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집에 안갈 수도 없고, 불안해서 못살겠어요"

원전 건설 반대와 노후 원전 폐쇄하라는 전국적인 여론 드높아

등록|2016.10.05 11:37 수정|2016.10.05 14:51
지난 9월 12일 오후 7시 44분 규모 5.1, 오후 8시 32분에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한 지진이 잇따라 발생했다. 규모 5.8은 지진 관측 이래 한반도 내륙에서 발생한 지진 가운데 역대 가장 강력한 규모이다. 경주 지진은 그 전후로 430여 차례 더 일어나 경주 시민들은 물론 울산, 부산 등 핵발전소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 주민들은 물론 많은 국민들이 혹시 이러다 핵발전소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에 신경이 곤두 서 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경주는 현재 대규모 지진과 계속되는 여진으로 시민들의 일상이 파괴됐다"며 "공원에 텐트를 치고 숙박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생존을 위한 텐트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더욱 불안한 것은 원전 사고의 재앙이다. 정부는 이미 2012년에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연구를 통해 이번에 지진을 일으킨 '양산단층'이 활성단층이란 결론을 내렸으나,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은폐했다. 즉 핵발전소 가동을 위한 유리한 환경조성에만 목을 맸지 시민의 안전은 또다시 뒷전이었다"고 성토했다.

원전 건설 반대와 노후 원전 폐쇄 목소리 커져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원전 점검 결과 시설 안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그럼에도 환경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연거푸 "국내 최대 규모의 이번 지진 발생은 '핵발전소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자연의 강력한 경고"라며 노후 원전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9월 13일, 경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은 지진 발생의 공포 속에서도 자신의 안위와 함께 핵발전소를 걱정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운을 뗀 뒤 "그동안 정부와 한수원이 녹음기처럼 반복 주장해온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이다. 월성원전 주변의 단층은 활성단층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일거에 거짓으로 판명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이어 "지금도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며 "30년 수명이 끝난 월성1호기에 대해 즉각 폐쇄 조치를 단행하고, 월성원전 2,3,4호기뿐 아니라 신월성 1,2호기도 가동을 중지하고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중저준위핵폐기장이 건설된 곳은 원래 신월성 3,4호기 부지였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부지에서 공사 중 단층이 10개나 발견됐으며 2009년 6월 준공 예정이던 방폐장은 이 때문에 2014년 6월에 완공됐다"며 "경주 방폐장에서 발견된 다수의 단층도 이제 활성단층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도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또 강한 지진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집에 들어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안들어 갈수도 없고... 정말 불안해 못살겠다"며 노후 원전인 월성원전 1호기 폐쇄와 신규 원전 건설 중단을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 등 9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도 성명서 통해 "핵발전소가 밀집해 있는 부산과 울산, 경주, 울진 등 동해안 지역은 한반도 역사 지진기록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계속 발생했던 지역"이라며 "정부는 규모 7~7.5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하며, 지진에 취약한 노후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신규 건설을 늘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불안해서 못살겠다!한국YWCA연합회는 탈핵캠페인을 열고, 지진위험지대 핵발전소 즉각 중단과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 한국YWCA연합회


서울과 수도권 등 전국 곳곳으로 탈핵 요구 목소리 번져

경주 지진을 접하고 나서 월성1호기 수명 연장 반대, 신고리 5,6호기 승인 철회 등 기자회견을 열거나 거리 캠페인, 1인 시위, 퍼포먼스, 시민 호소문 발표 등 탈핵 요구가 서울과 수도권 등 전국 곳곳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한국YWCA연합회(회장 이명혜)는 9월 27일, 서울 세종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탈핵캠페인을 열고, 정부,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수력원자력에 ▲지진 위험지대 핵발전소 가동중단 ▲핵발전소 안전점검과 비상대책 실행 ▲지진대비 방사능 방재메뉴얼 마련과 시민교육, 훈련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므로 핵발전소가 가져올 재난과 공포도 더 이상 상상이 아닌 일이 됐다"면서 앞으로 "10만 회원과 함께 '생명을 살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탈핵운동을 계속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캠페인에는 서울, 광명, 고양, 안양, 부천, 남양주, 성남, 파주, 논산, 청주, 순천 등 전국 각지에서 70여명의 YWCA 회원들이 참여했고, 탈핵 율동, 탈핵 카드섹션, 시민 호소문 낭독을 마친 참가자들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있는 광화문에서 청계광장, 광교사거리, 을지로입구, 한국전력공사 서울지역본부를 지나 명동 YWCA회관까지 거리행진을 하며 시민들에게 핵발전소의 위험을 알렸다.

핵발전소 없는 국토 경주 지진 보셨지요? 한국이 결코 지진 안전 지역이 아닙니다. ⓒ 초록교육연대


9월 29일에는 전교조 경기지부의 이주연 수석부지부장과 수원대 이원영 교수, 초록교육연대 김광철 대표, 최순영씨 등 20명은 수원역 앞 로데오 거리를 지나 화성 남문까지 거리 행진을 했다. 시민들에게 "경주 지진 보셨지요? 한국이 결코 지진 안전 지역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더 강한 지진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라고 외치면서 시민들에게 원전 사고의 위험성을 알렸다.

