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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더불어 10년, 그 경험을 되짚는다

숙지원의 꽃과 나무들, 그 안의 나

등록|2016.08.26 15:04 수정|2016.08.26 15:04
은퇴 후 고향으로 돌아가 선영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보내고, 할아버지 기일이면 후손들이 모이는 기회를 만들자는 소박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아버지들 대에서 어긋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없었다.

결국 광주 인근에 여생을 보낼 거주지를 찾기 시작했고, 수년간 헤맨 끝에 2007년 2월 '숙지원'이라는 작은 정원과 텃밭을 일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였다. 그런 과정의 이야기는 이미 많은 글을 썼고 책도 출판한 바 있기에 다시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2012년 집을 신축하고 그해 8월 17일 이사를 하였으니 완전한 귀촌을 이룬지도 벌써 만 4년이 지났다. 토지를 텃밭 농사를 하며 꽃과 나무를 가꾸기 시작한 지는 10년 째다. 아직 결산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귀거래사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남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2007년 봄 숙지원의 모습 나무조차 없는 그야말로 황량한 벌판이었다. ⓒ 홍광석


일단 전원에서 자급자족하는 텃밭을 일구고 철 따라 피는 꽃을 보면서 여생을 보내자고 했던 아내와 나의 계획은 농사 체험 중 많은 글감을 찾고 또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는 점만으로도 성공이었다고 본다. 

물론 우리의 성공은 우리만의 자축일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깨끗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즐거움, 사계절 내 백 종류에 가까운 꽃들이 쉼 없이 피고 지는 정원에서 살면서 맛보았던 성취감은 컸기에 우리만의 자축은 결코 틀리지는 않다고 본다.

10년이 지난 현재의 숙지원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우선 숙지원의 모습을 보면, 회초리 같던 나무들은 자라서 하늘을 가리고, 묘목을 심어 흔적이 미미했던 철쭉들은 무성한 숲이 되어 봄이면 화려한 꽃들이 볼만하다.

아내가 호미를 놓지 않고 풀을 매주었던 잔디밭은 이제 부러움의 대상이다. 

거기에 곳곳에 일구어진 아내의 꽃밭의 꽃들은 철마다 다른 이름으로 피어 정원을 밝힌다.

그리고 텃밭에는 갖가지 작물이 자란다. 마늘 고추 참깨 토란 고구마 야콘 옥수수 그리고 각종 채소들... 겨울에도 신선한 채소를 공급하는 40여 평의 작은 비닐하우스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그림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집 한 채!

찾아온 친구들은 넓은 잔디밭과 감나무에 얼린 감이나 요즘 철을 만난 멜란포디움을 비롯한 꽃들, 그리고 그럴싸한 집만 보면서 "좋다!"는 말을 남긴다. 그들은 새벽에 일어나 풀을 매고, 철쭉의 웃자란 가지를 쳐주는 일을 하는 나의 모습을 모를 것이다. 나무숲을 끼어 다니며 까칠한 환삼덩쿨을 쳐낸다는 사실도 모를 것이다.  

요즘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직접 안내하지 않는다. 

빙 둘러보는 정도로 어떤 점에서 무엇이 좋은지 괌심 없는 지인들에게 내가 손수 심은 나무의 의미, 감추어진 구시나 물확의 용도를 설명하는 것이 의미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2016년 봄 숙지원의 모습 이제 기본 적인 공간 분할이 끝나면서 안정된 모습이다. ⓒ 홍광석


아직 지인들은 여전히 먹물냄새가 가시지 않은 사이비 농부라고 놀린다.

내면의 변화를 읽지 못한 놀림임을 알기에 그냥 웃기만 한다. 아마 지인들은 10여 년 전에 비해 나이 든 내 모습을 모를 것이다. 

이제까지 외바퀴 수레에 20kg 짜리 비료 5개를 싣고 균형을 잡으면서 잘 나가던 시절이 갔음을 알고,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짐을 옮기는데 사용할 목적으로 바퀴가 두 개인 수레를 구입하였는데 그런 사실도 보지 못 했을 것이다.

집을 신축할 당시 화목보일러를 설치하고 추위에 대비하여 거실에는 점잖은 벽난로를 두었는데 지난해 화목 보일러를 기름보일러로 교체했다. 큰 변화였지만 관심을 보인 지인들은 아무도 없었다.

화목보일러는 낭만은 있으나 시간 간격으로 화목을 투입하고 연통 청소를 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서 어려운 일을 피하고자 하는 준비 때문이라는 점을 모를 것이다. 단열과 보온이 잘되어 거실의 벽난로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 실내 인테리어 취급당하고 있음에도 그냥 보는 사람들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아무튼 외형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변화는 아무래도 내 의식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로 알았던 놀촌에 살면서 내가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과학자들의 경고, 그리고 '북극의 눈물'처럼 온난화에 의한 기후 변화를 보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금년 여름의 우리나라의 폭염도 결코 우연의 결과는 아니라 기후 변화에 의한 기상 이변이라고 본다.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시키는 주범으로 알려진 화석연료의 채굴과 연료를 사용한 기술 개발의 배후가 자본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한다.

