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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는 죽고 아들은 단식, 늙은이 속 타들어갑니다"

[인터뷰] '사생결단식' 유경근 위원장 어머니 이세자씨 "젊은이들에게 미안"

등록|2016.08.29 20:27 수정|2016.08.29 20:27

▲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 유예은(단원고)양의 할머니 이세자(73)씨가 29일 광화문광장에서 팻말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23일부터 시위를 시작한 이씨는 '사생결단' 단식을 벌이고 있는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 소중한


29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광화문광장. 짙은 주름의 할머니가 사람들이 지나는 횡단보도 복판에서 자기 몸보다 큰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노란 팻말 끝에는 "이 늙은 부모 마음 타들어갑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손녀를 구하러 간 국가는 구경만 하다 버리고 가고, 국회는 특조위 하나 못 지켜서 내 아들은 죽음을 건 단식. 이 늙은 부모마음 타들어갑니다."

팻말을 든 이세자(73) 할머니의 손녀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고 유예은(단원고)양이다. 할머니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사생결단' 단식에 나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같은 시각 유 위원장은 건너편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 13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아들이 (내가) 밖에 다니는 걸 싫어해" 대중 앞에 서는 걸 꺼렸지만, 이 할머니는 아들이 단식을 시작한 이후인 23일부터 매일 광화문광장, 더불어민주당 당사 등에서 팻말을 들고 있다.

이 할머니에게 말을 건네자, 그는 대뜸 "젊은 사람들에게 진짜 미안하다"라고 말했다. "우리 노인네들이 잘못 살아서, 그게 누적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잖나"라고 말한 이 할머니의 목소리가 잠시 잠겼다. 목을 추스른 이 할머니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왜 여기 서 있는 줄 알아요? 나 젊었을 때 노동자들 죽어 나간 일들, 그리고 장준하 사건이고, 한성호 침몰사건이고 듣기만 했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나랑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며 나 하나, 내 새끼만 편하면 되는 줄 알고 살았어요.

이번(2012년 대선)에도 셋째 아들(유 위원장은 첫째 아들)이 '박근혜 후보 찍지 말라'고 그랬는데, 우리 아저씨(남편)랑 투표장 앞에서 '그래도 불쌍하잖아'라며 박근혜 후보 찍었어요. 그래서 얼마나…. 우리 아들한테도 '단식 그만하라' 이런 소리도 못해요. 내가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이런 상황이라 저는 사실 할 말이 없네요."

인터뷰를 하는 동안, 대학생 2명이 손에 물을 든 채 이 할머니에게 말을 걸어왔다.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학생들에게 이 할머니는 또 "젊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 우리가 이런 사회를 물려줘서"라며 고개를 숙였다.

추미애 만난 할머니 "난 죽어도 되지만, 우리 아들은 꼭..."

▲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이 13일째 진행되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대표가 단식 중인 유가족들을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세월호 희생자 고 유예은양의 할머니를 만나 위로 하고 있다. ⓒ 이희훈


이날 이 할머니를 만난 시각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 첫날 광화문광장을 찾기 1시간 전이었다. 아들 유 위원장이 단식을 시작한 이유는 "무기력한 야당"을 탓하기 위해서다(관련기사 : 무기력한 야당의 약속 파기, 예은 아빠 "진상규명 막히면...").

추 의원의 방문 소식을 알리자, 이 할머니는 "정말 야당답게, 야당답게 좀 강하게 나가서 일을 해야지, 왜 그렇게 눈치만 보고 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마 전, 동조단식에 나선 한 더민주 의원이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문제해결이 어렵다'라고 말해서, 제가 버럭 소리를 냈어요. 그럼 세월호에 탄 304명은 법대로 해서 죽였어요? 어디서 법을 따져요. 야당은 여소야대가 된 걸 알긴 아나요? 왜 국민들이 밀어줬는지 알긴 아나요? 그 의원이 '정권교체'를 이야기해서 제가 또 그랬어요. 그렇게 수더분하게, 회색빛으로 정치하면서 어떻게 정권교체 생각을 해요? 지금 봐서는 지지를 얻기는커녕 다 깎이게 생겼어요."

잠시 목소리를 가라앉힌 이 할머니는 추 대표를 향해 "자꾸 여당에 끌려다니지 말고, 그냥 국민의 편에 서서, 국민이 원하는 것을 이뤄 달라"라고 호소했다.

이 할머니와 인터뷰를 마친 뒤, 곧이어 추 대표가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분향소를 찾아 제단에 국화꽃을 올린 추 대표는, 이어 유 위원장을 비롯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벌이고 있는 농성장을 찾아 "단식을 멈춰 달라"라고 요청했다. 추 대표는 "당 원내 차원에 머물던 세월호 대책위를 당대표 지휘 아래로 옮기고, 최고위원 한 분을 정해 지휘하도록 하겠다. 야3당과의 공조도 잘 이뤄 국회 차원의 대책이 서도록 하겠다"라며 이 같이 말했다. 

이에 유 위원장은 "저희의 요구사항에는 세월호 특조위 활동기간을 보장하기 위한 특별법 개정안 통과도 있다. 조금 더 기다릴 수 있다"라며 단식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전했다. 유 위원장은 "추 대표와 더민주를 못 믿어서가 아니다. 오늘 이렇게 의지를 밝혀줬으니 당 차원의 노력을 믿는다"라며 "그 의지를 믿고,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앞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자. 아직 튼튼하다. 걱정 않으셔도 된다"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농성장에서 일어난 추 의원은 동조 단식을 벌이고 있는 시민들을 만난 뒤, 여전히 팻말을 들고 서 있는 이 할머니를 찾아 포옹을 나눴다. 이 할머니는 "나는 죽어도 되니, 우리 아들은 꼭 살려 달라"라며 울먹였다.

▲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이 13일째 진행되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대표가 단식 중인 유가족들을 방문해 세월호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이희훈


앞서 인터뷰에서 이 할머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엄마로써는 아들이 걱정되지만, 아들이 정말 원하는 길이 정의로운 길이잖아요. 엄마에게 '단식 그만해라' 이런 소리할 자격은 없어요. 그저 단식하는 동안 관리 잘해서, 자기가 원하는 게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아들이 하는 일이 한 사람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이 나라 전체 행복을 위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지금은 뒤에서 적극 지원해주고 싶어요.

어떨 땐 이런 생각도 들어요. 만약에 아들이 돈이 부족해 활동을 못한다고 그러면, 내 장기라도 팔아서 뒷돈을 마련해주고 싶다고요. 제 목숨이라도 걸고 싶다고요. 그동안 아들이 하는 일, 내가 많이 못 도와줬거든요. 너무 미안하고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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