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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고시' 있는 이 나라에선, 농촌 탈출 없어요

[서평] 정기석, 송정기의 <농촌마을 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

등록|2016.09.07 10:56 수정|2016.09.07 10:56

<농촌마을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 표지. ⓒ 전북대학교출판문화원

농사의 반은 하늘이 짓는다더니, 폭염과 가뭄의 여파는 치명적이었다. 비 한방울 뿌리지 않는 하늘을 쳐다보며 농부들의 가슴도 타들어갔다. 밭 작물들과 과수 작물들이 타격을 입었다. 야채값 과일값이 올랐다. 반면 쌀은 대풍이란다. 풍년이라지만 쌀값은 곤두박질쳤다. 농사가 잘되어도 못되어도 농심이 멍드는 건 매한가지다.

사방군데 어디를 둘러봐도 길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 우리 농촌의 생사존망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현실은 답답하고 희망은 멀어보인다.'웰빙 라이프'의 열풍을 타고 먹거리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정작 그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촌은 갈수록 쇠락하고 있다. '푸드 포르노'가 '먹방'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현실 어디에서도 농업과 농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농촌에서 산 지 9년째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농촌이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농가소득은 바닥이고 농민들은 올해도 갓 수확한 나락을 도로 위에 쏟아붓는 '아스팔트 농사'에 목숨을 걸고 있다. 갈수록 농부들은 고령화되고 농업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하다. 농사지을 사람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농지도 줄어든다. 농업과 농촌이 사라지고 있다.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은 최근작 <농촌마을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에서 이 같은 농촌의 현실을 '지붕없는 거대한 양로원'(66쪽)이라고 비유했다.

농정에 접근하는 패러다임부터 바꾸자

정기석 소장은 전작인 <농부의 나라>에서 "5% 밖에 안되는 '농민만의 농정'이 아니라 소비자인 95%의 노동자와 도시민, 국민이 협동하고 연대하는 100% 국민농정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고립농정' '한계농정'을 넘어 '국민농업' '공입농업' '지역농업'으로 완전히 새 판을 짜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농부의 나라>가 농업 농촌의 진로에 대한 큰 틀을 제시했다면, <농촌마을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에서는 말 그대로 농업 농촌 재생을 위한 세부과제를 집대성했다.

농촌이 살 길은 먼데 있지 않다. 농업으로 먹고 살 만하고, 농민으로 대우받고, 농촌을 애 키우면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 된다. 저자는 "우선 정책의 기조와 패러다임, 농정을 바라보고 집행하는 동력의 축과 방향을 크게 전환해야 한다"고(7쪽) 지적한다. 지금 농촌의 문제는 법과 정책, 제도와 전략 이전에 근본적인 접근 철학과 패러다임부터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책은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을 크게 세 가지로 틀로 제시한다. '사회적 농민' '사회경제적 농업' '사회생태적 농촌'이다. '사회적 농민'이란 농사짓는 농민이 농사짓지 않는 남과 공동체를 이루어 농촌마을을 협동하고 연대하는 지속가능한 생활공동체로 만들자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농업'은 중소농, 가족농으로 개별화된 농민들을 협동조합, 마을기업과 같은 지속가능한 사업단위로 묶는 대안 경제의 모색이다. '사회생태적 농촌'이란 우후죽순격으로 벌어지고 있는 토건적 마을 만들기의 한계를 넘어 마을이 품고 있는 자원을 활용하고 마을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다.

생활소득이 보장되는 농업을 통한 '경제공동체마을', 일상생활이 행복한 농민을 통한 '생활공동체마을', '농촌다운 농촌'을 통한 '생태공동체마을'이 우리 농촌공동체가 가야 할 정도다. 그래야 농촌은 농사일만 하는 농장이 아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여건이 충족되어야 농민이 마을공동체와 지역사회의 주체이자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당당히 주권을 누리며 살 수 있다. (9쪽)
 
농촌마을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농업 농촌의 축소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 미국, 유럽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체로 농부의 감소와 농업의 축소, 농촌 해체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문제는 이에 대한 대처 방식이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은 도시민과 청년의 농업 부문 유입을 늘리기 위해 2012년부터 청년귀농자 지원 급여자금 제도를 시행중이다.

유럽연합도 농업인구 감소에 따라 2015년부터 농업을 시작하거나 시작한 지 5년 이하인 40세 이하 농업인을 대상으로 최대 5년간 직불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귀농하는 이들에게 직불금 혹은 기본소득을 지급해 농업 농촌의 해체를 막고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농촌을 지키는 우리 농민들은 늘 두렵고 불안하다. 농가의 농업소득은 평균 1천만원 정도에 불과하며 60%의 농민은 그조차도 못 번다.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은 30%도 채 되지 않고 농업총수입에서 농업경영비를 뺀 농업소득도 32%에 그친다.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국가는 '농민'에게 월급을 지급해야 한다. 국가의 식량주권과 국민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농업은 국가기간산업이고 여기에 복무하는 농민은 공무원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려면 농민이 그 성직에 충실히 복무할 수 있도록 '월급형 농민 기본소득제'를 시행해야 한다. (16쪽)

'농민기본소득제'도 우리 현실에서는 아직 먼 이야기인데, '농민자격증'을 도입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게 과연 가능한 이야기인가?'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런데 있단다. 지구상에 농민자격증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다.

이들 나라에서는 아무나 농민이 될 수 없고 무작정 농사를 지을 수도 없다. 농부가 되려면 정식으로 농업전문학교를 졸업해야 하고 농업현장에서 실습을 마친 후 농부 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국가는 농민자격증을 부여하고 농민이 농업소득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농민자격증을 딴 선택받은 2%의 농부가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독일 농민의 자긍심은 말도 못할 정도로 높다. 농민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국민의 먹을거리를 농사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독일에서도 농사는 '뼛골 빠지는 일'로 표현될 정도로 힘든 일이지만, 농업과 농촌을 위하는 사회적 동의와 국민적 공감, 그에 따른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독일 농부의 생활을 지켜주기 때문에 그들은 농촌을 떠나지 않는다. (236쪽)

농민자격증은 농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농민을 공익농민으로 우대하는 독일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정책일 것이다. 여전히 농업은 기피대상이고 농민은 사회적 약자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참 꿈같은 이야기다.

책은 무려 100가지에 달하는 과제들을 정리했으니 농업, 농촌에 관해 웬만한 문제는 전부 망라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중에는 이미 현장에서 진행중인 것도 있고 검토중인 것도 있고, '농민자격증'처럼 아직 우리의 현실에서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것도 있다.

농촌을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 그 어느때보다 과감하고 파격적이며 전환적인 정책 도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요한 것은 농촌문제에 접근하고 과제를 다루는 관점이다. 전혀 새로운 농정전략이 필요하고 이것을 가능하게 할 국민적 관심, 사회적 동의가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농촌마을공동체를 살리는 100가지 방법> (정기석, 송정기 지음 / 전북대학교 출판문화원 펴냄 / 2016. 5. / 16,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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