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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 대신 목욕탕에 데려간 출판사 사장

[책리뷰]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의 <낮의 목욕탕과 술>

등록|2016.09.08 08:29 수정|2016.09.08 08:29
일본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이나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야단스럽지 않아 좋다. 음식은 정갈하고 사람은 단정하다. 정성스레 면을 빚는 요리사와 뜨끈한 우동 한 그릇에 미소 짓는 손님. 딱 알맞은 양의 음식 앞에서 적당한 행복감을 누리는 사람들의 얼굴엔 만족감이 돈다.

▲ 책표지 ⓒ 지식여행

그중 <고독한 미식가>는 생각날 때마다 한 편씩 찾아보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다. 만화책이 원작인 이 드라마엔 주인공이 딱 한 명이다. 이노가시라 고로라는 독신주의자.

고로는 혼자 작은 식당을 찾아다니며 밥을 먹는다. 다 먹고 나서는 매번 "그래, 참 맛있었어"라는 느낌을 갖고 식당을 나선다. 그가 먹는 음식들은 주로 돼지고기 볶음이나 라면, 카레 덮밥이나 우동 등 우리가 일상에서 즐겨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나는 원작자가 궁금했었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려면 어떤 일상을 보내야 하는 걸까. 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리 소소하면서도 맛깔나게 그려낼 수 있을까 싶었다.

이 책 <낮의 목욕탕과 술>은 오랜 시간 품고 있던 이런 궁금증을 풀어준 책이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 원작자 역시, 고로 같은 사람이었다. 혼자서도 잘 먹는... 아니, 혼자서도 잘 마시는.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의 에세이 <낮의 목욕탕과 술>의 테마는 '목욕탕'과 '술'이다. 마사유키의 오랜 취미는 한낮에 목욕탕에 들렀다가 근처 술집에 들러 맥주를 마시는 일. "아직 해가 떨어지지 않았을 때 마시는 술은 달다." 책의 문장은 이렇게나 유혹적이며, "커다란 탕 안에서 몸을 쭉 뻗으면 마음까지 쓰윽 열린다." 이렇게나 노곤하다.

총 10개의 이야기에 열 군데의 목욕탕과 열 군데의 술집이 나온다. 그중 열 번째 목욕탕은 도쿄 진보초에 있는 <우메노탕>. 저자가 30년도 더 전에 갔던 목욕탕이다. 저자는 <우메노탕>을 향하며 본인이 어쩌다 한낮의 목욕탕과 그 뒤의 맥주를 즐기게 되었는지를 사회 초년생 만화가였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통해 들려준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출판사 사장이 원고료 대신 목욕탕에 데려갔던 것. 목욕탕에서 나온 사장은 이어 싸구려 술집으로 저자를 데려가 맥주를 따라준다. 그런데 그 맥주 맛이 끝내줬다는 것. 그날 저자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아, 그렇구나. 특별한 맥주 맛을 즐기게 해주려고 목욕탕으로 데리고 간 거였어.' - 본문 중에서


그날 이후부터 한낮의 목욕과 맥주를 즐기게 됐다는 저자의 오래된 신선놀음은 빠듯한 하루를 반복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박한 일상탈출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하다. 무료하고 지루한 하루가 아닌 '특별한' 하루를 꿈꾸게 되는 어느 날. 목욕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에서 '특별한 맛'을 찾은 저자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저자의 말마따나 '특별함'은 일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까.
덧붙이는 글 [낮의 목욕탕과 술](구스미 마사유키/지식여행/2016년 07월 25일/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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