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뚜막 무너뜨려 매맞은 사연도 방송됩니다"
100회차 방송 맞는 전남 1호 마을라디오 ‘해남 FM’
▲ 해남우리신문사 내에 차려진 해남FM방송국에서 줌마시대 회원들이 방송녹화를 하고 있다. ⓒ 해남우리신문
"학교 댕길 때는 뭐든 잘 한다는 소리만 들었어. 얼굴은 안 이삐고."
"얼굴은 지금도 이삐제. 달리기도 잘했어?"
"어렸을 때 공부 잘해서 중고등학교 다녔으면 선생되는 것이 꿈이었제."
"그 앞에 포리(파리) 기 댕기요(기어 다녀요)."
"그 전에는 육성회비가 비쌌제."
"비쌌제, 논 팔아야 학교 보냈제."
"오빠만 살아 있었으면 해남으로 (시집)안 왔을 텐데. 나 알고 보면 고생 무지하게 한 사람이여. 엄마 일찍 죽고, 오빠도 잃고 그렇게 살았어."
"옥천면 좋은 데로 시집왔구만. 살만하제."
지난 5월 16일 해남군 옥천면 서원리. 이 마을 방상순(73)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옆에 앉은 이웃들이 한 마디씩 거들고 나선다. 가끔은 방 할머니의 이야기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끼리 동네 이야기 등을 늘어놓는다.
이날 시장통 같은 분위기에서 방상순 할머니와 이웃들이 나눈 이야기는 고스란히 녹음돼 방송됐다. 라디오 채널명은 '해남 FM'. 6개월여의 준비를 거쳐 지난 5월 16일 첫 방송이 나간 것.
첫 방송에선 아들딸 쌍둥이 중 아들을 가르치고 싶어 딸이 대학에 떨어지길 바랐다는 마산면 용전리에 사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도 함께 전파를 탔다. 또 노래가 좋아 밥할 때마다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두드리며 부르다 부뚜막을 무너뜨려 매를 맞았다는 같은 마을 할머니의 이야기도 방송됐다. 이날 해남FM의 첫 방송은 해남줌마시대 회원인 마지영씨가 맡았다.
해남 FM은 전남에서는 처음으로 개국한 마을 라디오이자 주민들이 앵커가 되고 출연자가 되어 만드는 주민 주도형 인터넷 방송(팟캐스트)이다. 첫 방송 이후 6월 3일 해남문화원에서 공개방송을 갖고 공식 개국했다.
해남 주민들이 만드는 마을 라디오 '해남 FM'의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벌써 10여 개의 코너가 100여 차례 전파를 탔다. 40~50대 여성들로 구성된 줌마시대가 운영하는 '떳다줌마'는 주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해남문화원이 운영하는 '해남전설513'에선 해남의 전설이 소개되고, '김민성의 음악다방'에선 군민들의 사연과 신청곡 등이 전파를 탄다. '정수연의 만만한 시세상'과 해남의 다양한 인물을 소개하는 '최재희가 만난 사람', 육아정보를 제공하는 '여은영의 해남육아파일'도 방송된다. 해남문화관광해설사들이 '남도답사 일번지 해남'을 진행하며, 해남우리신문은 '지금 해남에선'을 통해 다양한 해남소식을 전한다.
또 박연호 최재희 박영자의 '톡톡 시사토크'에서는 전국 이슈를 놓고 토론과 논쟁이 펼쳐진다. 김미화의 동화이야기도 청취자들을 만난다.
다양한 프로그램은 모두 주민들이 기획과 진행, 녹화와 편집을 한다. 이른바 이웃집 아주머니가 앵커가 되는 '군민 언론 놀이터'다. 주민들이 꾸미는 왁자지껄 마을라디오, 주민 누구나 앵커가 되고 마을 구석구석 이야기가 전파를 타는 마을 라디오를 현실화시킨 셈이다.
"해남FM은 자치와 참여의 확장....20년 전엔 지역신문, 지금은 마을 라디오"
▲ 해남FM ‘정수연의 만만한 시세상’ 진행 모습 ⓒ 해남우리신문
최재희 방송편성국장은 "주민들이 여론을 생산하는 주민 주도형 방송이기에 세련미보다는 서툴고 농촌스러움이 매력이다"며 "대도시 중심의 뉴스에 밀려 관심을 받지 못했던 지역의 문제들과 주민들의 소소한 관심사를 파고들며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잔잔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고 전했다.
해남FM은 자치와 참여의 확장을 상징한다. 개국하기까지 해남지역신문인 <해남우리신문>의 역할이 컸다. <해남우리신문>에서는 전반적인 해남FM 개국준비와 앵커 양성과 교육, 방송 스튜디오를 지원하고 있다. 여기에 <해남우리신문>은 올해 7개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마을신문을 발행했다.
<해남우리신문> 박영자 대표는 "20여 년 전 지방자치가 시작되면서 지역언론이 탄생했다. 처음엔 다들 생소했지만, 지금 지역신문은 지역민이 가장 많이 보는 언론의 위상을 갖췄다"고 했다. 박 대표는 "지역신문이 자리를 잡은 요즘, 주민들의 관심은 더 구체화되고 있다. 내가 직접 참여하는 언론매체를 원한다는 것"이라며 "지역신문보다 주민참여 기회가 더 큰 마을 라디오와 마을신문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100회차 방송을 앞두고 있는 해남 FM은 휴대전화의 어플리케이션 팟빵에서 내려받거나 해남FM 밴드와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을 통해서 청취할 수 있다.
해남FM http://www.podbbang.com/ch/11779
▲ 지난 6월 3일 개국한 해남FM은 지역민들의 언론 놀이터 역할을 한다. ⓒ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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