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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 정말 몰랐나

"국정원, 핵실험 징후 파악"... 해외 언론도 거듭 보도

등록|2016.09.10 20:55 수정|2016.09.10 20:55

▲ 박근혜 대통령이 9일 오전 라오스 현지에서 북한의 5차 핵실험과 관련해 긴급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마치 뒤통수를 맞은 모습이었다. 대통령이 나라를 비운 사이 지방일정을 잡고 있던 국무총리와 통일부장관은 부랴부랴 서울로 돌아왔고, 귀국 일정을 앞당긴 대통령은 도착하자마자 "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이라며 거친 말을 쏟아냈다.

9일 오전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을 진앙으로 하는 지진이 감지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시각, 황교안 국무총리는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리는 해양경비안전의 날 행사 참석과 충북 청주 재래시장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1박 2일 일정으로 열리는 '통일공감 열린광장' 행사 참석을 위해 강원도 고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긴급 국가안전보장 회의는 핵실험 1시간 30분 뒤인 11시에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아시아 정상회의 참석으로 나라를 비운 상황에서 국무총리와 북한 문제 주무부처 장관이 서울을 떠나 있었다는 점 때문에 국방부와 국가정보원 등이 북한의 9월 9일 핵실험을 전혀 예상 못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야당은 정보기관의 무능을 질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북한의 9월 9일 핵실험' 징후를 몰랐다고 결론내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국정원, 핵실험 징후 파악"... 해외 언론도 거듭 보도

"박근혜 대통령께서 출국하면서 공항에서 북한의 여러 가지 동향과 움직임이 간단치 않다는 점을 말씀했는데, 역시 북에서 여러 가지로 미사일 실험을 포함한 아주 위험한 도발을 끝간데  없이 하고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인 9일 오전, 취임 한 달을 맞이해 기자간담회를 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한 말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징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여당 대표에게도 귀띔을 해줬다는 얘기다. 

국가정보원도 핵실험 뒤 국회 정보위원회에 '정확한 실험 일시는 몰랐지만 핵실험 징후는 충분히 포착해 대비하고 있었다'고 보고했다고 이철우 정보위원장이 밝혔다. 국정원은 북한의 정권수립일인 9월 9일에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해외 언론의 보도 상황도 북한의 9월 9일 핵실험을 예측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란 걸 보여준다.

지난 7일 오후 일본 <산케이뉴스>는 일본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북한이 이달 들어 풍계리 핵실험장에 관측기기를 설치하는 등 핵실험 준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언제 핵실험이 이뤄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으로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 미국, 일본은 5차 핵실험이 강행될 우려도 있다고 보고 경계·감시를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1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정부가 북한의 9월 9일 핵실험 징후를 미국으로부터 사전에 전달받았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 "9일이 북한 건국기념일이어서 준비는 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8일에 미국의 <38 노스>도 "핵실험장 북쪽과 서쪽 입구에서 갱도 굴착 등 새로운 활동이 포착됐다"며 핵실험의 전조 징후를 보도했다.

미국이 9월 9일 핵실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었고, 이같은 내용이 해외 언론에서도 보도된 상황에서 한국의 정보기관과 군만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반대로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대통령이 부재중인 상황에서 국무총리와 통일부장관이 서울을 비우고 있었다는 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알았으면서 몰랐던 것처럼 하는 건지, 몰랐으면서 알았던 것처럼 하는 건지 종잡을 수 없다. 

정부의 선택은 갈등·위기 고조

▲ 북한은 9일 "핵탄두의 위력 판정을 위한 핵폭발 시험을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이날 성명에서 "이번 핵시험에서는 조선인민군 전략군 화성포병부대들이 장비한 전략탄도로켓들에 장착할 수 있게 표준화, 규격화된 핵탄두의 구조와 동작, 특성, 성능과 위력을 최종적으로 검토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리춘히 아나운서가 9일 오후 1시 30분(평양시간 오후 1시) '핵무기연구소 성명'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북한의 핵실험 직후에 쏟아져 나온 대통령의 가시돋친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은 북한 정권 최고지도자의 정신상태를 비난하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과 정치권이 현실적으로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해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사드 배치 반대를 그만두라고 종용했다. 또 국가비상사태를 언급하면서 "국내 불순세력이나 사회불안 조성자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를 주문했다.

국방부는 핵실험 직후 북한의 핵 시설과 미사일기지 궤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등 북한군 지휘부 제거를 목표로 한 '3축 타격체계'를 공개했다. 북한의 핵위협이 있을 경우 얼마든지 선제 공격이 가능하다고 천명한 것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도발에 어떻게 대비해왔는지를 밝히며 시민들의 동요를 방지하기보다는 선제공격과 국가비상사태 등을 거론하며 갈등과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쪽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기조에선 핵실험 징후를 파악할 능력이 있느냐 여부는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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