나아가 종자까지도 독점하는 거대 메이저 자본의 횡포와 유전자 조작식품의 폐해 등도 농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에 주목하고 있다. 나는 지금 기후 변화에 안이하게 대응하지 정부, 농업에 대한 고민 없이 대기업만 살리고 안보타령이나 하는 정부를 불안하게 보고 있다.

농업이 천하의 대본이라는 사실을 정치인들이 좀 더 깊이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귀촌 이후 또 다른 나의 변화를 꼽으면 농산물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장에 가면 물건은 쌓여있으니 돈만 있으면 언제든지 걱정 없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농산물의 생산과정에 참여하면서 쌀 한 톨 깨 한 알에 담긴 농민들의 땀과 한숨을 알게 된 것이다.

농산물 가격 정책은 그동안 역대 정부가 산업화과정에서 발생한 저임금 노동자들을 먹여살릴 목적으로 농민을 희생시켜 정책적으로 농산물가격을 낮게 유지해왔음이 사실이다.

그 결과 농민들은 농촌을 떠났고 농촌에는 마을 회관에는 노인들만 남았다.

며칠 전, 마을 쉼터에 누워있는 할머니들에게 참깨 농사가 잘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산을 사먹는다고 했다.

그리고 중국산 참깨 한 되에 1만 2천 원, 기름 짜는 가격이 4천 원이라고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다. "농사지어봤자 헛것", "그나마 걷기도 불편한데 무슨 농사냐?"며 목침을 끌어당긴다.

이것이 농촌 마을의 한 장면이다.

앞으로 우리 농산물은 사라지고 더욱 귀해질 것이다.

"기후가 아열대로 변하면 그에 맞는 농작물을 찾으면 된다"고? "지금까지도 농약과 방부제에 절여진 농작물을 수입해서 먹고도 탈이 없었으니 괜찮다"고?

고작 작은 텃밭 농사 체험, 그리고 많은 농민들과 이야기, 농민교육 수강 등을 통해 알게 지식으로는 전문적인 자료를 제시할 능력은 없다. 그러나 나의 우려와 걱정이 체험과 관찰에서 비롯된 사실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2016년 봄의 숙지원정원과 조화로운 전원주택의 모습이다. ⓒ 홍광석


귀촌 10년.

이제 잔디 깎는 기계 다루기는 숙련된 기술자가 되었으며, 예초기의 사용은 마을 울력에도 솜씨를 자랑할 만큼 능숙해졌다.

집의 페인트칠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았다. 집에서는 장에서 1만 원에 구입한 청바지와 6천 원에 구입한 남방을 입는다. 직장에 나갈 일도 없고 경조사 참석도 거의 피하는 터이고, 일하는데 굳이 좋은 옷이  필요치 않기 때문인데 아마 백화점에 가본지는 2년도 넘을 것 같다.

일은 못한 주제에 농기구 욕심은 많아 삽, 괭이, 구와, 전정가위, 낫, 호미 등은 기본이 두 개인데 가게에 가면 여분으로 많이 사서 비닐하우스와 창고에 분산 보관하고 당일 계획한 일에 필요한 농구는 외바퀴수레에 싣고 다닌다.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작은 철사토막도 요긴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작은 나사못 하나, 철사 한 토막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이사 후에 달라진 변화와 소회까지 더하면 다시 한 권의 책으로 엮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젊은 후배들에게는 귀촌을 권장하며 가급적 배우자와 합의하여 계획을 세우고 주말농장이라도 다니며 예행 연습을 하라고 안내한다. 

여생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선택은 가치판단의 문제겠지만, 나는 욕심 없이 살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들에게 텃밭 일은 매우 창조적인 생산 활동이며 비용이 들지 않은 최상의 놀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조용한 산속이나 바닷가 요양원을 찾고자 하는 환자들이나 그 가족들에게는 귀촌을 추천한다. 우리나라에 호텔 수준은 못되더라도 자기 집만한 시설을 갖춘 편안한 요양원은 없다. 가족이 있는 곳이야말로 별 다섯 개의 호텔보다 편안한 요양시설이요 치유공간이 될 것이다. 거기에 병원이 가까운 집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수많은 꽃과 나무를 상대하면서 순수함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고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희망은 커지고 치유의 시간도 빨라질 것이라고 말하는 경험자들의 이야기들도 참고 했으면 싶다. 

10년 후, 숙지원의 나무들은 더 자라겠지만 땅은 그대로 일 것이다. 그것을 보는 사람이 누가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는 동안 작은 죄도 피하고, 욕심 없이 산다면 낙원 혹은 이상향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주변에 있지 않을까? 다만 기후변화와 그로인해 서민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한갓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블로그, 한겨레 필통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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