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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걸어서 '산티아고'로 갈거야!

[별방진의 '산티아고' 후기록 ④]

등록|2016.09.13 09:45 수정|2016.09.13 09:48

▲ '나헤라' 공용알베르게의 자원 봉사자 두분과... ⓒ 이성관


2015년 10월 22일(목)~(8일째... Najera~ granon: 27.5km)
순례자숙소: Ref. paroissial '파로이시알' 알베르게, 기부제)

아침 7시 30분경 그곳 알베르게 주방에서 김치라면을 끊인 후 얼큰한 국물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배를 채우니 속이 든든하다. 조금 불은 라면이면 어떠랴. 한국의 맛, 고향의 맛... 절로 힘이 솟아난다. ^^

이곳 '나헤라' 공용 알베르게는 30개의 2단 침대가 갖춰져 있으며 기부제로 운영된다. 비록 하룻밤의 카미노 인연이지만 미소 가득 모두를 대하는 그분들의 모습이 진정 이 길의 길라잡이가 아닌가 싶다. 감사한 인사를 전하며...

▲ 길도 쉬엄쉬엄 우리네 인생도 쉬엄쉬엄... ⓒ 이성관


 

▲ '산티아고' 580km... 저마다의 소망을 안고 걸어가고 있을진대... ⓒ 이성관


이제 길은 어느덧 Navarra(나바라) 지역을 벗어나 La Rioja(라 리오하) 지역으로 들어섰다. 메세타(대평원)의 초입이기도 하다. 속도를 늦췄다 올렸다를 반복해본다. 어차피 인생은 한걸음의 속도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을테니까.

'산티아고' 580km... 한 걸음 두 걸음, 아직은 상상만으로 떠올려보는 종착지의 끝모를 감회들. 오늘의 길의 여정은 'Granon'까지 27.5km이다.

▲ 동행... 그리 외롭지 않은 만남의 길이기도 합니다. ⓒ 이성관


▲ 꾸밈없는 소박한 모습의 그에게 사진 한장을 청했더니 반가히 선뜻... ⓒ 이성관


길을 걷다 이스라엘에서 온 'Moshe' 카미노 친구를 만났다. 그의 가식없은 표정과 여유로움이 물씬 묻어나왔던...

한시간 반 여를 걸어 Azofra 마을 바(Bar)에 들러 간단한 빵과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인 후 늘 품고 다니는 작은 '길 안내서'를 펼쳐본다. 조금씩 줄어드는 km 수의 숫자 배열을 따라가노라면 그 안의 모든 상념과 현실적인 내 발품의 위치가 먼 옛날의 이야기인 듯 주마등 처럼 스쳐 지나가는...

▲ '아조프라'... 어떤 바르(bar)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 이성관


▲ '아야꼬'... 그 걸음새가 마치 여장군을 닮은 듯 하네요^^ ⓒ 이성관


어디쯤 왔을까... 어제 '나헤라' 알베르게에서 함께 묵었던 일본 카미노 아가씨를 만났다. 이름이 '아야꼬'인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일본인 특유의 상냥한 미소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생각난다.

▲ 어느 부부의 카미노 이야기가... ⓒ 이성관


▲ 어느 부부의 카미노 이야기가... ⓒ 이성관


부부!... 아름다운 동행의 길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2km 쯤을 더 걸어가다 만난 독일에서 왔다는 카미노 할머니의 표정은 평온함 그 자체였다. '무엇으로 사는가'... 그 해답의 정수가 이길에서 보이는 듯하다.

▲ 굳이 긴 이야기가 필요치 않을 듯 싶다... '초연'... ⓒ 이성관


▲ 한구비 오르고 나니 다시 언덕길이 이어진다. ⓒ 이성관


길이 이어지고... 끝모를 여정의 동선을 바라보노라면 때론 그 길의 소실점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저 언덕을 오르면 어떤 미답의 풍광들이 무한히 펼쳐지고 있을까.

▲ 저들도 언덕길을 오를땐 꽤 힘들듯 하다. ⓒ 이성관


▲ 그 표정이 꽤나 재미있다^^ ⓒ 이성관


▲ '부엔 카미노!'... ⓒ 이성관


▲ 저 언덕을 오르고 나면 다시 신나는 내리막길이... 자전거 카미노의 매력이기도 하다. ⓒ 이성관


긴긴 언덕을 오를 때 저들의 힘든 표정과 헉헉거리는 소리가 생생히 들려온다. 그래도 내리막길의 환호를 떠올리며 오르고 있을 터인데... 자전거와 발품? 그 취향의 불문을 제쳐두고라도 누가 내게 백 번 물어온다면 나는 백 번 꼭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난 걸어서 '산티아고'로 갈거야!'

