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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야사? 이 책 보니 부끄럽네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 모험의 권유>를 읽고

등록|2016.10.18 11:00 수정|2016.10.18 11:00
일찍이 육당 최남선이 역사책과 관련해 인상 깊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바로는 삼국사기가 정사이며, 삼국유사는 온갖 기이하고 황당하기까지 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었다. 그런데 왜 육당 선생은 삼국유사를 고르겠다고 했을까?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 모험의 권유>의 지은이 고운기 교수는 삼국유사야말로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라 주장한다. 비과학적이며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들도 그 구조와 전승 방식을 이해하고 나면 뜻밖의 깨달음과 즐거움이 가득하단다.

▲ 4년 만에 나온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 ⓒ 현암사


저자는 20년 넘게 삼국유사 연구에 흠뻑 빠져있는 사람이다. 특히 이번 책은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시리즈 중 다섯 번째로 모험을 주제로 하고 있다. 수로부인, 거타지, 주몽, 혜통 등 옛 설화에 등장하는 아홉 인물의 모험담이 담겨있다. 4년 만에 들고 나온 책의 화두를 '모험'으로 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서두에 쓴 글을 보면 실마리가 잡힌다.

"실로 우리 사는 일 자체가 모험 아닌 바 아니니 살자면 당연 모험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거기서 휩쓸리지 않게 능동적으로 살자는 것이다. 그것이 평범한 우리네 도전이다. 이즈음의 젊은 친구들이 그조차 하지 않으려 해서 일종의 권계(勸誡) 삼아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깊이 공감했다. 교직에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안 잘려서 좋겠다는 소릴 많이 들었다. 나보다 더 힘든 삶을 버텨내는 이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무원이라고 흔들림이 없겠는가. 각자의 자리에는 언제나 그 나름의 격류와 풍랑이 있는 법이다. 그 어떤 직책, 입장에 있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꿋꿋이 살아가려면 모험을 해야 한다.

저자는 지혜롭고 건강하게 난관을 풀어나가는 주인공들에 주목한다. 사실 목차에 등장하는 수로부인의 이름을 보고 흠칫 놀랐다. 너무 익숙한 이름이었다. 수로부인은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이다. 강릉과 삼척 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동안 아이들을 데리고 헌화로(강릉 옥계면, 강동면)와 수로부인 헌화공원(삼척 원덕읍 임원리)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

학생들에게 수로부인과 '헌화가'와 '해가'를 소개하긴 하였어도, 그녀를 모험을 떠나는 영웅으로서 다루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옛사람들의 허무맹랑한 과장이라 여겼다. 그러나 저자는 수로부인이야말로 지혜롭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 모험가라고 말한다. 토속신앙과 민속에 대한 연구, 수많은 기록을 토대로 한 풍부한 해석은 읽는 동안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꼭 칼 들고 총 잡아 피를 흘려야만 모험의 자격을 얻는 게 아니다.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 모험의 권유>에 나오는 탈해, 보양, 장춘 등 9명의 다채로운 일탈 모험 이야기를 읽고 나면 평범한 나도 모험을 충분히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긴다. 영화 <아이언맨>을 보고 나서 '난 아이언 슈트가 없으니 영웅 되기는 글렀군' 하는 마음이 들 때랑은 전혀 딴판이다. 삼국유사를 우스운 야사쯤으로 여겼던 내가 참 부끄러워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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