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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앱으로 남편감을 '득템'했다, 그런데...

[한뼘리뷰] '블랙 이와이'가 꼬집는 이 시대의 관계맺기,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

등록|2016.10.02 11:24 수정|2017.02.13 14:29

▲ <립반윙클의 신부>가 꼬집는 현대 사회의 단면은 의외로 아프다. ⓒ TCO(주)더콘텐츠온


SNS가 대중화된 요즘, 관계 맺기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니다.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비즈니스를 할 수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타입의 외모와 성격을 지닌 상대만 추려 데이트를 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당장 결혼이 목표라면 불필요하게 썸을 타거나 소모적인 연애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유명 데이팅 앱을 서비스하는 국내 한 회사는 "자사 앱 이용자 중 지금까지 200여 쌍의 결혼 커플이 탄생했다"고 밝혔다. 확인되지 않은 커플을 포함하면(당연하게도) 수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최대 효율과 최소의 리스크. 그야말로 완벽한 시스템이다.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의 시작이 바로 데이트 앱을 통한 만남이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가에 한 여자가 서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손을 들어 흔들며 자신은 우체통 옆에 서 있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이내 한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가 어깨를 톡톡 친다. 여자는 남자와 인사를 나누고, 그와 함께 걷는다.

애틋하게 흐르는 현악 선율 속 슬로 모션으로 로맨틱하게 연출된 첫 시퀀스 이후, 영화는 보기 좋게 관객을 배신한다. 휙휙 시간을 넘어 주인공 나나미(쿠로키 하루 분)가 결혼에 다다르는 과정을 그린다. '쇼핑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는 것처럼' 간단하게 남편감을 구한 뒤, 나나미의 세계는 뒤틀리기 시작한다.

▲ 구원인가 아니면 배신인가. ⓒ TCO(주)더콘텐츠온


이후 <립반윙클의 신부>가 줄곧 다루는 건 온라인상에서 기인한 '얄팍한' 관계에 대해서다. 극 중 나나미는 심하게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도 별로 없다. '플래닛'이란 SNS를 통해서만 속내를 털어놓고 사람들과 교류할 따름이다. 영화는 그런 나나미 앞에 미스터리한 온라인 친구들을 줄줄이 엮어 차례로 들이민다. 남편의 외도를 의심하는 나나미가 사설 청부업자 아무로(아야노 고)에게 일을 의뢰하고, 아무로의 주선으로 얻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통해 여배우 마시로(코코 분)와 친해지는 식이다.

극 중 나나미의 '낯선 친구'들에게서 엿보이는 '구원'과 '배신'의 이중성은 영화를 관통하며 큰 시사점을 남긴다. 특히 능숙하게 관계를 창조하거나 조작하고 소멸시키기까지 하는 아무로의 캐릭터는 섬뜩할 정도다. 나나미를 이리저리 이끄는 그의 알 듯 말 듯 한 내면을 추적하는 과정은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 <립반윙클의 신부>는 이와이 슌지의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 TCO(주)더콘텐츠온


중후반부 나나미의 소울메이트로 그려지는 마시로도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나나미가 남편에게서 느끼지 못한 애정을 마시로에게서 얻고, 고독하게 생활하던 마시로 또한 나나미를 통해 위안받는 전개는 내내 차갑기만 한 영화에 열기를 불어넣는 지점이다. 특히 이들이 넓은 방 안에서 한 침대에 누워 서로를 쓰다듬는 장면에서는 영화 <아가씨> 속 숙희(김태리 분)와 히데코(김민희 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SNS 시대의 표면적 인간관계가 지닌 한계, 그리고 이런 관계에라도 기대고 싶은 개인의 비참한 고독까지. '이와이 슌지'하면 <러브레터>나 <4월 이야기> 등 잔잔한 드라마를 떠올리는 관객에게 <립반윙클의 신부>는 낯설 수밖에 없다. 사랑 얘기가 아닐뿐더러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스릴러에 가깝다. 잘 알려지지 않은 <피크닉>이나 <언두>,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같은 '블랙 이와이' 스타일의 작품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주인공은 답답하고, 주변 인물들도 속 시원하게 진심을 털어놓는 법이 없다. 끝까지 모호한 플롯 때문에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가만히 나나미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눈물을 쏟을지도 모른다. <립반윙클의 신부>가 지닌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9월 2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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