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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군은 새기고, 광복군은 지워버린 국방부

[주장] 국군의 날, 9월 17일로 바꿔야

등록|2016.09.19 15:55 수정|2016.09.19 15:55
지난 9월 17일은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에 대해 의아스러울 겁니다. 9월 17일이 무슨 의미라고? 바로 한국광복군 창설날짜입니다. 1940년 9월 17일.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광복군을 창설합니다. 과거 임시정부 산하에 독립군들이 있었으나 40년대 당시에는 대부분 와해됐습니다. 그 때문에 대단히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독립군을 언급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한국광복군.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미국 CIA의 전신인 OSS와 함께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했었습니다. 그만큼 한국광복군은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를 한국광복군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과 국방부의 생각은 여러분들과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 지금부터 여러분께 알리고자 합니다.

정훈교육 때는 언급되는 광복군, 군 연혁에는 없다?

해군 공식 홈페이지 연혁해군의 연혁. 임시정부의 '해군국' 설치 사실은 아예 언급도 되어있지 않다. ⓒ 해군 홈페이지 갈무리


제가 군복무를 할 때의 일입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정신교육, 통칭 '정훈교육'을 실시합니다. 대체로 '국군은 매우 좋은 군대, 인민군은 열악하고 야비한 군대.', '국가안보를 위해서 무엇을 하자!' 이런 식의 내용을 가르칩니다. 이 정훈교육에는 행정병들도 예외가 아니기에 바쁘지가 않으면 참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당시 주제는 광복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 의병과 독립군을 계승하는 것은 광복군이라는 설명이 나왔습니다. 국방TV와 <국방일보>의 정훈자료에서는 그런 광복군을 국군이 계승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인민군과 달리 정통성이 있는 군대라는 부연설명까지 달았습니다.

이때 저는 크게 관심은 없었습니다. 사실 국군, 특히 육군은 초기에 일본군, 만주군 출신의 민족반역자들이 대다수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국군은 일본군, 만주군을 계승했다'라는 것보다는 '국군은 한국광복군을 계승했다'라는 말이 보기 좋기에 그냥 넘어갔습니다.

전역한 이후에 광복군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는 대단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해군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해군의 연혁에서 임시정부와 광복군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이죠.

해군은 1945년 8월 21일에 해사대를 조직했고, 11월 11일에 해방병단을 모체로 창설했다고 나와 있었지요. 사실 해군은 '한국광복군' 자체와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1919년 11월 15일에 의정원의 의결로 임시정부는 '해군국'을 설치했습니다. 이를 본다면 해군도 광복군 자체와는 연관이 없더라도, 임시정부와의 연관은 결코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육군은 어떨까요? 정훈교육 당시에 본인들 스스로가 광복군의 계승자라고 자처했던 육군. 과연 육군은 당당하게 한국광복군을 언급했을까요?

육군은 남조선국방경비대를 계승했다?

육군 공식 홈페이지 연혁육군의 연혁. 1940년에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것은 아예 누락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투쟁했던 항일독립군이 언급도 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 육군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육군은 오히려 매우 당당하게 '해방 후 미 군정 주도로 1946년 1월 15일 남조선국방경비대가 창설되었다'라고 연혁에 대문짝만하게 적었죠. 그 어디를 봐도 광복군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저는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정훈교육 시간에 늘 역사에서는 광복군을 언급하던 육군이, 공식사이트에서는 아예 광복군을 누락시켰기 때문입니다.

남조선국방경비대. 굉장히 생소한 단어죠. 당시 미군정에서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창설합니다. 하지만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군대가 아닌, 준군사조직인 '국방경비대'로 창설합니다. 그것이 바로 남조선국방경비대죠. 이 남조선국방경비대의 총사령관은 누구였을까요? 놀랍게도 미군이었습니다. 존 T. 마샬 중령, 러셀 D. 베로스 대령 등이 총사령관을 역임했습니다. 미군장교가 총사령관인 것입니다.

대한민국 육군은 정식군대인 한국광복군을 누락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모자라서 외국인이 총사령관인, 군대도 아닌 준군사조직을 계승했다고 자랑스럽게 내걸기까지 했습니다. 한심함을 넘어서서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공군은 어떨까요? 얼핏 보면 공군이 제일 연관이 없어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공군은 달랐습니다. 공군은 당당하게 이렇게 적었습니다.

