해야 하지 않겠는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세상에는 신선이 없다. 신선을 공인해주는 곳도 없다. 신선놀음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신선놀음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신선이다. 우리 모두 신선이 되자. 자기가 하는 일을 모두 신선놀이로 만들자. 바로 오늘! 우리 모두 신선의 세상에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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