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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서 '임금피크제' 하면 우리도? '노숙투쟁' 노동자들

[현장] 율촌화학노조 농심그룹 '임금피크제' 맞서 안산시청 앞에서 천막농성

등록|2016.10.03 19:34 수정|2016.10.03 20:13
안산시는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을 배후로 둔 노동자 도시다. 이들 공단에서 파업투쟁과 천막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한 곳은 한국노총 화학노동조합연맹 율촌화학노동조합이다. 임금피크제로 진통을 겪으며 지난 9월 5일부터 천막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다른 한 곳은 민주노총 안산지부 사업장인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 경기지부 대창지회다. 조합 활동시간 보장 등을 놓고 8월 17일부터 총파업 중이다(관련 기사). 이들 노조가 천막농성과 전면파업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 기자 말

▲ 한국노총 화학노련 율촌화학노동조합 박종섭 위원장이 지난달 29일 오후 안산시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 촉구 안산시민농성장'겸 '고 백남기 농민 분향소' 곁에서 열린 조별 결의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조합원 동지들은 현장을 묵묵히 지켜 달라. 교섭위원들도 밖에서 치열하게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 박호열


농심은 국내 라면시장 부동의 1위다. 시장점유율은 50%를 넘는다. 지난여름엔 '보글보글 부대찌개면'을 시장에 출시해서 한 달 만에 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이 부대찌개면을 비롯해 농심의 포장지는 경기도 반월공단에 있는 율촌화학(주)에서 생산하고 있다.

농심의 자회사인 율촌화학은 1973년 대경인쇄로 출발했다. 주 사업은 유연한 재료로 내용물의 특성에 맞춰 봉투나 필름 형태로 제작하는 '연포장' 생산으로 주로 농심의 라면이나 과자 제품의 포장지에 사용하고 있다.

율촌화학의 최대주주는 농심홀딩스다. 농심홀딩스는 지난해 9월 기준 40.3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왕회장'으로 불리는 신춘호(84) 농심그룹 회장이 가장 많은 지분(13.5%)을 소유하고 있다. 신 회장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친동생이다. 그 밖에 신 회장의 부인 등이 분산소유하고 있다.

율촌화학에는 대표이사가 두 명이다. 신 회장의 쌍둥이 중 둘째 아들인 신동윤 대표이사 부회장(소유지분 6.08%)과 송녹정 대표이사 전무(소유지분 0.03%)다.

율촌화학의 매출액 추이를 보면 2013년 4406억 원, 2014년 4519억 원, 2015년 4362억 원이다. 당기순이익은 2013년 275억 원, 2014년 90억 원, 2015년 139억 원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당기순이익은 135억 원이다.

율촌화학과 농심은 별도 법인이다. 하지만 지난 연말 주식배당으로 농심홀딩스는 65%(124억 원 배당 중 약 80억 원)를 가져갔다. 율촌화학이 농심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농심 '임금피크제' 때문에 거리 천막농성 투쟁에 나서다

▲ 율촌화학노조가 안산시청 앞 '세월호 특별법 개정 촉구 안산시민농성장'겸 '고 백남기 농민 분향소' 곁에서 천막을 치고 24시간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 박호열


율촌화학노조는 9월 5일부터 안산시청 앞 '세월호 특별법 개정 촉구 안산시민농성장'겸 '고 백남기 농민 분향소' 곁에 천막을 치고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다. 노조가 거리로 나선 이유는 '임금피크제' 때문이다.

율촌화학노조는 1987년 7, 8월 노동자대투쟁 이듬해인 1988년에 노조를 설립한 이후 본사 상경투쟁 등을 벌이긴 했으나 거리 노숙투쟁은 처음이다. 현재 종업원 수는 890명이고, 조합원 수는 390명이다.

임금피크제를 두고 생산 현장은 청년층과 장년층이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근속연수가 많은 40대 이상 장년층은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적용 대상이 안 되는 청년층은 단체협약상의 복지 조항을 더 챙기는 게 실속 있는 거 아니냐며 수군거리는 분위기다.