"대한민국 공군의 태동(胎動)은 1910~1920년대 일제로부터 잃어버린 주권을 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진행된 '독립운동'에서 그 맥(脈)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상해 임시정부 안창호 선생의 항공기 구입 시도와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한인 비행학교(윌로우즈)를 설립한 것 등이 '항공독립운동'을 위한 실제적인 활동이었으며, 비행사 양성은 한인이 세운 비행학교와 중국/소련의 비행학교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공군연혁 中-

정성스럽게 연혁에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과의 연관성을 자세히 밝힌 공군. 애써 독립운동과 독립군·광복군을 모두 부정한 육군과 대단히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필요할 때만 광복군을 들먹이던 육군. 왜 이런 황당한 일을 벌인 걸까요? 그것은 육군이 한국광복군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군, 만주군 복무를 경력으로 보는 국방부

국방부 대표 블로그 '동고동락'국방부의 공식 블로그에 기고된 글. 밑줄친 부분이 상당히 심각한 부분이다. 일본군과 만주군을 '민족반역'이 아닌 '경력'으로 보고 있는 점이 문제다. ⓒ 국방부 대표 블로그 갈무리


그렇다면 국방부는 어떨까요? 대한민국의 전군을 통솔하는 국방부. 그들의 인식은 어떨까요? 잠시나마 전 기대를 했죠. 하지만 역시 국방부는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국방부의 대표 블로그인 '동고동락'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다른 이색 경력자는 원용덕 장군을 들 수가 있다. 이 분은 국군 여단장도 하고 헌병 사령관도 했지만 원래는 만주군 군의관이었다. 세브란스 의전을 나왔고 만주에 가서 군의관이 되었다. 만주군의 조선인 중에 가장 계급이 높은 중교(중령)까지 진급했던 분이었다.…(중략)

…특수 경력자로서 하와이 교민으로 태어나 일본군 소위가 되었다가 국군에 들어왔던 김동영씨도 있다. 그는 일본군 경력으로 군사 영어 학교에 들어와 중령까지 진급하여 육본 군수 국장을 하다가 6.25 전쟁 전에 퇴역했다.

어떻게 하와이 교민이 일본군이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미국이나 캐나다 교포들이 미일(美日)간에 긴장이 높아지자 일본으로 돌아와서 군인이 된 사람들이 있었던 만큼 그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이들 젊은이들은 백인들의 차별에 평소 분개하는 마음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국군에 폴란드 군 출신이 있었다. 中-

일본군, 만주군에 대한 복무를 '경력'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큰 문제입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항일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적인 군대입니다. 항일역사를 살펴본다면 일본군과 만주군이 합동으로 독립군을 공격한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당당하게 그걸 '경력'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일본군에 복무한 것에 대해서 '백인들의 차별에 평소 분개하는 마음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옹호하기까지 했습니다. 일본군, 만주군에 복무한 것은 결코 경력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한 '민족반역'입니다. 그런데 게시글의 아래쪽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본 글은 '국방부 N.A.R.A 블로그' 작가의 글로써, 국방부의 공식입장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건 대단히 '비겁한 변명'입니다. 해당 글을 채택했고 무엇보다 국방부 공식 블로그에 올려놓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글을 채택한 것은 국방부에게 있습니다. 오히려 국방부가 일본군, 만주군 복무를 경력으로 보았기에 이런 글이 실렸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과연 국방부의 생각과 다른 글이, 공식 블로그에 당당히 실릴 수가 있을까요?

국군의 날, 9월 17일로 바꿔야 정답

그렇다면 군의 상징이자 기념일인 '국군의 날'은 어떨까요? 현행 국군의 날은 10월 1일입니다. 이 날이 국군이 정식으로 창설된 날로 아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닙니다. 바로 6.25 전쟁 당시에 국군이 최초로 38선을 넘어서 북진한 날짜입니다. 6.25 전쟁의 결과는 어떨까요? 국군이 승리했을까요? 정답은 '아닙니다.' 기세 좋게 북진하던 국군은 그야말로 참패를 당했죠. 그것도 모자라서 서울을 다시 빼앗기는 수모도 겪었습니다.

국군이 최종적으로 승리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이후에 서울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이후 남북교류, 남북통일을 고려하면 현행 국군의 날은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족상잔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기념하는 셈이니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를 국군의 날로 삼아야 할까요? 저는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9월 17일로 권하고 싶습니다. 국군이 확실하게 광복군을 계승한 뿌리 깊은 군대라면 반드시 이 날짜로 국군의 날을 바꿔야 합니다.

군 복무 당시의 정훈교육 때 국방부는 광복군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군대'임을 함께 늘 강조했죠. 그런 국방부가, 공식 군 홈페이지에서는 광복군을 언급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일본군과 만주군을 경력으로 보는 글까지 국방부 공식 블로그에 버젓이 올라와 있습니다. 실로 큰 문제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한국광복군은 단순히 수많은 독립군 중 하나가 아닙니다. 1940년 9월 17일. 만주의 독립군들이 와해된 이후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게 생긴 정식군대입니다. 엄연히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항일투쟁의 상징인 군대입니다. 장준하 선생을 비롯한 학도병들이 탈출하여 합류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광복군을 국방부와 군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방부와 군은 스스로 유서 깊고 자주적인 군대를 부정하고, 외국인이 총사령관으로 있는 준군사조직을 계승했다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방부와 군 스스로가 국군은 '황군의 계승자'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셈입니다. 아무리 초기에 일본군, 만주군 출신들이 주축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국방부가 진정으로 국군이 '황군의 계승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면, 반드시 이 날짜로 국군의 날을 바꿔야만 합니다. 아울러 육군과 해군의 임시정부와 독립활동과의 연관성도 당당하게 게시해야만 합니다. 군은 더 이상 스스로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광복군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부정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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