초록교육연대 김광철 대표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유럽은 물론이고 가까운 대만도 핵발전소를 폐기하고 있는데 거의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원전을 확대하는 것은 세계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가뜩이나 남북이 긴장된 상태에서 만에 하나라도 미사일이 원전을 공격하면 핵폭탄이 될 수 있다. 국가안보와 국민생명 보호 차원에서라도 탈핵 및 재생에너지 쪽으로 국가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9월 30일에는 서울 홍대입구 공원에서 청년초록네트워크 양지혜 집행위원장을 중심으로 50여 명의 대학생들이 '핵발전 이제 멈추어야 합니다'라는 집회를 갖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탈핵 서명 운동과 함께 경주 지진으로 인한 불안감을 젊은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지금은 멈춰야 합니다 서울 홍대입구 공원에서 청년초록네트워크 주최 집회 ⓒ 청년초록네트워크


기자회견 손팻말고준위방폐물기본계획 당장 철회하라 ⓒ 태양의학교


태양의학교 신경준 사무처장은 "경주 지진 때, 야간자율 학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대피를 시키지 않는 학교들도 있었다. 정부와 교육청은 전국 모든 학교에 지진과 원전 사고 시 실질적인 대피 매뉴얼을 제공하고 이를 훈련하여 실제 위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월 1일에는 금옥여중 학생 등 학생 40여 명과 초록교육연대 등 환경 단체 회원들과 많은 교사 등이 광화문에 모여 종로와 명동, 남대문 시자 등을 돌면서 '경주 지진 잊지 말자, 탈핵만이 안전한 미래를 확보하는 길이고, 핵발전소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대체하자"고 시민들에게 호소하면서 탈핵 행진을 이어갔다.

경주 지진 보며 잠이 안온다 금옥여중 학생 등 거리로 나온 사람들 ⓒ 초록교육연대


장하나 전 국회의원은 "부산에서는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범시민운동본부가 발족되었고, 영남지역 19개 YMCA가 신고리 5,6호기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등 드디어 원전 안전 문제가 원전 인근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고리원전 반경 30km 이내에 거주하는 부산·울산·경남 주민 340만 명이고, 월성원전 반경 30km 이내에 거주하는 경주·울산·포항 주민 135만 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두 원전단지의 직선거리가 50km에 불과하므로 겹치는 지역을 감안하더라도 약 450만 명이 원전 사고의 직접적인 당사자"라며 "인구 밀집 지역에 원전 단지를 건설하는 정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한탄했다. 아울러 "2014년 3월 후쿠시마 현에 다녀왔는데, 사고 당시 후쿠시마 현에 살았던 여자아이들이 '나도 엄마가 될 수 있는지, 엄마가 되어도 괜찮은지' 묻는다는 말에 가슴에 돌덩이가 박혔다"며 "그리고 작년 2월 나는 엄마가 되었다. 정치인도 환경단체 활동가도 아닌 내 딸의 엄마로서 나는 탈핵  이외의 대안은 없다고 확신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활동성 단층대 위에 원전이 올라가 있는 형국일부 여진은 주변의 다른 단층대인 울산단층, 모량단층, 밀양단층 등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 양산단층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전체를 활동성 ⓒ 자료 출처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원전 주변에 활동성 단층 확인, 이젠 다르게 대처해야

한편 국회 더민주당 최명길 의원실 보도자료에 의하면, 일부 여진은 주변의 다른 단층대인 울산단층, 모량단층, 밀양단층 등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여 양산단층 뿐만 아니라 이 지역 전체를 활동성 단층대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자아내고 있다. 이곳은 월성 원자력발전소와는 불과 27km, 고리 원자력발전소와는 50km 떨어진 지점이다. 활동성 단층대 위에 원전이 올라가 있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최명길 의원은 "월성과 고리 원전부지에서 최근 10년 간 지진 측정 횟수가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며 "지금까지 원전 정책은 활동성 단층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수립돼 왔지만 원전 주변에 활동성 단층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 만큼 이제부터는 새로운 시각과 자세로 원전 안전문제에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민주 신경민 의원은 앞으로 원전을 건설할 때 국회 동의를 받는 내용의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 대표 발의했다. 신경민 의원은 "경주지진 이후 원전 안전을 위한 유관기관회의는 없었다고 원자력안전위원장이 국감에서 실토했다"며 "청와대, 총리실 등 누구도 신고리5,6호기 건설에 의문제기도 없었고, 안전이란 단어는 이 정권과 정부의 머리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또한 "신뢰를 잃은 정부와 원자력사업자에게 더는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고, 원전의 신규건설과 재허가 등 국민생명과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 국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할 때"라며 "이 법안을 통해 국민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강화되는 등 원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논의가 정책결정 과정에 제대로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이와 유사한 글을 '교육희망'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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