▲ 쉼터... 휴식의 머무름은 달콤하다. ⓒ 이성관


▲ 스마즈와 엘레나... ⓒ 이성관


멀고도 긴 언덕을 오르고 나니 확트인 시야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아침에 먼저 길을 나선 '스마즈'와 '엘레나'가 길옆 평지에서 쉬고있다. 매번 오누이 같이 다정한 모습들이다. 서로 손을 흔들어 주며... 부엔 카미노!

▲ 작은 돌멩이가 유독 많아 신발창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 이성관


'산토 도밍고 데 칼사다' 마을 초입. 네시간여를 걸어온 듯하다. 큰 마을이면서도 넓디 넓은 평원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모양새가 한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먼 옛날(14세기초) 부모와 함께 그 순례의 길을 걷고 있던 잘 생긴 독일 청년과 그 모습에 반한 여관집 딸의 어긋난 사랑이 전설이 되어 아직도 성당안에서 닭 두마리가 온종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기적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 카미노의 가을풍경 ⓒ 이성관


▲ 카미노의 가을풍경... ⓒ 이성관


▲ 카미노의 가을풍경... ⓒ 이성관


▲ 카미노의 가을풍경... ⓒ 이성관


▲ 카미노의 가을풍경... ⓒ 이성관


▲ 카미노의 가을풍경... ⓒ 이성관


▲ 카미노의 가을풍경... ⓒ 이성관


디카속 세상으로 담아내는 카미노의 풍경이 아름답다. 제주올레길과는 너무나 다른 또다른 길의 넓음을 담아본다. 그 길을 내가 걷고 있다. 무엇으로 표현할 수 없는 내 시선의 경외의 대상이기도 하다.

▲ '그라뇬' 마을 초입...ㅣ ⓒ 이성관


오늘의 목적지 'Granon'는 작고 아담한 마을이다.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듯하다. 마을 초입의 긴 아스팔트가 멀게 느껴진다.              

▲ 마을안길... 대문가와 길가에 물병이 놓여있다. ⓒ 이성관


▲ 저녁 햇살 따스히 창가에 매달린 '제라늄'꽃 향기를 비추고 있다. ⓒ 이성관


▲ 저 한글문구를 보는순간 눈물이 날뻔했다. ⓒ 이성관


이곳 성당 알베르게는 마을 봉사자분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냥 매트리스를 깔아 잠을 잔다. 오히려 더 편안하다. 고풍스런 성당 계단을 따라 이층에 올라 '그레덴시알'에 셀요를 받고 등록한 후 기부금을 내려고 했더니 No라고 한다. 내일 아침 내가 짐작하는 만큼 낼 생각이다. 벽에 붙여놓은 한글 안내판 '환영합니다'라는 글귀가 반갑기 그지 없다.

▲ 주방에선 한창 저녁만찬이 만들어지고 있다. ⓒ 이성관


▲ 느긋한 휴식의 순간은 행복하다. ⓒ 이성관


▲ 감미로운 기타소리가 홀안에 가득하다. 목소리의 울림이 어찌나 중후한지... ⓒ 이성관


▲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핸폰과 기타연주 삼매경에 빠져있다. ⓒ 이성관


▲ 모두들 식탁에 모여앉아 환영사와 답사가 이어지고 있다. ⓒ 이성관


▲ 그 마음을 그 정성을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 이성관


저녁 7시쯤 자원 봉사자 두 분이 정성스럽게 식사준비를 한다. 그 사이 벽난로 따스한 홀에선 어느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가 감미롭고 때론 경쾌하게 기타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데 그 중후한 목소리 톤이 모두를 감흥시킨다. 어느새 박수에 맞춰 노래를 따라 부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8시쯤 이십여 명 앞으로 계란후라이와 감자즙, 검붉은 와인이 놓인 후 환영사에 이어 답사가 반복되며 이어지는데 그 시간이 꽤 길다.

각자의 탁자에 탁탁 두드리며 손뼉을 치니 식사를 제공한 주방장 두 분의 흥에 겨운 노래가 시작된다. 가사를 모르긴 해도 아마도 '산티아고' 여정을 격려하며 응원하는 내용인 듯 하다. 카미노 친구들의 미소 가득 따라주는 와인 한 잔의 맛이 진하다. 이 모두가 영화에서나 봄직한 인상적인 장면이다. 오래오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듯 싶다. 내겐 큰 행운의 체험이다.

벽난로가 참으로 따스한 밤이다.
덧붙이는 글 세계각국의 친구들과 어우려져 먹은 그곳 자원봉사자분들이 차려주는 저녁식사와 와인 한 잔의 맛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회상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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