기자가 농성장을 찾은 29일 오후. 3조 3교대 근무를 마친 조합원 100여 명이 농성장을 찾아 결의대회를 열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마다 '조별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천막농성은 노조 상근자와 교섭위원들이 24시간 문을 열어놓고 있다. 밤에는 교섭위원들이 2개조로 나뉘어 지킨다.

박종섭 위원장은 "단위 노조의 힘만으로 임금피크제를 대응하기 벅차 안산시와 노동부 등 여론을 모아 회사를 압박하려고 천막을 쳤다"며 "그런데 고용노동부 안산지청 근로감독관이 '조합에서 양보하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임금피크제는 2006년부터 도입해 시행돼 왔다.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대국민담화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 정년은 연장하되 임금은 양보해야 한다"며 '세대간 상생고용지원제'를 발표하면서 노동현장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올해 들어 300인 이상 기업은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연장됐다. 하지만 정년이 5년 늘어난 만큼 단계적으로 임금을 감액하면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사업장에서는 노사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했다.

임금피크제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퇴직금은 '근무일수×평균임금(퇴직 직전 3개월간 받은 급여 평균)'으로 계산한다. 결국 임금피크제로 5년간 근무연수가 늘어난다 해도 퇴직금 총액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의 손해가 명확해진 것이다. 대신 기업으로서는 저임금을 유지시키는 편법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닌 셈이다.

율촌화학 현장 노동자의 평균근속연수는 15년이다. 근속연수가 늘어나는 만큼 회사의 퇴직금 부담은 커진다. 회사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밀어붙이는 이유로 꼽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에서는 회사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할 경우 기존 퇴직금은 일시금으로 받고, 임금피크제 이후에는 매년 따로 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농심에서 결정하면 무조건 따라라? 첫 단추 잘못 끼울 수 없다"

▲ 율촌화학노조 조합원들이 3조 3교대 근무를 마친 후 천막농성장 앞에서 '조별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 박호열


율촌화학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세 가지다. 농심처럼 임금피크제 30%를 도입하는 대신 피크시점(56세) 평균임금 기준으로 3개월 금액을 별도 책정해 피크 기간인 4년간 4번 나누어 지급하거나 또는 4년 동안 임금피크제로 깎이는 임금을 48개월 월별로 고정 오버타임으로 나누어 지급해 달라는 게 핵심이다.

이밖에 정기승호(호봉제)는 기존대로 인상하고, 앞으로 정년이 언제 다시 늘어날지 모르는 마당에 늘어나면 늘어난 기간만큼 '피크' 시점을 뒤로 밀자는 주장이다.

반면 회사는 임금피크제를 통해 2017년부터 57세를 대상으로 4년간 10%, 10%, 5%, 5%씩 해서 총 30%를 깎겠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이를 거부할 경우 임금·호봉 동결에 단체협약까지 없다고 통보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노사 간 단체교섭은 7월말 13차 교섭을 끝으로 중단된 상태다.

노조의 요구에서 특이한 점은 '농심처럼'이다. 임금이든 단체협약이든 농심에서 결정하면 조건 없이 따라가야 하는 관행을 빗댄 것이다. 농심그룹 산하 제조업체는 농심, 율촌화학, 태경농산(라면스프 생산) 3곳이다. 이중 농심과 태경농산은 2014년 단체협약에서 임금피크제를 체결하고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박종섭 위원장은 "교섭위원들 조차 지불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농심 때문에 못 해주고, 안 된다고 한다"며 '농심처럼'으로 인한 폐해를 지적했다. 

조합은 천막노숙투쟁으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투쟁 수위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사측이 서울 대방동 본사 앞에 집회신고를 먼저 해 선수를 쳤지만 노조는 1인 시위와 거리 홍보전 등으로 강도를 높여가는 한편 장기전에도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박종섭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굳건한 단결력과 투쟁의지로 악법을 들이미는 정부와 회사에 맞서 그들의 요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각인시켜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임금피크제를 한 번 도입하면 나중에 바꿀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첫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 힘이 들더라도 제대로 대응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회사 관계자는 "지금 회의 중이라 말하기 힘들다. 그리고 우리가 굳이 취재에 응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짧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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