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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면 산다? 전북과 프로축구연맹이 합작한 '나쁜' 선례

[주장] 심판매수 행위에 솜방망이 처벌... 팬과의 약속 저버린 전북 현대

등록|2016.10.02 14:15 수정|2016.10.02 14:15

프로축구 상벌위지난 9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소속 스카우트의 심판매수 사실이 드러난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에 대한 징계심의를 위해 프로축구연맹 상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예상은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심판매수' 행위가 사실로 드러난 프로축구 K리그 전북 현대가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형식에 그친 솜방망이 징계는 공감을 잃고 연맹과 전북 모두에게 오점만 남긴 꼴이 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지난 9월 30일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전북에 2016년 시즌 승점 9점 삭감, 벌과금 1억 원 부과를 결정했다. 전북의 스카우트 차아무개씨는 지난 2013년 2명의 심판에게 5차례에 걸쳐 모두 500만 원을 준 사실이 적발돼 2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국민체육진흥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알맹이는 모두 빠진 이상한 징계

그동안 전북 구단은 스카우트가 심판에게 돈을 건넨 것은 구단과 상관이 없는 순수한 개인의 의지에 따른 행위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스카우트의 지위나 개인 급여 수준을 감안할 때 심판을 상대로 적잖은 돈이 오가면서 청탁이나 거래가 없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웠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연맹이 전북에 내린 징계에서는 단호한 원칙도, 합당한 수위도, 심지어 재발 방지에 대한 의지도 찾을수 없다.

전북 정도의 대형 구단에게 벌금 1억 원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실질적인 징계는 고작 리그 승점 9점의 감점인데 이 역시 말 그대로 애교 수준에 불과하다. 개막 후 32경기 연속 무패(18승 14무) 행진을 벌이며 승점 68을 올린 전북은 이번 징계로 승점 59가 됐다. 리그에서 독보적인 선두였던 전북이 2위 FC서울(승점 54)과 5점 차로 좁혀진 것 정도다.

사실상 전북을 추격할 수 있을 만한 팀은 서울뿐이지만 전북과의 전력 차이를 감안할 때 쉽지 않다. 전북은 서울을 상대로 올 시즌 리그 3연승을 달리고 있으며 지난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에서도 서울을 4-1로 대파하고 결승행을 거의 확정 지은 상황이라 리그에 주력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애초에 승점 감점을 징계로 내리려고 했다면 리그 우승팀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징계가 마련되어야 했다. 일각에서는 2부리그 챌린지 강등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강경한 여론도 나왔던 것을 감안할 때 결국 전북이 차지하는 리그 내 위상을 고려하여 눈치를 본 게 아니냐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상벌위는 전북에 대한 징계 기준으로 챌린지(2부리그) 경남 FC 사태를 선례로 내세웠다. 이 역시도 예상 가능한 핑계였다. 경남은 구단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심판 4명에게 19회에 걸쳐 총 6400만 원을 제공한 사실이 적발 되어 승점 10점 감점, 제재금 7000만 원이 부과됐다. 청탁 규모로 보면 구단 스카우트가 심판 2명에게 총 500만 원을 제공한 것이 밝혀진 전북은 경남보다는 어쨌든 죄질이 가볍다고 볼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여기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다. 첫째로 일단 경남에 내린 징계부터가 안이한 솜방망이 징계라는 지적이 많았다. 구단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심판매수는 액수나 횟수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 사실상 승부조작 급의 사건이나 마찬가지다. 구단 강등과 해체 수준의 징계를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게 당연했지만, 경남은 당시에 여론의 큰 관심을 받지 못한 탓에 어영부영 넘어간 측면이 더 강했다. 처음부터 안이하게 선례를 잘못 세웠으니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해도 처벌 수위를 정하는데 오히려 기계적인 형평성에 발목을 잡히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연맹의 상벌규정에 따르면 심판매수 및 불공정 심판 유도 행위에 대해 해당 구단에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제재는 제명이고, 하부리그 강등, 1년 이내의 자격정지 처분, 승점 삭감 등이 가능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애매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더구나 경남을 기준으로 해도 연맹의 징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북은 승점 감점의 폭은 경남보다 덜했는데 벌금은 더 많았다. 연맹은 전북이 스카우트 외 직원이나 구단 자체가 이번 혐의에 가담했는지를 명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경기를 앞두고 스카우트 개인이 심판을 찾아간 점에 대해 구단이 알고 묵인하다가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추론만이 남았을 뿐이다. 결국, 연맹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상황에서 구단에 직원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만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전북, 무엇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전북은 이로써 최악의 징계는 면했다. 하지만 우승컵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오히려 도덕성에는 두고두고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됐다. 연맹은 전북에 대한 징계를 부과하면서 뜻밖의 사실도 공개했다. 전북이 연맹 상벌위의 진술서와 각종 자료 제출 요구에 불응하고 비협조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조남돈 상벌 위원장은 이번 심판매수 사건에 대하여 비슷한 사례의 타 종목과 비교할 때 징계 결과 발표가 너무 늦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하여 전북의 불성실한 행태로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음을 꼬집었다.

이는 전북이 처음부터 연맹의 조사에 개의치 않고, 징계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다. 지난 5월 당시 전북 최강희 감독과 이철근 단장은 심판매수 사태가 터지자 책임을 인정하고 팬들 앞에 사죄했다. 향후 모든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드러난 행태는 이와 정반대였다. 명색이 K리그를 선도하는 빅 클럽이라는 구단의 윤리의식과 책임감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사실에 축구팬이 받은 실망감은 말할 수 없다.

이로써 전북은 올 시즌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렵게 됐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고 현재의 전북과는 무관한 사안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 부정한 관행이 있었다면 그 이전이나 혹은 현재에라도 똑같은 사례가 없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전북이 오늘날 K리그를 대표하는 대형 구단으로 성장하는데 일정 부분 부정한 청탁으로 얻은 수혜가 조금이라도 포함되어있다면 그 역시 현재와 무관한 과거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관건은 전북 구단의 대응에 쏠린다. 최강희 감독과 이철근 단장은 지난 5월 당시 분명히 결과에 대하여 '책임지겠다'고 약속했다. 전북은 이미 충분히 면죄부(징계를 가장한)를 받았다. 전북은 그동안 이 모든 사태에 대하여 스카우트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해왔고, 조사에 성실히 협조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수뇌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구체적인 쇄신책도 없었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책임진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행보의 연속이었다.

이번 연맹의 솜방망이 징계를 방패막이 삼아 또다시 과거의 약속을 잊고 그 뒤에 숨는다면 축구인으로서 가장 비겁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지금 당장 전북에서 사퇴해야만 한다.

연맹은 연맹대로 이미 충분히 웃음거리가 됐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징계를 내려야 할 주체가 제대로 된 조사 의지 자체가 없었고 철저히 구단에 끌려가는 모양새로 일관한 것은 연맹이 소속구단으로부터 얼마나 만만한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더구나 조사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구단을 더욱 단호하게 응징하기는커녕, 협조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백기를 들어버린 것은 앞으로 비슷한 사건이 나올 때 악용될 나쁜 선례만 남긴 셈이다. 연맹의 처벌을 우습게 여기고 버티다 보면 알아서 꼬리를 내린다는 인상만을 심어준 건 아닐까. 연맹과 전북 구단의 한심한 행태를 보면서 왠지 K리그를 둘러싼 어두운 관행이 순순히 근절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불안감만 엄습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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