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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백남기다" 뜬눈으로 밤새우는 시민들

[사진] 오는 사람들, 떠나는 사람들, 남는 사람들

등록|2016.09.28 14:10 수정|2016.09.28 14:10
백남기 농민께서 지난 9월 25일 오후 운명하시고 나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습니다. 전국의 농민과 시민, 정당,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10여 개월 백남기 국가폭력사건의 중심이었던 '백남기 농성장'과 장례식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농성장과 장례식장을 오가며 또 하루가 지났습니다. 조문과 촛불문화제, 기자회견, 백남기 농민 지키기 밤샘 활동이 백남기 농성장과 빈소의 주요 일과입니다. 사흘째 밤을 지새우며 부검 영장 발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속을 까맣게 태웠습니다.

오늘(28일) 저는 장례식장 현관 바닥에 누워 뒤척이다가 새벽 4시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며 고 백남기 농민이 계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주변을 서성입니다.

서울대 병원 밖 거리는 여느 때와 별 다를 게 없습니다. 차량 통행이 서서히 늘어나고 일찍 일터로 떠나는 사람들이 이따금 보입니다.

장례식장으로 돌아오니 문 앞에서 농민 한 분이 "유기농민?" 하며 손을 내밉니다. 누구신가 여쭈어보니 강원도 정선농민회 이은배 회장님입니다. 유기농 잡곡과 산야초 농사를 짓고 농민 동지들과 동강산야초 영농법인을 운영하고 계시다네요. 정선과 영월은 단양 바로 옆이라 사투리도 같아서 동네 형님 만난듯 합니다.

이 회장님은 어제 농민회원들과 고 백남기 농민을 조문하고 농성장 지킴이를 하셨습니다. 잠을 설치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다시 농사일을 하러 돌아가십니다.

농민과 노동자들이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절을 보내며 저항의 불꽃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난밤 건장한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 수십 명 역시 밤새 백남기 농민 지킴이를 하고 어둠을 헤치고 길을 나섭니다.

남아있는 백남기 지킴이 학생과 시민은 이른 새벽이 가장 견디기 어렵습니다. 밤새도록 꺼져내리는 눈커풀을 치켜 세우지만 어느새 스스르 눈이 감깁니다.

어스름 동이 터옵니다. 영장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또 한번의 길고긴 밤을 떠나 보냅니다.

아침 7시 날이 환하게 밝고 무사히 밤을 보낸 것에 대해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를 했습니다. 다시 다가올 어둠을 함께 맞이하자는 다짐의 결의를 다지고 각자의 삶터로 돌아갑니다. 남은 사람들은 또 새로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면서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난 하루의 풍경을 사진으로 스케치해 봅니다.

한산한 백남기 농성장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살인 물대포에 피격된 지난 11월 14일 이후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 투쟁의 중심이었던 서울대병원 후문 백남기 농성장이 한산하다. 조문객 안내를 위해 가톨릭농민회 활동가들이 안내문을 쓰고 있다. ⓒ 유문철


백남기 농성장으로 상경하는 농민들9월 27일 오전 9시, 이른 새벽 끼니를 거르고 전주와 원주에서 상경한 가톨릭농민회 농민들이 백남기 농성장을 홀로 지키고 있는 김세진 가톨릭농민회 과장과 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있다. ⓒ 유문철


▲ 9월 26일 오후 2시, 백남기 농민이 80년대 우리밀살리기 운동과 더불어 90년대부터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이하 우리농) 인천교구 도시생활공동체 활동가들과 가톨릭농민회 소속으로 전주에서 농민이 상경한 농민 백남기 농성장에서 '백남기를 살려내라' 피켓팅을 하고 있다. ⓒ 유문철


백남기 지킴이 활동을 하는 상주 농민9월 25일 밤 경북 상주에서 올라온 '유기농 독립군' 박희준 농민이 지난밤 백남기 농민 지킴이 활동을 마치고 농성장에서 잠시 집으로 돌아갈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박희준 농민은 농민단체에 소속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뜻으로 '유기농 독립군'이라고 자칭한다. ⓒ 유문철


충북 단양에서 올라온 백남기 농민 지킴이9월 25일 오전 충북 단양에서 올라온 단양군 친환경농업인연합회 소속 농민은 이틀밤 동안 백남기 농민 지키기 활동을 했다. 백남기 농성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사흘째 지킴이 활동을 나갔다. ⓒ 유문철


뻥 뚤린 서울대병원 후문9월 25일 오후 두시 백남기 농민 사망 소식과 함께 경찰에 봉쇄되어 6시간 동안 출입이 통제되었던 서울대병원 후문은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의 요구로 봉쇄가 해제 되었다. 이후 경찰병력이 철수한 후 27일 오후 7시 현재 통행이 원활하다. ⓒ 유문철


백남기 농민 촛불문화제 3일째매일 오후 7시 백남기 농민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현관에서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200여명이 참석하여 정당, 시민사회단체, 농민단체의 연설이 한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 유문철


이어지는 백남기 농성장 시민 서명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시각에 백남기 농성장에 놓인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 특별검사제 실시 촉구 서명지에 아이와 함께 방문한 아빠가 서명을 하고 있다. ⓒ 유문철


▲ 백남기 농민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현관에서 오후 9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보라 사무국장이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 서울대병원 측 사망진단서와 부검영장의 부당성을 인터뷰하고 있다. ⓒ 유문철


백남기 지킴이 시민들9월 27일 자정 무렵, 백남기 농민 부검영장 발부시 있을 지로 모르는 시신탈취를 막기 위해 백남기 농민 지키기에 참여한 시민들이 결의를 다지고 있다. ⓒ 유문철


눈에 띄게 줄어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출입문 경찰병력9월 28일 새벽 두 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정문에는 지난 이틀 동안 보다 훨씬 적은 두 명의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지난 25일과 26일에는 20여명의 경찰병력이 경비를 했다. ⓒ 유문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농민과 신부새벽 4시 30분, 조문객이 뜸한 백남기 농민 빈소에 입구에 마련된 조문객을 맞이하는 자리에 앉은 가톨릭농민회 장종혁 전주교구 부회장과 곰벤뚜알프란치코회 서영섭 신부가 밤을 지새우고 있다. ⓒ 유문철


▲ 9월 28일 새벽 4시 30분경, 비가 그치고 기온이 뚝 떨어지자 백남기 지킴이 시민들이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본관 현관 앞에서 추위를 막기 위해 비닐을 덮고 누워있다. ⓒ 유문철


새벽잠에 빠져드는 백남기 지킴이 시민들새벽 5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층 현관에서 백남기 지킴이 활동을 하며 밤을 지새우던 시민들이 빽빽히 누워 새벽잠에 들어있다. ⓒ 유문철


백남기 지킴이를 마고 시골로 돌아가는 농민이은배 정선군농민회장은 소속 농민회원 3명과 백남기 농민 조문과 지킴이 활동을 마치고 농사를 지으러 돌아가기 위해 장례식장을 나서고 있다. ⓒ 유문철


백남기 지킴이 서울 여성 시민9월 28일 새벽 6시, 경복궁 근처에 사는 정영화씨는 이틀째 백남기 농민 지킴이 활동을 마치고 오늘밤 또 오겠다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정영화씨는 부검영장 기각 소식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서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장례식장을 떠났다. ⓒ 유문철


▲ 오전 7시, 백남기 농민 지킴이 활동을 마친 사람들이 전국농민회총연맹 조병옥 사무총장의 사회로 결의대회를 가졌다.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한의대 학생, 녹색당 김주온 공동대표, 김종훈 무소속 국회의원, 정현찬 백남기 장례위원회 위원장 순으로 40여 분동안 진행되었고 함성을 외치며 마무리 지었다. ⓒ 유문철


덧붙이는 글 유문철 시민기자는 충북 단양에서 아홉해째 유기농 농사를 짓으며 아홉살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18일부터 백남기 농성장 활동에 참여하며 페이스북 (필명 유기농민)으로 관련 활동을 포스팅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단양한결농원의 유기농사 이야기에도 본 기사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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